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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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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들로 그득한, 미미여사의 소설집 '눈의 아이'를 만났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다섯 편의 단편들을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인간의 진득한 욕망들이, 구석구석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일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첫번째 단편, '눈의 아이'

서른 살이 된, 어느 날 함께 하게 된 동창 모임. 늘 함께 하던 네 명이 모였다. 늘 함께였던 한 명은 그 자리에 없었다. 열두 살에 살해된 유키코. 그녀만 빼고 그들은 모였다. 각자의 시간과 공간에서 잘 살아 있는 듯 보였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서 유키코를 완전히 떨쳐낸 적은 없었으리라. 빨간 머플러, 빨간 코트, 빨간 장화를 신고 눈 속에 파묻혀 시체가 된 아이, 유키코. 그날은 우연처럼, 필연처럼 눈이 내렸고, 유키코의 발자국이 눈에 찍혀갔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나, 저주 받은 나, 열두 살, 유키코가 죽던 순간에 함께 죽어버린 나, '나'는 바로 유키코를 살해한 장본인이었다. '질투'라는 감정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왔지만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자기 속의 누군가를 죽이는 것과 같다. 어떤 감정이든 느끼려면 자신의 어떤 내면이 필요한 법. 그 아이가 나였고, 나가 그 아이였다. 끔찍한 진실이다.

 

두번째 단편, '장난감'

한 완구점을 지키는 할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 완구점에 관한 괴상한 소문이 돈다. 안주인인 할머니는 죽었고, 그 이후로 소문은 더 심각해진다. 할머니에 재산을 둘러싼 자식들의 분쟁이 이어진다. 그리고 진실이든 아니든 소문과 나쁜 기운은 누군가를 죽이게 된다. 장난감처럼 내팽겨쳐진다. 할아버지마저 사라진 후, 한 아이는 그의 영혼을 본다. 마치 그 영혼을 달래듯, 함께 하듯. 그렇게 함께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분명 현실에서 찾게 되는 무엇이 있으리라.

 

세번째 단편, '지요코'

한 아이가 테마공원에서 핑크색 토끼 인형탈을 쓰고 풍선을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더러워진 인형탈을 꾸역꾸역 입고 그 토끼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니 기이한 일이 생겼다. 사람들이 인형 혹은 장난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비춰본다. '지요코'다. 어린시절 가장 사랑했던 인형. 지금은 안부조차 물을 수 없이 멀어진 그 인형. 그랬다. 이 토끼 인형탈을 쓰면 사람들이 어린시절 좋아했던 인형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 어쩌면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보여주고, 또 그 추억을 간직했기 때문에 삶을 건강하게, 정직하게 살아낼 힘을 주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도둑질을 한 아이와 엄마를 본다. 그들은 사람의 모습이다. 어떤 인형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사라질 때 뒷모습엔 검은 손이 그들을 따라다닌다. 나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며 내 자신에게도 묻는다, 내게 가장 소중했던 인형은 무엇일까. 나는 그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네번째 단편, 돌베개.

돌베개라는 전설이 있다. 나그네가 쉬었다 가면 온갖 정성으로 보살펴 주면서 잠이 들면 돌베개 위에서 그들을 죽이고 물품들을 빼앗가 가는 부부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을 지켜보는 딸이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나그네 대신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그 부부는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인다.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그 사건이 으레 어떤 것 때문에 일어났닥 단정짓는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고, 모든 것이 다 밝혀지는 것도 아니며 인과응보라는 방식대로 진행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믿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이 끼친 모든 일들은 그대로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꼭 그렇게 된다고.

 

다섯버내 단편, 상흔

험난한 세상을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정의를 자기방식대로 실천하고 싶었던 한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세계를 온라인에 구축했다. 진심으로 원하면 정말 그렇게 되는 것일까.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때론 거짓 같고, 끝내 진실을 알 순 없지만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끝내 그것에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하고,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또 단번에 누군가를 죽이는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그것이 비록 잘못 되었다는 걸 나중에 깨닫는다 할지라도. 어떤 일이든 결국엔 상흔은 남는 법이리라.

 

 

다 읽고 나니, 그녀가 남겨놓은 흔적들이 내 마음에 내려 앉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장면 장면들이 나를 조금은 괴롭힌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옳은지 헷갈리는 세상 속에서 그녀가 펼쳐놓은 이야기들은 그래도 삶의 긍정적인 기운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사건은 일어나고, 사람의 감정과 욕구는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속에서 맑고 좋은 기운들을 만나 힘차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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