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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설계도
이인화 지음 / 해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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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첫 장에 쓰여진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대화가 강인하게 나를 이끌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믿는 지옥에 대한 이야기의 대한 모든 압축이 그 대화에 응집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피스토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내부에 있도다.

우리가 영원히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곳.

지옥은 경계도 없고 정해진 자리도 없으니

우리 자신이라는 장소, 우리가 있는 곳이 지옥이라."  

 

사건의 시작은 대구의 한 호텔에서 일어났다. 알 수 없는 의문의 살인사건. 그것을 맡은 담당 수사관 김호는 사건 현장에서 여러가지 조작의 흔적을 찾기에 착수한다. 그 흔적을 찾느 과정에서 보통 사람보다 열 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범국가적인 조직 공생당이 그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강화인간들에 대한 연쇄 테러에서 심각한 위험을 감지한 안준경은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죽은 이유진이 만들어낸 최면 세계 인페르노 나인(지옥 9층)으로 내려간다. 인페르노 나인의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반란군의 혁명을 이끌게 되고…. 그러나 이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인페르노를 파괴하지 않고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옥의 설계도'가 필요하다. 

 

김호는 이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아끼는 딸이 유괴되는 괴로움을 당하고, 그 사이에 코마상태의 강화인간들이 늘어간다. 현실에서 코마상태란 뜻은 최면상태로 들어섰다는 뜻이다.

 

 

'지옥설계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배치나 모형이 들어 있는 설계도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이다. 김호는 이유진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의 배후에 있는 자오얼의 행방과 지옥설계도를 자신의 딸의 목숨과 맞바꿔야 하므로 죽을 힘을 다해 진실을 파헤친다.

 

점차 이야기가 이어짐으로 인해 현실과 무의식의 세계 즉 최면 상태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최면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람들의 무의식에서 설계되어진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그곳에서 실체하는 인간들조차도 현실 세계에서 조금씩 모습을 바꾼 사람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몇 천년동안 이어온 그 최면 세계의 사람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갖은 수난을 겪으면서 당연히 그 속의 현실이 사실은 가상이라는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다.

 

준경은 최면상태의 가상 현실에서 지도자로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왔다. 단지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곳에 최면상태라는 사실을 아는 강화인간들 중 몇몇은 더이상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가.

그건 마치 무엇이 좋은 세상이고, 나쁜 세상인가를 묻는 것과 내게는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사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같은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가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가상이든 현실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같은 단어를 보고도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같은 날씨에도 다른 기분에 휩싸인다. 그들만이 이제까지 구축해 놓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망. 그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이라 하더라도,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그 과정속에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폭력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는 것일까.

 

폭력을 없애기 위해 폭력을 가해 그 폭력집단을 사라지게 하는 일. 그것이 과연 정당하고 가치있는 일일까에 대한 의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또한 똑똑하고 지능있는 사람을 원하는 이 경쟁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강력하게 묻는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능이 수십배로 발달해서 이 세계를 장악하고, 자본시장을 이끌어가고, 폭발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예술적인 가치를 상승시키지만 그곳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따스한 감성이 결여되어 있는 곳이라면 과연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성공을 위해 어디론가 달려간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을 깔아 뭉개고 1등을 향하여, 좋은 성적,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향하여 끊임없이 달리는 기치와도 같다. 감정은 배제한 채 일단은 성공하고 보라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원하는 대로 된 후에 찾아오는 그 공허함은, 그 부질없는 느낌은, 그 쓸모없어진 비참함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작가 이인화는 아마 우리에게 사랑을 배반하고, 인간과 감정을 무시한 대가로 찾아온 감정성의 결여, 구멍이 슝슝 뚫린 듯한 공허함이 만발한 세계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인간의 갈등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은 지옥 설계도에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지옥에서 살고 있는가, 천국에서 살고 있는가. 나는 코너로 몰리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아주 오랜 시간 음미해봐야 할 문제일 듯 싶다. 내가 살고 있는, 나만의 세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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