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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9세기의 격동의 시대를 담아낸 이 작품이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리고 시작된 나의 책 읽기. 19세기 민중들의 삶속으로 마치 내가 겪은 듯 쑤욱 빠져들었다. 옹기종기 모여 그들과 함께 고전 이야기에 흠뻑 빠지기도 했고,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불러 보기도 했으며 거나하게 술을 걸친 것처럼 취기가 오르기도 했다. 어쩌면 그 취기는 흥에 겨운 즐거움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고약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울분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딱딱한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한줄의 차가운 사실이 아니라 뜨끈하고 진하게 다가오는 민중의 삶을 읽어내려가며 내내 출렁이는 마음을 지켜 보아야했다.
 
 시골 양반과 기생 첩 사이의 서녀로 태어난 연옥과 서얼의 서자로 태어나 몰락한 지식인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신통과의 인연. 짧고도 기이한 한 순간의 만남으로 연옥은 이신통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곧 결혼을 앞둔 연옥은 마음에 다른 사람을 품은 채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가 3년 만에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때부터 이신통에 대한 연정은 깊어진다. 그러다 이신통의 소식을 여기저기서 듣게 되고, 결국 그들은 재회하게 된다. 바로 살림을 차리고 서로에게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둘은 꿈같은 6개월이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신통은 삶에 대한 사명이 있었고, 그 단단한 신조를 가지고 신통은 꼭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팔찌를 연옥에게 주고 떠난다. 신통이 없는 동안 아이를 배고 그 아이를 잃게 되는 고통을 겪는 연옥. 결국 그녀는 신통을 직접 찾아나서면서 그의 삶과 사랑과 그가 품은 세상을 이해하게 된다.
 
 
 사실 나는 '역사'에 대한 중요성은 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부족했다. 그래서 예전 삶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기가 일쑤여서 드라마도 사극은 썩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본 '마의'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양반과 평민의 서열구조에 대해,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 계기가 되었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똑같은 생명을 구하는 일일 뿐인데, 동물을 고치던 손이라고 멸시하고 무시한다. 또한 같은 사람인데도 지위나 위치에 따라서 개만도 못한 시선과 질타를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약자들은 좋은 시대가 올까, 대한 희망을 품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를 하기도 한다. 좋은 일을 하고 싶을 뿐이고,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일 뿐인데.... 이러한 혼잣말들을 보고 있으면 아무리 생각없는 사람이라도 현시대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여울물 소리'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그저 먹고 사는 게 힘이 들었을 뿐이다. 제대로 한 번 살고 싶어 그 바람으로 '사람이 하늘이다' 라는 천지도의 생각에 강하게 공감하며 진짜 멋진 사회를 꿈꾸는 것 뿐인데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은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자신의 권력이나 지위를 조금이라도 흔들리게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잔인하게 목을 쳐 죽이고, 옥살이를 시키고 가족들을 몰살시키며 재산을 몰수한다. 지금 이 시대는 과연 권력으로부터 안전한가? 나는 아니, 라고 대답하고 싶다. 여전히 굶어죽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혹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군림하기 위해 작전을 꾀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위해 제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진짜 목소리를 내는 문학의 설 자리를 목조여 가고 있는 것들이 눈에 보인다.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정규직은 커녕 계약직도 점점 더 구하기 힘들어지고 대학 등록금은 점차 비싸지고..... 이러한 상황들을 그래도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학의 힘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더 좋은 사회를 살기 위해 자신의 생을 걸었던 이신통이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이야기의 힘인 것처럼. 그는 서민들을 위해 우리의 고전들을 열심히 신명나게 읽어주었다. 가슴치며 힘들었던 날에도 그렇게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 누구나 웃음 짓게 되는 것 같다. 이야기 속에는 화가 나는 일도 있고, 분통 터지는 일도 있고, 즐거운 일도 모두 들어있다. 그 모든 감정들을 함께 공유하면서 함께 가슴을 쥐어 뜯고, 함께 욕하고, 함께 시원하게 털어내는 것이다.
 
 
 이신통의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까지 지켜보면서 그의 생이 나는 아름다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 고 그를 죽도록 그리워하는 연옥과 같은 마음이 되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향해 달려가던 그의 시선을 향하는 곳을 함께 바라보려고 노력해본다. 나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라면 어떻게 견뎌냈을까, 나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나라면, 나라면. 너라면, 너라면. 이것이 바로 이야기가 주는 선물이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기꺼이 되어 보는 일. 그를 이해하려고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가쁘게 달려가는 일.
 
 모든 것을 누리고 어떤 것이든 가질 수 있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이신통의 삶을 바라보며 정말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매일 펼쳐지는 일들을 생각없이 받아들이기 보다는 우리 사회에 대해, 내 주변에 대해,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더 풍요롭게 사는 일이 아닐까. 나는 썩 가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다. 그 어느 중간지점 쯤에 있을 것이다. 썩 정의롭지도 않고 그렇다도 야비하지도 않다. 그 틈새에서 문학의 힘을 빌려 닫혀있던 내 이해의 문을 활짝 열어 크나큰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나날들이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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