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와 어린이가 함께 읽는 철수와영희 우리말 시리즈 1
최종규 지음, 강우근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아이들이 읽기에는 아리송하면서도 어렵고, 어른이 읽기에는 했던 소리를 또 하고 또 하고 해서 지루한 느낌을 줄 것 같다. "숲에서 살려냈다"고 하지만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말들은 다른 소설이나 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말들이었고, 저자가 "살려낸" 것으로 보이는 말들은 몇 개 되지도 않았다. "살려낸"이라고 말하려면 "죽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텐데, 현재도 버젓이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말들을 시시콜콜 설명하면서 "죽은 말들을 저자가 새로 살려낸" 것처럼 주장하는 것으로 들린다.

 

얼른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도 더러 보인다. "오늘 하루가 흘러 어제가 된다"는 말은 알겠는데, "오늘과 오늘이 얼크러져 모레와 글피가 된다."는 말은 아리송하다. 오늘과 오늘이 어떻게 얼크러져야 모레와 글피가 되는지 어른도 아리송한데 어린이들이 알아듣겠는가?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라는데 어린이들이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으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무더위에 갑작스레 찾아드는 소나기는 목이 마른 나무 한 그루를 싱그럽게 적신다."고 했는데, 어째서 한 그루만 적시겠는가? 왜 한 그루만 목이 마를까? 이상한 문장이다. 어른들은 어떻게든 이해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한 그루는 그냥 한 그루일 뿐이다. "나무들"이라고 복수로 쓰면 될 텐데 말이다.

 

"푸른 하늘"이라는 말이 걸맞지 않으니 "파란 하늘"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고, "초록빛 바다"도 "파란빛 바다"로 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는데, 하늘이나 바다의 빛깔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고, 햇볕 양에 따라 다르고,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른 법인데, 고지식하게 "파란"으로 고쳐야만 하는가? 아이들의 생각을 너무 한정하는 것 아닌가 싶다. 저자 주장대로 하려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이란 동요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하는 동요들도 모두 '파란'으로 고쳐야 하는가? 진짜 웃긴다.

 

"바지저고리"란 말도 본래의 뜻이 많이 변해서 "시골뜨기"나 "얼뜨기"의 뜻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사내 옷이라고 해서 무조건 "바지저고리"로 불러야 한다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139쪽에서는 사람이 밭에 씨앗을 심어 배추나 무나 양파나 상추 따위를 얻은 것을 "푸성귀"라 하고, 나물과 푸성귀를 아울러 "남새"라 한다고 설명해 놓고, 201쪽과 202쪽에서는 밭에 심어서 거두는 풀을 "남새"라 하고, 사람이 가꾼 남새와 들과 숲에서 난 나물을 아울러 "푸성귀"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어느 한 쪽은 틀렸음이 분명하다. 어린이가 읽을 책을 이렇게 엉터리로 기술하는 건 용서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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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3-20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골(숲)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 잊거나 잃는 한국말을 새롭게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배우자는 이야기를 담으려 했습니다. 즐겁게 읽어 주시고, 아름답게 노래하듯이 하나하나 아로새겨 주셔요. 고맙습니다 ^^

돌돌이 2014-03-26 02:3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함께살기님.
여기 주인장님께서 말씀하신 예 풍성귀와 남새에 대한 지적에대해서 저자로써
잘못을 시인하고 다음 재판에는 시정하도록 하겠다고 해야 바른 태도 아닙니까?
아마라님 말씀처럼 어쩌면 위에 지적한 사항들은 전혀 일언방구도 없이
태연하게 인사만 하시고 가십니까. 누가 요즘 바지저고리라고 말합니까
그런 말 쓰면 요즘은 애들에게 왕따당합니다...

머리 아뽀! 2014-03-29 11:3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헷갈려서 정리를 해보았어요.
남새 = 푸성귀 + 나물 ( 139쪽)
푸성귀 = 남새 + 나물 ( 201쪽)
푸성귀 < 남새 라고 하거서는(139쪽) 다시
남새 < 푸성귀다 ??!!
그런데 남새 = 푸성귀 ??!!!!!!!
무슨 소린가요. 어른인 저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아마라 2014-03-20 0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가님이신 듯한데 문제점과 틀린 곳을 지적받은 것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고 수정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가 아닐까요? 두루뭉실 넘어가는 건 어린이들한테도 떳떳하지 못해요.

액스트라 2014-03-26 0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른하늘과 파란하늘에 대한 저자의 판단이 좀 웃기네요.
아마 푸르다가 녹색도 포함하기에 파란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 같은데
옛부터 조상들은 초록을 푸르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숲노래 2014-03-30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 문명이 시골살이를 누르면서 이루어지는 오늘날 모습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국말'은 '한자말(중국 한자말 + 일본 한자말)'과 '서양말(영어를 비롯한 유럽말)'에 짓눌려서 '죽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짓눌려 앓는 말을 '살리려'고 이러한 글을 썼어요. '숲에서 살려낸'이란 시골(자연)에서 삶을 살리듯이 말을 살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잘못을 지적한다면 저로서도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고맙게 여깁니다. 그런데, 책을 쓴 듯을 살피지 않고 왜곡한다면 굳이 사과를 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오늘날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평범한 말'을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가장 밑바탕(기본)이 될 낱말을 제대로 살펴서 쓰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밑바탕이 될 말부터 제대로 깨닫고 살피면서, 이러한 말에서 삶과 넋과 이야기를 살리는 한국말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껴요. 이를 이루지 못한다면, 한국말이 살아날 길이 없겠지요.

"무더위에 갑작스레 찾아드는 소나기는 목이 마른 나무 한 그루를 싱그럽게 적신다"에서 '한 그루'가 어찌 숫자로 '하나'만 가리키겠습니까? 그러면 백만 그루나 천만 그루처럼 적어야 할까요? 나무를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자는 뜻에서 이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러한 글을 굳이 꼬집으려고 들면, 독자가 내놓는 비판이 얼마나 비판다운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이 마른 나무 두 그루"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문장은 일부러 이렇게 쓰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요즘 사람들은 "한 그루의 나무"처럼 번역투를 함부로 쓰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쓴 글(문장)은, 요즘 사람들이 잘못 쓰는 문장을 '애써 비판할 까닭 없이' 예부터 바르게 쓰던 말투를 살려서 넣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하늘빛은 언제나 '파랗다'가 기본입니다. 바다빛도 언제나 '파랗다'가 기본입니다. 바다에서 바닷말이 많이 불어날 적에는 '푸른 빛깔' 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바다에서는 '녹조'와 '적조'가 있어요. 이때에는 바다빛이 다르지요.

그러면, 여느 때와 다른 바다빛은 그때마다 그 모습에 걸맞게 가리켜야 올바릅니다. 기본이 되는 빛을 무시하면서 아무렇게나 써도 되지 않습니다. 하늘빛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이 되는 빛을 제대로 말하면서, 다른 때에는 다른 빛이 나기도 한다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녹색'과 '초록'이란 '푸르다'를 가리키는 한자말입니다. '녹색'은 일본 한자말이고, '초록'은 중국 한자말입니다. '푸른하늘'은 하늘빛을 '녹색이나 초록'으로 가리키는 꼴이기에, 이런 말투가 알맞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보리가 파랗게 올라온다'라는 말을 시골에서 쓰기도 합니다. '푸른' 싹인데 '파랗다'라고 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싱그럽다'는 뜻에서 '푸르다'를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말투에서 '파랗다'와 '푸르다'를 잘못 섞어서 쓰는 일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푸르다'는 "풀 빛깔"을 가리키는 밑말이니, 하늘빛에서는 '파란하늘'을 기본으로 올바르게 쓰면서, '푸르게 물드는 하늘'이라든지 '푸르게 눈부신 하늘'처럼 쓰면 '푸르다'도 어느 모로 쓸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바지저고리'가 '시골뜨기'나 '얼뜨기'를 담는다는 말은 참으로 잘못된 편견입니다. 이런 편견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군국주의자가 한겨레를 짓밟으면서 함부로 쓰던 말입니다. 이 말뿌리가 번져서, 도시공업사회에서 시골사람은 얕보는 말투로 더 퍼졌는데, 이런 잘못 퍼진 말과 문화를 바로잡는 일이 '한국말을 살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로 '한복'을 가리켰어요. '한복'은 문화학자가 지은 한자말입니다. 한겨레가 쓰던 말이 아닙니다. '한식'와 '한옥' 또한 한자가 지은 말입니다. 아이들한테 이런 말을 가르쳐 줄 수 있기도 하지만, 이런 말을 가르치면서, 한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을 안 가르치거나 못 보여준다면, 아이들은 한국말을 배울 수 없어요. 게다가, 잘못 쓰는 말은 바로잡아야지요. 더욱이 '시골사람'을 얕잡듯이 쓰는 말투는 오늘날에서는 거의 뜻이 없을 뿐 아니라, 이런 차별부터 바로잡을 노릇입니다.

"오늘과 오늘이 얼크러져 모레와 글피가 된다"란 '하루(오늘)와 하루(하루)가 모여서 이틀(모레)이 되고 사흘(글피)이 된다는 말입니다. 조금만 헤아리면 잘 알 수 있습니다.

+

'푸성귀'와 '남새'와 '나물'을 여러모로 섞어서 쓰려고 했습니다. 이런 말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모로 섞어서 쓴다고 하더라도, 헷갈리거나 뒤죽박죽으로 썼다면 죄송합니다. 알맞게 가다듬겠습니다.

여러 가지로 지적해 주시는 말씀은 언제나 고맙습니다.

궁금하거나 더 지적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제 알라딘서재에 물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분이 쓴 글에 댓글을 달면 제가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 책에 어느 분이 서평을 쓰셨기에 인사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데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느니 하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차근차근 읽으면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니, 굳이 붙임말을 적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을 뿐입니다.

진짜머리아뽀 2014-03-30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르다와 파랗다는 말을 너무 한정해서 미안하다. 아이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게 모레와 글피를 설명해서 미안하다. 남새와 푸성귀를 헷갈려서 미안하다. 남의 실수는 잘 들추면서 내 실수는 솔직하게 사과하지 못해 미안하다. 이렇게 말하면 될 것을 저렇게 길고 지루한 변명은 진짜 머리 아프네요. 저자는 조금만 헤아려도 알겠지만 아이들 열 명을 앉혀놓고 "오늘과 오늘이 얼크러져 모레와 글피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물어보세요. 아는 아이가 하나라도 있나. 어른 열 명을 앉혀놓고 물어봐도 마찬가질 걸요. 오늘은 현재이고 모레와 글피는 미래인데, 현재를 서로 보탠다고 미래가 됩니까? 현재는 아무리 서로 보태도 현재일 뿐이죠.

비로그인으로 2014-03-30 1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디너이지만 비로그인으로 댓글 답니다. 책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 주인이 예시로 둔 부분과 함께 살기님이 반박한 부분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좀 말이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남새, 푸성귀는 이미 실수이니 그렇다고 쳐도,
바다물이 바탕이 파란색이니 파란색 바다라고 해야지 초록색 바다라고 하면 틀리다는 말은 말이 안됩니다. 단적인 예를 들기로 합시다. 선생께서는 바다물의 기본이 파란색이니 파란색에 기준을 두고 특이한 예 적조나 녹조일 경우 예외를 허용한다 하셨는데 이 말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입니다. 그런 식으로 함께살기님이 해석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반박하겠습니다.
물은 기본적으로 색이 없지 않습니까? 바다의 기본은 물이니 파란색 바다라는 표현도 틀린 것 아닙니까? 그리고 녹조나 적조 현상에서만 물색이 변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이 또한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바닷물은 지역마다 다릅니다. 깊은 바다 얕은 바다 수온 등을 따져서 빛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도 다릅니다. 궁금하시면 네이버에 비취색 바다를 치시고 검색을 해보십시요. 초록색 바다 사진이 무궁무진합니다. 그것이 녹조 때문이 아닙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녹조는커녕 투명한 바다가 말입니다.

바다를 무조건 파란색으로 지시하는 것은 근본주의적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아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연두색으로 바다를 그렸다고 해서 틀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파란색으로 바다를 그리는 아이보다 솜씨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 틀에 박힌 주입은 좋지 않습니다.

기가 차서 2014-04-04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함께살기님 변명을 들으니 기가 차서 한소리하고 갑니다.
바닷물의 바탕이 파랑이니 파란색이 맞고 초록빛 바다는 틀리다고 했는데
그러면 한국인 얼굴은 살색이니 하얀 얼굴이라고 하는 표현은 틀린 말입니까?
이 세상에 그런 뚱딴지같은 소리가 어디있습니까? 인권위에서는 살색이란 표현도
인권에 부적절하기에 쓰지 않는 단어로 알고 있는데 바닷물이 파랑이니 파란 바다는 맞고 푸른 바다는 맞지 않는다는 소릴 하십니까? 이게 이상한 변명입니까. 말씀해보십시요. 하얀 얼굴을 틀린 말이네요? 어이가 없어서....

최종규 씨 2014-04-21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자 정말 답이 안 나오네여

바다빛도 언제나 '파랗다'가 기본입니다. 바다에서 바닷말이 많이 불어날 적에는 '푸른 빛깔' 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바다에서는 '녹조'와 '적조'가 있어요. 이때에는 바다빛이 다르지요.

기가 막히네여.........
내 고향이 바다여서 잘 알아요.
뭐 저 분은 녹조 현상 일어나면 가끔 색이 녹색이라 하는 모양인데
정말 기가 막히는군여.

우리 동네 바다는 대부분 녹색에 가까워요.
세월호 영상이나 좀 보고 말하세요. 그게 어디 파란 바다입니까?
그게 파란색으로 보여?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최종규씨 2014-06-07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사람은 다른 작가가 쓴 글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혹평을 해대는 반면, 자기가 쓴 글은 치졸한 변명으로 일관하는군요. 자신이 최고라고 착각하는 모양입니다. 글솜씨를 떠나 인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11-06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면 마치 死語를 발굴해서 소개하는 것 같은데, 사실 다 아는 단어 소개입니다. 새로울 것 하나 없다는 점. 한글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언어는 타 언어와 문화에 오염됩니다. 옛 언어를 그대로 보전하는 언어는 없죠. 영어만 해도 라틴어가 토대가 되는 것 아닙니까. 일단 저자의 한글 순혈주의가 굉장히 불편함. 구시대적 발상 같습니다. 바지저고리에 대한 주장은 정말 웃겼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파란색과 푸른색에 대한 주장인데, 이 모순에 대해서는 윗분들이 다 지적했기에 패쑤`합니다. 솔직히 돈 주고 사서 읽기는 아까운 책입니다.

답답합니다 2015-01-2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말을 살려쓰자고 말하는 건데 참 윗분들 어의가 없네요. 초록, 녹색 이런 말을 쓰기보다 아름다운 우리 말을 쓰자는 얘기 아닙니까? 그리고 한글 순혈주의? 이건 무슨 말인가요.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말하고 가꾸며 살았던 우리 말을 잘 살려쓰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요? 답답합니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얼입니다. 어려운 말을 쓰며 아는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알아듣는 쉽고 아름다운 우리 말을 쓰는 일은 참 중요합니다.

나도 답답 2015-04-19 17:18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당신 말이 옳아요. 문제는 저자가 알아듣기 어려운 말과 틀린 말을 쓰고 있다는 데 있죠. 위의 서평을 잘 좀 읽어보고 토를 다세요. 당신 자신도 `어이`를 `어의`라고 틀리게 써놓은 주제에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