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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미술관 -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
손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평점 :
오늘은 '길 위에서 만나는 예술'을 담은 손영옥 작가의 《거리로 나온 미술관》을 소개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예술이 내게 말을 건네온다'는 《거리로 나온 미술관》의 띠지 문구였어요.
보자마자 '이거다!' 했던 책이었습니다.
책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부제목과 띠지의 문구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거리로 나온 미술관'을 딱 보았을 때는 내용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부제목과 띠지를 보니 바로 내용과 연결이 됐습니다.
《거리로 나온 미술관》의 손영옥 작가님은 저널리스트 겸 미술평론가입니다.
현재는 국민일보 부국장이자 문화전문기자로 일하고 계시죠.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미술평론으로 등단했습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국민일보〉에 연재되었던 칼럼 '궁금한 미술'을 바탕으로 한
이 《거리로 나온 미술관》은 우리가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것은 바로 '굳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미술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든 볼 수 있다고 해서
그 작품의 작가, 제작 경위, 미학적 가치, 시대사적 맥락을 두루 알기란 쉽지 않습니다.
《거리로 나온 미술관》은 거리 위 조각물과 건축물이 누구의 손을 거쳐 탄생했는지,
설치된 배경은 무엇인지, 어떤 점이 멋진지 등을 궁금해할 이들에게
'친절한 거리예술 안내서'가 될 내용을 담았습니다.
《거리로 나온 미술관》을 보면서 '어, 이거 봤던 건데!' 했던 예술 작품이 정말 많이 나왔어요.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답니다. :)
《거리로 나온 미술관》은 총 4장으로 나뉘어졌습니다.
1장. 익숙한 곳에서 발견하는 낯선 아름다움 (공공미술 이야기)
2장. 도심 안의 또 다른 예술 (건축 이야기)
3장. 거리예술로 훔쳐보는 그 시절 (역사 이야기)
4장. 관점을 바꾸고 경계를 허물다 (새로운 공공미술)
공공미술, 건축, 역사, 새로운 공공미술의 부문까지 다루고 있어요.
우리는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반드시 미술관이나 화랑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 곳곳에서도 미술 작품이 있기 때문이죠.
다만 우리는 평소에 바쁘게 걷느라, 친구와 대화를 주고받느라 거리의 작품에는 시선이 가지 않는 거예요.
사실 공공예술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펜데믹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야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오픈을 했다, 닫았다를 반복하던 찰나,
《거리로 나온 미술관》 작가님은 이런 상황에서 거리의 미술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던 거죠.
온라인 미술관이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현장에서 피부로 전해지는 '촉각의 기쁨'을 만족하지는 못했거든요.
《거리로 나온 미술관》 작가님은 말합니다.
거리의 공공조형물과 건축물에 궁금증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미술 지식과 안목이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요.
이런 관점의 변화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거예요.
미술관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왠지 높은 문턱이 느껴질뿐더러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하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사람들을 예술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인도하는 편안한 매력이 있습니다.
《거리로 나온 미술관》에서 가장 먼저 소개했던 작품입니다.
김병호 조각가의 〈조용한 증식〉이에요.
빌딩 숲 사이로 상큼하면서도 당당한 '레몬색 조각'입니다.
이 조각물은 2012년 8월에 완공된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건물 IFC 서울 안에 있습니다.
IFC 서울 건물들이 'ㄷ'자 형태로 감싼 중정의 초록 잔디 위에 놓인 이 노란 조각물은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길에 자주 보는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조각품을 외국 작가의 작품이겠거니 생각했죠.
하지만 30대 신예작가 김병호 조각가의 작품이었어요.
작품명 〈조용한 증식〉의 외양은 파스타 면 다발을 움켜쥐고
중간쯤에서 구부린 뒤 한쪽 끝을 부채처럼 펼친 형국입니다.
꽃의 수술과 꽃잎을 합성한 느낌이기도 하고요,
꽃 피는 장면을 초고속으로 촬영하여 처음과 마지막 장면을 합친 느낌이기도 합니다.
면발의 가닥 같은 파이프의 끝은 트럼펫의 나팔 모양으로 퍼졌는데, 그곳에서는 소리도 나옵니다.
뭉툭한 끝은 멀리서 보면, 꽃 안쪽의 수술대 끝에 달린 볼록한 꽃밥 같기도 해요.
저도 지나가면서 보았었는데, 나름대로 기억에 남았었습니다.
보통 건물 앞에 세우는 조각상들이 대부분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조용한 증식〉은 그야말로 신선했습니다.
나름대로 서울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환하게 밝혀주는 느낌의 조각상이었어요.
색감도, 모양도, 분위기도 밝아서 좋았답니다. :)
《거리로 나온 미술관》 작가님은 김병호의 공공조각이 주는 신선함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공공미술 전문가들은,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만이 가지는
자유로운 사고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김병호 작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봄날 꽃가루가 퍼져나가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벌과 나비 덕분에 며칠 사이 꽃이 활짝 피어나는 생명의 경이가 일어나잖아요.
그런 비가시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무언가 펴져가는 상황을 은유하는 '선(線)'이 필요했고,
이왕이면 국수 다발 같은 선의 다발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조각 공정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산업 재료로 눈을 돌렸습니다.
결국 기성품인 쇠파이프, 너트와 볼트 등 모듈화된 부품이 그의 조각 재료가 되었죠.
그렇게 인공적이고 도시적인 느낌이 나는 그의 세계를
'디지털 피조물'이라 칭하는 미술평론가도 있습니다.
〈정원〉의 경우 천장에서 내려온 무수한 파이프의 끝이 잘 깎은 연필심처럼 뾰족합니다.
게다가 파이프는 수직으로 내려오지 않고,
사선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더 불안한 느낌을 주지요.
한곳에 정박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한 것일까요.
파이프의 뽀족한 끝은 그런 '노마드 인생'을 표현한 것일지, 생각해봅니다.
또, 〈정원〉에서 사용된 알록달록한 원색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찾는 색상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는 현대인의 '보통의 삶'을 상징합니다.
《거리로 나온 미술관》 작가님의 눈에 띈 작품,
'꽃과 나무로 피어난 플라스틱의 상상력'을 담은 최정화 작가의 〈꿈나무〉입니다.
무, 바나나, 사과, 옥수수 등 온갖 과일과 채소가 나무에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서울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과 스타필드 코엑스몰 사이 연결 통로,
지하철에서 올라오면 평지지만 지상에서 보면 푹 꺼진 광장 같은 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최정화 작가의 이 작품은 재료적인 측면에서 '혁명적'입니다.
거리 조형물들은 주로 석재나 브론즈로 만들어지는데,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또, 플라스틱으로 만든 과일, 채소 나무는 동심의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하나의 나무에는 하나의 열매만 열리는 법이지만,
여기 〈꿈나무〉에서는 온갖 과일과 채소가 하나의 나무에 한꺼번에 열립니다.
즉, 현실이 아닌 동화에서 가능한 일이지요.
이 〈꿈나무〉 덕분에 어른들도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거리로 나온 미술관》 작가님은 용산의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물도 주목합니다.
세계적인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신축 사옥이었죠.
용산의 랜드마크가 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을 그저 덩치만 큰 건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꾸밈없이 당당하고 기품 있는 건축물이 서울 도심에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테니까요.
보통은 이런 규모의 대지 면적이라면 건물을 두세 동 짓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치퍼필드는 대지 위에 거대한 큐브 하나만 내려놓았다는 점에서 파격적입니다.
어마어마한 덩치의 단일 건물인데요,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폭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치퍼필드는 조선시대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고 합니다.
"백자에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당당히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장방형의 당당한 형태, 희디흰 색의 순정한 맛,
어떤 장식도 없는 단순미 등을 통해 달항아리 이미지를 추상화했습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을 보면, 달항아리의 어진 마음이 느껴집니다.
아주 단순한 입방체 형태가 경쟁하듯 뽐내는 주변의 마천루 빌딩을
어머니처럼 푸근하게 품고 있기 때문이죠.
《거리로 나온 미술관》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거리에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무심코 지나쳤던 작품들에게 눈길을 한 번씩 더 주어야겠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공부를 했으니, 이전보다는 눈에 들어오겠죠?
또, 거리 위의 작품들이 이렇게 깊은 사연과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우리도 작품을 하나하나 쓸 때마다 심혈을 기울이는 것처럼,
이 작가들도 수만 가지의 생각을 했을 거예요.
공공미술은 24시간 연중무휴 간판을 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주변을 둘러보면 공공예술 작품들이 다가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