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무덤에 심취하여 은근 바쁘나 약간의 이성을 할애하여 이 글을 작성한다. 작가 박완서 무덤 잔디는 정기적으로 전문적으로 벌초적으로 관리적으로 잘 되고 있었고, 꽃다발도 몇 개 놓여 있었다. 바람에 흩어진 그것을 잘 모아주며 ‘이 정도면 누울만하십니다’ 했는데 고요하였고, 다음에 가니 히득스그리한 것들은 치우고 빛깔이 선명한 것 하나만 놓여 있고 주변은 온통 여름풀로 가득하나 이곳은 단정하니 풀 깎아놓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자전거도 사고 자전거 책도 샀건만 공부하기 전 책상 정리하고 서랍 열어 뒤적거리고 필통 들여다보고 하듯이 갖추는 것만 열심 하다.
홍콩영화 ‘아비정전’에서 초식남 유덕화는 ‘1분세뇌녀’ 장만옥에게 가난에 대한 ‘비교평가자각’의 경험을 들려준다.
“어렸을 때 내가 가난한지 몰랐죠. 근데 친구들은 새 옷을 입는데 나만 단벌 신사더군요.”
‘수길’은 가난한 집안의 모든 재화와 공력을 들여 고등학교까지 졸업시킨 믿었던 장남인데 빈둥대기만 하다가 서울로 돈 번다고 떠났으나 2년간 연락이 끊기더니 ‘여러 가지’를 사들고 귀향하여 부모와 동생들 모두에게 큰 기쁨을 주지만 읍내서 도둑질로 장만한 것들이라 다음날 경찰에 잡혀가고, 현장검증 하는 날 수남은 사람들 틈에 끼여 형의 그 꼴을 보게 된다.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 중에서 하나 키우지, 피터 팬 ‘반려돌’은 정말 최고인데, 검은머리 짐승머리 짐승들을 누가, 어느 기관이 떠받들어주고 헤아려준다고 죽으면 태우고 갈아서 어디 가서 버리라는데 뭐하러 평생 갖은 고생과 근심걱정에 짓눌리고 꿰어달려 힘들게 헤매이는 법칙에 뛰어든 것인가 이번 생은 처음이라 아버지여)
기대가 깨진 아버지는 몸져눕고 다음 타자 수남이 돈 벌러 떠날 때 “서울 가서 무슨 짓을 하든지 ‘도둑’만은 되지 마라” 당부한다.
숙식제공 되는 전기용품 도매상에서 일하게 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수남은 어느 날 배달을 나갔다가 귀향결심의 단초가 되는 일을 겪게 된다. 엄청난 바람이 불어 세워 둔 자전거가 어떤 차 쪽으로 절로 넘어진다. 수남은 못 봤지만 긁혔다고 주장하며 차 주인은 오백 원짜리 자물쇠를 자전거 바퀴에 채우고 길 건너편 자기 사무실로 오천 원을 가져오면 열어주겠단다. 차 주인이 떠나자 구경하던 사람들은 자전거를 들고튀라고 부추기고 울던 수남은 들고튄다. 돌아와서 얘기를 하자 사장은 돈 굳었다고 좋아하며 자물쇠를 해체한다.
수남은 열여섯 살인데 옛날 어느 시절에는 그 나이면 부모이기도 하고 어른 대접 받지 않았던가 마는 사람들은 사람 간의 도리에 어두워 머리에 알밤을 먹이곤 하는 등 신체를 함부로 다루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디지털 시대에 비해 (해법은 모르겠으나) 삶의 문제는 부러울 정도로 단순해 보이지만, 자전거를 들고튈 때의 짜릿함에
형을 떠올리고 착잡한 그는 아버지처럼 자신을 반듯하게 세워줄 어른이 없다는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수남의 시절에는 돈 버는 곳에 세금 있다는 법칙이 없어서 어리고 늙고 간에 가족 개별로 속속들이 세금을 안 냈고 모두 협심하여 (돈을) 같이 똘똘 뭉치면 잘 뭉쳐지고 그렇게들 뭉쳤다. 명도 짧아서 백세까지 살 돈을 장만하지 않아도 돼 어느 정도 때가 되면 아랫대에 내놓고 물러나니 절로 순환이 되었다. 물론 그런 가족‘공동체’시절이었기에 형 수길은 (무상증여 해준 자신에게 무상증여 받으려 기다린다는 것을 알기에 어리석게도) 가족 생각에 도둑(놈)이 되었고 이렇게 소리쳤다.
“2년 만에 빈손으로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단 말야.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단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