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1) 다 이고 있을 순 없어서 책들을 처리할 때 내 첫 기준점은 저자 사인이나 준 사람이 적은 글이 있는가, 이다. ‘글방문고’의 <님의 침묵>이라는 몇 사람 손을 탄,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듯한 낡고 조그만 책을 버리려고 보니, 작게 영어로 적힌 친구 이름이 있었다. 필체도 내가 기억하는 필체여서 갖고 있기로 했다.
그 친구는, 자기 자신 외의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없다더니 함께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저런 사람이면 늙어도 괜찮으니 결혼하고 싶다 했는데, 독신이다(라고 추정한다). 작년에 세상 꼴을 보고 자해의 욕구가 도져 머리를 (부분) 밀고, 병원에 가서 엄지발톱을 뽑았다. 그렇다고 해서 뭐 아직까지 귀를 자르고 싶은 적은 없다.
며칠 뒤 버스를 타고 지나는데 그 친구(로 추정되는 이)가 길 건너 분식집으로 동행과 함께 들어가고 있었다. 내려서 바닥에라도 엎어지고 그 자리서 생을 마감하기라도 했어야 했으리라. 여행을 함께 다니고 책을 나눠 읽고, 나와 달리 일찍부터 도시에서 생활해서 어릴 땐 서로 전혀 만난 적도 없지만, 동향인이고 그리 친한 사이였으니.
어깨 부분에서 예전과 다르다는 게 느껴졌을 뿐 아직(?) 젊었다. 여전히 분식집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미소를 띄게 한다. 너거 집에 가면 밥 주나, 라면서 내 자취방 깻잎 절임과 김치만으로도 최고라며 맛있게 먹고, 웬만한 식당 음식은 다 맛있제 맛있제, 라며 감탄하고, 주인집 할배는 친구가 왔으니 물 값 전기값 더 내라며 책정해서 내밀곤 했는데, 추억의 친구를 보고도 나는 내리지 않았다. 이유는 길어서 생략하고, 이 책 뒷부분 작품해설에서「님만 님이 아니라 그리는 것은 다 님이다. 」를 적겠다. 이것은 한용운이 그의 시집에서 쓴 해설 구절인데 <군말>에서 밝힌 것이라 한다.
단지 옛날로 남아 있어야 그리는 것이다.
첫 모습이 갈래머리 였던 친구여, 친절하고도 순리적이며 냉혹하기까지 한 시간은 우리를 멀리 떨어뜨리고 자립까지 시킨 것이로구나.
인연2) 2012년 9월 동네 작은 책방에서 도올 김용옥 책을 후루룩 넘겨보게 됐는데 넘겨서 딱 멈춘 페이지에, 죽을 땐 누구나 불행하게 죽는다는 취지의 문장이 있었다. 마음에 딱 꽂혀서 계속 그 문장을 정확히 기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렸다. 도올 김용옥은 노인인가 젊은인가. 예전의 노인 같은 젊은이 느낌은 의복 때문인 것 같고, 요즘의 젊은이 같은 노인 느낌은, 아직도 ‘내가 낸데’ 하면서 전 지구적 탐구 정신을 놓지 않고 현역으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우리의 마음에 따라
적으로도 되고 친구로도 됩니다.
언어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 민족을 어찌 일본이나 미국보다
더 대적시한단 말입니까?(김용옥,『만해 한용운, 도올이 부른다』문예출판사 1권, 7쪽)를 2024년 9월에 쓰고, 그 다음 달인 10월에 책으로 냈다. 한용운에 대한 한용운을 기억하는 한용운을 부르는 이 책은 관련한 역사와 문학, 동서양인, 과거와 현재를 폭넓게 오간다. 도올 방식으로, 온갖 것을 방대하게 두루 섭렵한 사람이 쓸 수 있는 글, 뭐든지 그 의미와 내력을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모인 책이다. 만해 한용운은 법명이 용운, 법호는 만해, 계명은 봉완, 속명은 유천이다.
혁명가 고 한유천, 용운 스님은 <최후의 5분간>이라는 수필과 <흑풍> 등등의 소설, <님의 침묵>시집을 낸 문인, 한문 불교 경전을 번역한 번역가, 불교 잡지 발행인이었다. 1937년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동삼이 경성감옥에서 사망했는데, 일제의 감시가 심해 아무도 나서지 않는데 심우장에 모셔와 대성통곡 하며 장례를 치러 주었다고 한다(시에 대해 논할 생각이었는데 또 죽음, 장례 이런 쪽으로 글이 빠지고 있구나).
1911년 만주에서 얼굴에 총알이 스쳐 후유증으로 체머리를 앓았으며 해방을 못 보고, 남북이 갈라지는 것도 안 보고, 중풍을 앓다가 1944년 6월 29일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이 책에서 1945년에 대해 쓴 1권 216쪽에는 “일제강점기 종료, 미 군정기 시작” 이 있는데 도올 김용옥의 문장이다.
천규석 선생이 떠나서 마음이 휑한데 여러 사건들이 터지고, 더구나 캄보디아 사태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지나는데, 주택형 돌봄시설에서 우렁차게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가 있었으니 ‘닐리리 맘보’였다. 이 노래는 흥겹게 방방 뛰는 노래지만 ‘님 계신 곳을 알아야 고무신 우산 보내지’ 하는 죽은 사람을 향해 부르는 실은 슬픈 노래다. 나는 계속 슬픔에 경도되어 ‘대륙 간 탄도 미사일’ 글자를 던지고, 그 점괘를 적는다.
1 더하기 1은 1이고, ‘우리‘에서 ’우리‘는 한 명이다.
‘우리’는 ‘나’ ‘내’ ‘우리’이며 ‘나의 소원, 내 소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맞는다. 1 더하기 1은 2이고, ‘우리’에서 ‘우리’는 두 명이나 그 이상이니 두 국가론도 맞는다. 통일은 필요 없고 소원이 건물주라면 그 또한 자유이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는 것도 자유이다.
대- 만
륙- 셈부르크
간
탄- 자니아
도- 미니카 공화국
미- 국
사- 우디 아라비아
일- 본
‘간’에서 나라이름이 빈다. 다시 던지면
간/칸- 칸보디아, 캄보디아
베트남 국경에서 죽은 채 발견된 젊은 여성의 명복을 빈다.
밝고 환하게 드러나는, 음습하지 않은 정겨운 통일운동을 지향하고, 생존을 위해서라도 통일을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통일을 원하자.
(feat.국악밴드 우리음_탑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