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 한국인 유일의 단독 방북 취재
진천규 지음 / 타커스(끌레마)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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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도 (작가, 전 오산중 교사)

 

한 제자의 출간 소식

 

그는 이즈음도 일흔이 넘은 옛 훈장에게 여태 이런저런 소식을 전화나 문자로 보내주고 있다.

 

"비자 발급받아 단동을 출발하여 평양에 갑니다."

"3차 방북 취재를 마치고 중국 심양을 거쳐 어제 밤에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평양을 출발하여 지금 막 심양에 도착 했습니다. 저녁에 인천공항 도착예정입니다."

 

나는 진천규 제자가 소식을 전해올 때마다 짤막한 답신을 보냈다.

 

"수고 많네. 건강! 건투!"

 

그런데 지난 주 수요일인 18일 이 뜨거운 삼복중에 <평양의 시간은 서울과 함께 흐른다>라는 옥동자를 탄생했다는 기별을 받았다. 나는 즉시 "잘 알았네. 즉시 주문하여 사보도록 할게"라는 답신을 보내고 그 자리에서 인터넷 서점에 주문하여 지난 주말 따끈한 그의 첫 작품집을 받았다.

 

그의 땀이 듬뿍 밴 책을 펴자 내가 작품집을 낸 이상으로 반갑고, 느껍고, 그가 대견해 보였다.

       

"교육자는 그 제자들이 말한다"

 

흔히들 말한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교육자는 무엇으로 말할까? 아마도 그 답은 "교육자는 그 제자들이 말한다"일 것이다. 정말 나는 그가 자랑스럽다. 지난해 가을부터 전쟁기운이 가득했던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그가 신의주 평양 등을 둘러보고 "북녘은 평온하다"는 소식을 남녘으로 전할 때 우리 모두는 안도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46년 전인 197231일 서울 오산중학교 운동장에서 처음 만났다. 해마다 오산(五山)학교는 국경일인 삼일절 날 개학식 입학식을 치렀는데 이는 오산 후학들이 학교를 세우신 남강 이승훈 선생을 기리고자 하는 갸륵한 정성이었다.

 

나는 그때 신임교사로 중1 신입생을 담임 맡았다. 가장 신출내기라고 1-12반에 배정되었다. 그날 나는 운동장에 모인 70명 신입생 모두를 하나하나 껴안아 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보았다. 그때 진천규 기자도 내 반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뒤 <한겨레신문>을 보면 사진 밑에 진천규 기자라는 이름이 보였다. 혹시 그가 아닐까 하는 기대로 전화를 하자, 바로 내 제자 진천규였다. 우리는 한 밥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가 사진기자가 된 것은 나 때문이라고 하여 깜작 놀랐다.

 

나는 반 학생들의 소풍 때나 그밖에 행사 때는 카메라로 그들의 모습을 앵글에 담곤 했다. 그게 반 학생들에게는 멋지게 비친 나머지, 그는 부모에게 졸라 카메라를 입수하여 취미 생활하던 게 평생 직업이 되었다고 말했다.

 

2004131일 나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권중희 선생을 모시고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갔다. 그때 한 독자가 권 선생 항공표를 구해 준 바, 로스앤젤레스를 경유케 되었다. 그런데 그가 그 사실을 알고 출국 전 내 집으로 전화가 왔다. LA 공항에 나오겠다는. 사실 권 선생과 나는 토종 한국인으로 영어 한 마디조차 할 줄도 모른다.

 

우리 두 토박이 늙은이가 LA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가는데 누군가 "선생님!"하고 불렀다. 꺽다리인 그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는 나를 취재하고, 나는 그를 취재하는 사제의 열띤 취재장이 되었다. 그의 덕분으로 미국 입국 때도, 돌아올 때도 LA 동포들이 조촐한 환영회와 환송회를 해줘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평양 시민도 그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에는 이번 취재기간 동안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평양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나는 그들을 구경하러 가지 않았다. 구경꾼이 되기도 싫고, 관찰자가 되기는 더욱 싫었다. 무슨, 어떠한 자격으로 그들을 '동물원'의 울타리에 갇힌 동물원 구경하듯이 하겠는가?

 

한 핏줄을 나눈 동포이기 이전에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가족과 오순도순 시간을 보내고, 평일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휴일에는 공원에서 놀이를 즐기며,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는 그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의 책 머리말을 읽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넌 내 제자다. 나는 평생 내 동족을 헐뜯거나 이상한 말로 비난한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46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가 다섯메 그 교정에서 그를 다시 껴안아 주고 싶다.

  

우리는 원래 하나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둘로 나눠져 있지만 언젠가, 아니 곧 우리는 하나로 합쳐질 거다. 마치 시냇물이 바위를 만나 두 줄기로 나눠져 흐르다가 다시 한 줄기로 합쳐져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반드시 하나가 될 것이다.

 

"무엇을 읽고 있을까? 출근길을 재촉하는 평양 시민들 사이로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학교로 향하는 두 소녀가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휴대폰이 아니라 책을 보며 길을 걷는 모습을 보니 옛 기억이 새롭다. 나도 중·고등학교 무렵에는 시험기간이면 하나라도 더 외우려고 등굣길에도 책을 보곤 했는데, 저 아이들도 오늘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걸까? 평양에서는 이처럼 학생들이 책을 보며 걷는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 120

 

하루에 일만 그릇의 평양냉면을 만들면서도 역사상 단 한 번도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은 옥류관 주방을 진 기자는 20186월 제4차 방문 때 취재하여 일부나마 공개하고 있다.

 

"주방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첫째, 인민 위생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 위생이 우선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주방의 통로와 홀로 음식을 나르는 통로가 분리되어 있고, 유리창과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주방의 통로에 접근하더라도 밖에서 주방의 일하는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는 없다. 둘째, 육수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 181

 

"지금 우리도 하나가 될 준비를 쌓아나가고 있다. 수많은 염원이 모여 큰 물결이되고, 그 물결이 힘 있게 흘러 한반도 구석구석을 적시고, 다시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될 수 있도록, 그래서 완전한 하나가될 수 있도록 준비해나가고 있다." - 292

 

이 책은 46배판 형으로 지금 북한의 생생한 장면을 100점 이상 컬러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JTBC 손석희 사장이 추천하는 글을 썼다. 아마도 그분도 나와 같은 평화통일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으리라.

      

"이 책의 제목은 당연히 중의적이다. 30분 차이 났던 시차가 비로소 같아졌다는 것과 함께 남과 북의 정서적, 아니 역사적 시간은 결국 함께 흘러가야 한다는 것. 진천규가 만난 북의 시간과 공간들은 어떤 것인가? 오랜 시간 동안 들여다볼 수 없었던 땅 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그 변화들은 혹시 일시적이거나 제한된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의구심을 갖고 읽게 되는 것은 내가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두껍지 않은 책이면서도 던져주는 고민은 참으로 두껍다. 그러나 결국 의구심을 걷어내기로 한 것은 그가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애정으로 그 땅 위의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316쪽의 책장을 모두 읽고 덮자 문득 내년 여름에는 평양 옥류관에 가서 냉면을 먹은 뒤 백두산을 오르고 싶다. 나는 2005년 여름 민족작가대회로 백두산 장군봉을 올라갔다. 그때 엄청 추웠다. 동행 김원일 남정현 선생은 추위와 바람 때문에 목도리를 두르거나 파카를 입었다. 그날은 가장 무더운 때인 2005723일 새벽 해 뜰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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