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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뿐인 네 인생, 네 뜻대로 살아라 - 자신의 뜻을 살려 세상에 큰 흔적을 남긴 12인의 이야기
정운현 지음 / 새빛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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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  표지
ⓒ 도서출판 새빛
 

'인생은 연극이 아니다'
 
나의 고교시절 은사 김영배 선생님(국어)은 수업시간 틈틈이 "인생은 연극이 아니다"고 말씀하셨다. 연극은 여러 차례 공연할 수 있지만 '인생은 단 한 차례만 공연하기에 아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면서 당신은 북에서 월남, 낮에는 군무원으로 일하면서 야간대학을 나와 고교 교단에 섰단다. 김 선생님은 양주동 박사의 수제자로 모교(동국대)에서 정년퇴임을 하셨다.
 
김 선생님은 수업시간 교수방법도 아주 야무졌다. 그때 틈틈이 '인생은 연극이 아니다'고 하신 말씀은 당신의 체험을 곁들였기에 큰 감동으로,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 이런저런 인과관계로 그동안 흉금 없이 지내던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최근 야인으로 지내면서 <한 번뿐인 네 인생, 네 뜻대로 살아라!>는 신간을 펴냈다. 이 책은 단 하나밖에 없는 인생길을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귀한 책으로 연말 서점 가에 단연 돋보일 테다.
 
"어떻게 살 것인가?"
 
동서고금 많은 학자, 현인들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자 심지어 출가하여 산속 암자에서 아예 문을 닫고 그 해답을 찾기도 했다. 그 해답은 각각일 테다. 하지만 어떤 현인은 그 물음의 답은 말보다 '실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저자 정운현씨는 다음의 말로 인생길에서 삶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다. 결코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영웅호걸도 장삼이사(예사사람)도 다 똑같다. 오직 단 한 번의 기회만이 있을 뿐이다. 삶의 형태나 내면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 번의 기회만은 모두 똑같다."
  
여러 길 중의 하나인 오솔길
▲  여러 길 중의 하나인 오솔길
ⓒ 박도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이 산 삶이 될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한 답으로 동서고금의 여러 성현들의 삶을 예화를 든 뒤, 그 답을 간결하게 들려주고 있다.
 
"자기 뜻대로 살면 된다. 그것이 가장 잘 산 삶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인생이라면 네 뜻대로 살아야 후회가 없다."

이 책에는 자기 뜻대로 살았던 동서고금 열두 분 삶의 예화를 들려주고 있다.
 
그 첫 번째로 인도의 소왕국에서 왕자로 태어난 뒤, 왕위 계승마저도 버리고 구도자의 길을 걸은 석가모니다. 그 두 번째는 조선 순조 조에 태어나 '술 한 잔에 시 한수'로 세속을 초월한 방랑시인 별칭 '삿갓시인' 김병연이다,

그 세 번째는 조선 세종 조에 태어난 김시습으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뒤 조카 단종을 폐위하자 이후 그는 전국을 두루 방랑하다가 경주 남산에서 은거, 우리 문학사에 최초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했다. 그 네 번째는 시류를 따르지 않다가 세 차례 유배와 여섯 차례나 파직을 당한 교산 허균이다. 그분은 당대의 모순인 적서차별 타파와 사회 변혁을 꾀한 소설 <홍길전>을 남겼다.
 
그 다섯 번째는 중국 명나라 때 사상가 이탁오의 삶을 소개했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당대 풍미한 유학의 권위적인 전통을 공격하는 <분서>를 펴냈다. 그 여섯 번째로 불온한 식민지 조선 청년 박열을 사랑한 일본의 여인 가네코 후미코다.

그 일곱 번째는 행동파 경제학자요, 실천적 생태론자인 미국인 스콧 니어링이다. 그는 통나무집에서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 여덟 번째는 181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난 데이빗 소로우다. 그는 최고 명문 하바드 출신이지만, 평생 번듯한 직장 대신 측량이나 목수 등,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통나무집에서 지냈다.
  
원주 근교의 무위당 장일순 무덤
▲  원주 근교의 무위당 장일순 무덤
ⓒ 박도
 
저자가 예화로 든 12분의 인물 가운데는 옛 사람뿐 아니라, 현대인도 포함시켰다. 그 아홉 번째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원주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 무위당 장일순이다. 그는 지구 환경보존과 생태계 회복운동에 앞장선 환경운동가요, 한 살림운동의 대부다.

그 열 번째는 친일연구자 임종국이요, 그 열한 번째는 우유 장사로 돈을 번 뒤, 나라와 겨레를 위해 민족사관고를 세운 파스퇴르 유업의 창업자 최명재다. 그리고 마지막 열두 번째 인물로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및 '농부 작가'로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간 송성영이다.

이상 12분 모두 당신 신념대로 이 세상을 살다가 가신 분들이다. 
  
친일연구가 임종국 선생
▲  친일연구가 임종국 선생
ⓒ 박도
 
네 뜻대로 살아라!
 
저자는 그의 서문에서 다음의 말로 마무리하고 있다.
 
"우리 인생, 길지 않다. 100년 살기도 쉽지 않다. 지금 우리는 종착역을 향해 논스톱으로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 있다. 우리 손에는 편도 티켓 한 장뿐이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다른 기차를 갈아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여정을 내 뜻대로 최대한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남은 내 인생길에 새로운 각오와 앞으로 살아나갈 방향을 새삼 다짐했다. 아울러 저자의 높은 경륜에서 나온 귀한 저서에 깊이 감사드렸다.
 
누구나 한 번 뿐인 인생길에 아직 방향을 잡지 못한 이나, 어느 쪽이 더 유리할까 좌고우면,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서 우왕좌왕하는 이나, 지금 걷고 있는 자신의 인생길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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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 1966-1969
안장헌 지음 / 눈빛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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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67화, 안장헌 사진집 <소소한 일상>을 펼쳐보면서

22.09.08 14:57l최종 업데이트 22.09.09 10:56l 박도(parkdo45)

<소소한 일상> 표지
▲  <소소한 일상> 표지
ⓒ 눈빛출판사
 
우체국 집배원이 떨어뜨리고 간 묵직한 안장헌 사진집 <소소한 일상>을 펼쳐보면서 서울의 지난날과 오늘을 많이 견주었다. 이 사진집 속의 작품들은 대체로 1965년부터 1969까지로, 그 시절은 나의 대학 시절과 맞물렸다.
 
안장헌 사진작가와 나는 대학 동기다. 우리는 단과 대학도 학과도 달랐지만 6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무슨 시위나 행사 때마다 그는 사진기자처럼 늘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뒤따랐기 때문이다. 또 나와는 학군단(ROTC) 동기로 학교 연병장에서나 여름방학 야영훈련 때 M1 소총을 '앞에총' 자세로 들고 헉헉거리며 함께 구보했던 전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참, 그때는 대부분 가난했고, 남루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검정 물을 들인 군용 작업복에 워커(군화)를 신고 다니던 게 유행이었다. 학교 등교 후 점심시간이면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들고 대운동장 잔디계단에서 오순도순 모여 먹거나, 학교 앞 제기천변 콩나물 밥집에서 콩나물 국 한 그릇을 산 뒤 거기 말아서 먹는 게 호사였다.
 
그의 사진집을 펼쳐보면서, 불과 60년 전과 오늘의 서울은 뽕나무 밭이 바다로 변한 이상으로 놀라게 발전했다. 지금은 빌딩 숲으로 뒤덮인 성수동 카페 거리는 당시 고약한 인분 냄새가 진동했던 뚝섬 일대 배추밭으로 이 작품집에서 볼 수 있다. 거기서 배추농사꾼 자식으로 자란 한 후배의 말이다.
 
"차라리 대학에 가지 말고 배추농사나 지으면서 그 땅을 보존했다면 지금은 빌딩 주로 살고 있을 텐데…."
 

그래서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말이 생겨났나 보다.
 
<소소한 일상> 속의 작품들
▲  <소소한 일상> 속의 작품들
ⓒ 안장헌
 
아이들 사진 속의 구김살 없는 생동감
 
<소소한 일상>을 펴낸 사진출판 전문인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의 머릿말이다.
 
"1960년대 후반기는 산업화가 시작된 시기로, 정치적으로는 1인이 장기집권을 도모하던 때였다. 도시화와 공업화로 농촌인구는 나날이 감소하였고, 이농민들은 서울로 모여들어 산동네를 이뤘다. 여기저기 막 생겨난 공장의 노동자나 날품팔이로 연명해 갔다. 당시 청년사진가 안장헌은 기록자로서 혹은 관찰자로서 역사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사진에 담았다.
 
… 이 사진 집에 담긴 사진들은 안장헌 작가가 맑은 눈으로 바라본 '있는 그대로'의 사회상이며 일상이다. 처참하리만치 참혹한 사회현실에 대한 연민과 울분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 사진 중심으로 구김살 없는 생동감이 전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안장헌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맑고 밝은 이미지였을 것이다."
  
<소소한 일상>을 펴낸 안장헌 사진작가
▲  <소소한 일상>을 펴낸 안장헌 사진작가
ⓒ 안장헌
 
이 사진집을 펴낸 안장헌 작가의 꼬리 말이다.
 
"나는 대학시절 날마다 책가방 속에 카메라를 넣고 도보로 등하교 했다. 등굣길에는 일부러 골목길을 바꿔가면서 촬영 대상을 물색하였다. 또, 하굣길에 다시 그 길을 지나면서 광선의 변화를 감지하는 행보를 계속했다. 그리고 일요일은 이따금 시내버스 투어를 하였다. 서울의 변두리는 내가 자란 시골과 비슷해서 천진무구한 어린이들을 만나 즐거운 마음으로 카메라 앵글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사진집에는 당시 서울의 이곳저곳 모습이 담겨있다. 서울 중심부인 명동으로부터 청계천, 그리고 어린이 꿈의 광장인 창경원, 노인의 쉼터 탑골공원과 남산공원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가감 없이 만날 수 있다.
 
평생 카메라 앵글 속에 <소소한 일상>을 담은 안장헌 작가의 살뜰한 삶에 깊이 고개 숙인 뒤 이 사진집을 닫았다. 
 
비 오는 날의 서울 어느 뒷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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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는다 - 100일 동안 100억 원씩 챙긴 세 남자의 전설적인 이야기
이동재 지음 / 창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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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읽을 만한 작품이 없다하고, 작가나 출판사는 독자들이 책을 외면한다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양측 모두 일리 있는 얘기다. 일찍이 스위스의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는 사회상의 반영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언어의 총아인 소설은 그 시대상의 반영한다고 하겠다.

내가 최근에 읽은 이동재의 장편소설 <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는다>라는 작품은 이 시대의 부동산 광풍 세태를 잘 그린 작품이었다.


'100일 동안 100억 원씩 챙긴 세 남자의 이야기'
'두 명의 루저와 한 명의 아웃사이드가 벌이는 이 사회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
'니체처럼 살다가 장자(莊子)처럼 죽음을 맞이한 한 사나이의 이야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곧 돈이 자유요, 정의요, 진리다'라는 이 세태에, 주눅 들지 않고 살아가려면 100억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이 소설을 썼다."
 
잠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금강 유역의 별 볼일 없는 땅에 세종시가 들어서면서 임야와 전답이었던 땅이 대지로 전환되면서 많은 건설 회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땅이라 했다. 현재 공시지가만 해도 800억 원 이상이고 시가는 일천억 원가량 되는데 지주가 미국에 있는 연고로 아직 나대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몇 달 전에 600억 정도의 여유지금이 있으니 아파트 부지를 구입해달라는 오더를 받았어요." 그 돈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진우가 묻자 영준은 자신도 모르겠다고 했다. 추측컨대 군부 독재 정권 때 몰래 빼돌린 정치자금이거나, 어떤 재벌가에서 몰래 조성한 비자금 일부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 토지를 세 명의 토지사기단이 작당하여 100일 동안 작전을 벌여 100억 원씩 꿀컥했다. 하지만 주범 박영준은 죽음을 앞두고 강원도 산중으로 잠적했다. 그를 애써 찾아온 종범 서정식과 주고받는 말이다.


"형님 매장을 원하십니까? 화장을 원하십니까?"
"나는 장례식도 거부하겠네. 그냥 아무도 모르게 하늘로 솟을 작정이네."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아니야. 그냥 내버려 두게. 이 지구가 나의 무덤 자리이고 해와 달과 별이 내 곁을 지켜주는 동반자일세. 독수리나 까마귀가 내 육신을 쪼아 먹고 쥐나 개미가 뼈를 갉아 먹도록 내버려 두게. 인류가 오래 전에 잃어버린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싶네." - 본문 462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더라도 꿈을 꾸는 능력이 남아 있는 한, 인생은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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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랑
박도 지음 / 눈빛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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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보다

나의 마흔네 번째 작품집 <전쟁과 사랑>이 지난 주초에 발간됐다. 이 소식을 들은 한 후배의 문자였다.
 
"형, 또 나왔어?"
 
한 출판인의 말이다. 그는 내 신간을 문공부에 납본을 하러가자 담당자의 말이라면서 전했다.
 
"박도씨 또 출판했어요?"
 
이름도 별난 사람 탓인지, 다산(多産)이라는 탓인지, 유독 내 이름을 기억하면서 뱉은 말이라고 했다. 아무튼 이 축복받지 못한, 인문이 고사해 가는 세상에 나는 용감하게 또 같은 제재의 책을 또다시 출판했다.
 
어느 작품인들 쉬이 출판했으련만 이번엔 매우 힘들었다. 그 까닭은 기존에 이미 출판한 <약속>의 개정판인 데다가 최근 출판계의 불황 여파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헌 집 고쳐 짓기가 새집 짓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말처럼, 이번 출판은 여러 가지로 참 힘들었다.
 
지난해 봄 <약속>을 펴 내준 눈빛출판사로 재고를 문의하자 6년이 지났는데도 초판 가운데 아직도 100여 부가 남았단다. 그 말에 순간 내가 70 평생을 헛되게 살았다는 느낌이 엄습했다.
 
"그래도 선생님 작품은 양호한 편이에요."
 
출판사 직원은 위로 말을 건넸다. 하지만 평생 글쟁이로 살기로 작정한, 내 어린 시절의 꿈이 그 순간 잿빛으로 사라졌다. 나는 전화를 끊고 혼자 분노하면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나는 바보다.'

이 생면부지의 강원 산골에서 이 무슨 바보짓인가. 가만히 서울에 그대로 눌러 있어도 수억대의 재산을 굴리는 졸부일 텐데, 그 비싼 여비를 들여가며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이네, 중국이네, 러시아네 세계 곳곳을 수차례나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전쟁사 공부에 골몰한 뒤 끝이 이럴 수야...

이대로 절필 하느냐로 고심하다가 '그래, 다시 도전해 보는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 혀를 깨물고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았다. 그로부터 이태만에 <전쟁과 사랑>이 탄생했다.
  
 이 작품 집필 계기가된 한 장의 사진 ; 미8군 하사관이 가장 나이 어린 중학생 정도의 인민군 소년병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인민군 포로의 이름은 김해심, 가운데 통역비서의 이름은 이수경으로 기록돼 있었다. 1950. 8. 18.).
▲  이 작품 집필 계기가된 한 장의 사진 ; 미8군 하사관이 가장 나이 어린 중학생 정도의 인민군 소년병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인민군 포로의 이름은 김해심, 가운데 통역비서의 이름은 이수경으로 기록돼 있었다. 1950. 8. 18.).
ⓒ NARA / 박도
 
포화 속에서 그려진 한 편의 순애보 <전쟁과 사랑>
 
이 작품을 다시 쓰기로 마음을 먹은 뒤, 그래도 끝까지 좌절치 않고 탈고할 수 있었던 그 원동력은 미국의 행동주의 작가 헤밍웨이 때문이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노인과 바다>를 무려 200여 번이나 읽으면서 가다듬었다는 얘기였다.

또 독일의 문호 괴테는 그의 <신곡>을 평생 동안 쓰고 난 뒤 그해에 숨을 거뒀다는, 대학시절 세계문학사 시간에 들은 노희엽 교수의 말씀이 늘 뇌리에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헤밍웨이처럼 200번은 읽지 못했지만, 스무 번 이상은 읽으면서 문장을 가다듬었다. 이 작품 <전쟁과 사랑> 본문 첫 문장이다.
 
"나는 미국에 머무는 열하루 동안 6·25전쟁 포화 속에서 그려진 한 편의 순애보를 읽었다. 또한, 분단의 컴컴한 긴 터널 속에서 통일에 이르는 한 줄기 빛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이 작품 본문 마지막 문장이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 꿈에도 소원은 통일 / 이 정성 다해서 통일 / 통일을 이루자."

다음은 이 작품 작가 후기 '평생 쓰고 싶었던 작품' 첫 문장이다.
 
"나는 이 한 편의 작품을 쓰고자 76년을 살아왔다."
 
다음은 작가 후기 마지막 문장이다.
 
"이 작품 <전쟁과 사랑>은 두고두고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객관적으로 바르게 알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이다. 또한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끝내 약속을 지킨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는 오래도록 독자의 사랑을 받으리라 믿으면서 마침내 긴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 작품 배경지인 낙동강 유역 다부동전적지 조지훈의 '다부원에서' 시비 옆에서 답사 중인 필자.
▲  이 작품 배경지인 낙동강 유역 다부동전적지 조지훈의 "다부원에서" 시비 옆에서 답사 중인 필자.
ⓒ 박도
통일 제단에 이 작품을 바친다
 
이 작품 표지 3쪽(뒤 표지 안쪽)에 실린 추천의 말이다.
 
이 작품의 훌륭한 점은 이념적 편향에 사로잡히지 않는 공정한 시선을 통해 전쟁의 실상에 더 가까이 접근하고자 시도한 것, 그럼으로써 남북 정치체제의 모순을 더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체제의 논리를 넘어선 민족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증언한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미덕이다. - 염무웅 (문학평론가)
 
우리 근현대사 자료 발굴에 발로 뛰며 헌신해 온 박도 선생이 6·25전쟁사에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전투를 바탕으로 <전쟁과 사랑>이라는 장편소설로 완성했다. 박도 선생은 6·25전쟁을 체험한 마지막 세대이기에 이 작품은 그 시절을 증언하는 생생한 자료로도 매우 소중하다. - 김원일 (소설가)
 
박도의 <전쟁과 사랑>은 한국전쟁의 구체성을 한국전쟁의 구체적 흐름 속에서 살피되, 한국전쟁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성찰을 바탕으로, 작중 주인공들의 사랑의 정동이 감동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차원 높은' 전쟁소설로서 손색이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유산인 분단의 현실을 창조적으로 넘어 민족의 평화적 일상을 향한 통일 미래에 대한 소설적 실천을 보인다. - 고명철(문학평론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서 70여 년 전에 시작된 6·25전쟁….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는, 그 지긋지긋한 전쟁상태를, 이제는 끝장내야 하는 이유가 이 작품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진천규(통일TV대표)
  
 이 작품 배경의 한 곳인 북한 평안북도와 자강도 경계에 있는 묘향산(2005. 7. 24. 촬영).
▲  이 작품 배경의 한 곳인 북한 평안북도와 자강도 경계에 있는 묘향산(2005. 7. 24. 촬영).
ⓒ 박도
 
마침내 탈고한 본문의 글자 수를 보니 30만여 자다. 내가 이 작품을 쓰고자 자판에 두드린 글자는 아마도 그보다 열 배는 훨씬 넘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출판사에 넘긴 뒤 너덧 차례 교정을 보면서 그때마다 저절로 눈물이 쏟아졌다. 작가가 눈물을 쏟지 않고서 어찌 독자의 가슴을 여미게 하겠는가.
 
이 작품이 조국통일에 물꼬를 트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했으면 좋겠다. 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전쟁과 사랑>이라는 카펫을 한 올 한 올 짰다. 삼가 통일 제단에 이 작품을 바친다.
 
정치적인 통일 선언 이전에 남과 북 백성들이 문화적, 곧 정서적 통일이 앞서야 진정한 통일을 이룰 수 있다. 그게 나의 지론이다. 문화가 바탕이 되지 않는 경제대국은 모래성이다. 하루아침에 허물어지는 게 경제다.

나의 <전쟁과 사랑> 작품이 남북한 겨레에게 통일의 희망을 주고, 동질성을 회복케 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침내 책이 출판된 지금, '실을 다 뽑은 누에'처럼 고치 속에서 긴, 영원히 깨어나지 않는 잠을 자고 싶다. 


이 작품을 쓴 작가의 글입니다.


"나는 미국에 머무는 열하루 동안 6·25전쟁 포화 속에서 그려진 한 편의 순애보를 읽었다. 또한, 분단의 컴컴한 긴 터널 속에서 통일에 이르는 한 줄기 빛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숭고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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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향한 반걸음 - 한민족의 공존과 한반도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길
김홍걸 지음 / 비타베아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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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식견

 

한반도 평화는 남북 양자 간에 잘 합의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주변 강대국들이 서로의 역할을 톱니바퀴 맞물리듯이 잘 해줘야 간신히 만들어낼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다. - 위의 책 7쪽

 

1971년 박정희 대통령과 맞붙었던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3단계 통일론'과 '4대국 안전보장론' 등 한반도 비전을 제시했다. … 우선 엄혹한 냉전시대에 그런 주장을 했던 용기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도 아직 냉전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다. … 그런데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북한과의 협상을 말하고 평화를 주장했다. 더욱이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들도 깜짝 놀랄 정도의 파격적인 발상을 던졌다. … 이때 던진 선견지명은 결국 평생을 따라다녔던 이념적 음해와 '색깔론'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48년 전에 꺼내든 대선공약들은 어떻게 하면 한반도 평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예견했던 조감도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당시 주장들이 상당 부분 실현됐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들이 평화를 보증한다'라는 4대국 안전보장론은 나중에 남북이 포함된 '6자회담'이 됐다. - 위의 책 39~43쪽

 

보수 우익 진영에서는 6‚15회담이 내놓은 성과에 대해 '퍼주기'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 하지만 남북경협사업들은 대부분 '상호성'에 입각한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 경협사업인 개성공단의 경우를 살펴보자. 우리가 세계 어느 지역에 간다고 해도, 당시 개성공단처럼 우수한 노동인력을 그렇게 낮은 임금을 주고 고용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개성공단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사업이 중단된 2016년에도 월 15만원 수준이었다.
 
이미 중국의 대도시 공장노동자 평균 임금이 70~90만원, 베트남 노동자 평균 임금이 20만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낮은 수준이다. 게다가 완벽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노동자의 숙련도나 생산성 증가 속도 역시 여타 지역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 위의 책 53~55쪽 


그의 혜안

 

트럼프는 사업가다. 정치인처럼 생각하는 게 아니고, 모든 사안을 사업가의 관점에서 비즈니스 프로젝트처럼 생각한다. '이 비즈니스를 내가 시도해서 성공할 수 있을까', '몇 년 만에 얼마나 이익을 볼 수 있을까', 이런 걸 계산하는 사람이다. - 위의 책 90쪽 

 

김정은 위원장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과 통치 스타일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지시를 해놓고도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관료들은 적당히 시간을 보내면서 지도자가 잊어버릴 시점을 기다리면, 얼마든지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본인이 먼저 지시를 했든, 혹은 밑에서 건의가 올라와 결정을 했든, 한번 얘기가 나온 일은 책임을 지게 만든다고 한다. … 중국 측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선대의 김정일 위원장보다 신중하며,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통이 크고,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 북한의 젊은 엘리트들 상당수는 6‚15 정상회담 후에 양성하기 시작한 인력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6‚15 이후 북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그동안 교류가 없던 해외국가들과 수교를 할 수 있게 됐고, 해외유학이 활성화될 수 있었다. 덕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심지어 미국 유학을 간 경우도 있었다. 그때의 유학생들이 돌아와 이제 김정은 정권의 '30대 실무집단'이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북한을 옛날의 북한으로 보면 안 된다. - 위의 책 112~114쪽

  
후생가외
 
나는 그의 신간 <희망을 향한 반걸음>을 택배 기사로부터 전달 받은 뒤 침대에 누워 여기까지 읽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에 정좌했다. 그때부터는 밑줄을 쳐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 순간 '후생가외(後生可畏)'란 말이 번쩍 떠올랐다.
 
이 말은 공자가 "후배들이 두렵나니 어떻게 장래 그들이 오늘날 우리만 못할 줄로 아는가?"라는 말씀으로, 후배나 후학들이 선배나 선생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류문화와 역사를 지속적으로 발전케 하는 것이다.

교사 초임 시절, 학년말 교직원 연수회 때 철학자 안병욱 숭실대 교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사람으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산에 나무를 심는 일과 사람을 교육하는 일입니다."

그때 그 말 탓인지 나는 줄곧 교단을 지키다가 교육 현장에서 물러났다. 이즈음 나는 나무로 치면 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온통 후회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33년 간 교사생활을 한 것 만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979년 3월, 김홍걸 학생은 고교 신입생으로 그때까지도 그는 어린 학생이었다. 10대의 그는 나이답지 않게 도무지 말이 없었다. 그 까닭 중의 하나는 별난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의 아버지 김대중은 유력 대권 주자의 한 사람으로 세상에 풍미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는 내란음모에 연루돼 사형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는 늘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문학, 역사, 철학, 그리고 독서에 골똘한 문사철 학생이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자기가 쓴 시 두 편을 슬며시 건네주었다. 그의 시에는 깊은 오뇌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때 사형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교단에서 물러난 뒤 강원도 산골에서 얼치기 농사꾼, 나무꾼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런 중 어느 날 어질고 과묵했던 그가 뜻밖에도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게 무척 안타까워 그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편지를 썼다. 

"나는 자네가 이 땅의 시인으로나, 아니면 통일꾼으로, 남북을 오가면서 통일을 앞당기는 그런 일을 드러나지 않게 하거나, 현대사 특히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그런 학자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해 봉사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네."

그날부터 또 많은 세월이 지난 2017년 12월, 그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가는 통일운동꾼으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에 취임한다고 했다. 나는 그날 취임식장에 초대받은 바, 건배사로 "나라와 겨레를 위해 큰 통일꾼이 되라"는 말을 그에게 건넨 적이 있었다.

다시 그의 책속으로 들어가 본다.
 
평화통일로 가는 길

 

우리가 분명히 일아야 하는 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는 한반도 평화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실체 인정은 쌍방적이다. 우리가 북을 인정해주는 일방적 행위가 아니라, 북도 우리의 체제를 인정해주고 적화통일을 포기한다는 공식적인 선언이 필요하다.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그런 통일은 없다는 선언을 해야 평화가 올 수 있다. …
 
'종전선언'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전쟁을 끝낸다는 선언이 성립하기 어렵다. 6‚25 이후 지속된 '내전'을 종식시키고 서로의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나가자는 게 종전선언이다. …
 
한반도 평화는 단순히 우리가 전쟁의 위협에서 해방된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세계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남북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 위의 책 134~137쪽    

    
한반도 신경제지도

 

한반도 신경제지도는 우리의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대륙과 해양으로 뻗어가는 인프라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큰 틀에서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H라인의 왼쪽 축선인 '환서해 경제벨트'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뻗어나간다. H라인의 오른쪽 축선인 '환동해 경제벨트'는 부산에서 금강산을 거쳐 나선까지 연결, 러시아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에너지나 자원개발, 관광개발 등이 기본 목표가 될 것이다.
 
H라인의 허리역할을 하는 DMZ(비무장지대)는 '접경지역 평화벨트'가 된다. DMZ는 엄청난 자연의 보고로 이미 정평이 난 곳이다. - 위의 책 181~183쪽 

 
나는 그의 책 <희망을 향한 반걸음>을 여기까지 읽다가 '유레카!'을 외친 아르키메데스처럼 무릎을 치며 감동했다. 그새 그의 식견과 안목이 이렇게 넓고도 깊으며 크게 성장할 줄이야. 

'왕대밭에서 왕대난다'고 한다. 한 인물은 어느 날 하루아침에 불쑥 솟아나지 않는다. 오랜 인고와 내공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한 인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의 저서에는 그런 인고와 내공의 피와 땀, 그리고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앞으로 그가 우리 겨레의 숙원을 해결해 줄 통일꾼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북의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서울, 평양, 판문점 등지에서 한반도 지도를 펼치고 평화통일의 큰 밑그림을 그릴 그런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그리하여 양자는 선대가 마련해 놓은 6‚15 선언 평화의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 '평화통일의 집'을 준공하기를 나는 겨레의 한 사람으로 축원하고 기도한다. 아마도 이는 8천만 겨레의 염원일 것이다.

그의 단아하고 반듯한, 묵직한 마지막 말을 들으며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이제 나는 민화협의 대표로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한민족의 공존과 평화를 위해 반걸음 나아가려 한다. 비록 반걸음이지라도. 그 반걸음이 희망을 향한 커다란 발걸음이 되기를… .   - 위의 책 263쪽 '에필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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