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605호 : 2024.04.05 - #출판, 팬덤 비즈니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00만 운동 유튜버 김계란이 만든 'QWER'이라는 그룹이 차트 진입은 물론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꽤 많은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 스트리머(혹은 인플루언스)들로 구성된 여성 4인조 밴드의 데뷔는 다들 유희 정도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돌이 데뷔전에 공개 오디션을 진행하는 것은 사전 팬덤 확보를 위한 것도 틀림없다. 시끄럽지 않으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세상이다. 팬덤 확보는 마케팅의 입장에서는 이제 기본이 되었다.

  팬텀 비즈니스에 대한 내용을 다룬 기획회의 605호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행위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것은 감정의 표현일 수도 있고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산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마케팅 바닥에는 '필요성' 이상의 '호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자신에 투영시켜 나가는 작업을 팬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생팬과 같은 도가 지나친 부작용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 존재는 인간 사회라는 곳에서 꽤나 중요한 듯하다. 더구나 강력한 구매 동기를 만들어내는 마케팅의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요소가 된다.

  팬덤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내가 바라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강한 공감과 함께 애착이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 경우라고 생각한다. TV속의 연예인에서부터 내 손 안의 아이폰까지 다르지 않다. 혹은 내가 그리던 인물일 수도 있고 내가 바라던 기술일 수도 있다.

  팬덤을 '-빠'라고 비하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말하면(조금 고급스럽게) '가치관 공유'(혹은 메시기 공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호감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감정을 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움과 혐오를 이용하는 것보단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긍정적이다). 이런 순수한 마음을 마케팅에 이용하는 것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수도 있겠지만 윈-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가끔 대중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 (스티브 잡스 형님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라는 면에서는 확실히 서로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정치에서는 '노사모' 같은 팬덤이 생기기도 했고(여전히 유효하며) 샤오미는 '참여감'이라는 슬로건으로 팬덤을 경영의 원칙으로 삼는다. 유명인들의 도서가 잘 팔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믿고 사는 것 혹은 평소에게 받았던 것들에 대한 부채감 해소라고도 할 수 있다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혹은 나와 같은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대한 책은 읽지 않더라도 구매하게 된다).

  책을 팔고 유명해지는 것보다 일단 유명해지고 책을 파는 게 더 유리하다는 공식은 지금의 시대에 유효하다. 책으로 스타가 되는 경우보다 인플루언스나 셀럽이 되고 베스트셀러 작가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작가가 글만 잘 써야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는 듯하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작가는 <세바시>에서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독자가 궁금해할 작가가 되는 거라 했다. 그건 글을 잘 쓰기도 해야겠지만 도덕적으로 매력적으로도 꽤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얘기라고 이해하고 있다 (작가 되기가 참 힘들다).

  이제 팬덤은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출판사마저도 하나의 팬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브랜드를 다각화하고 유튜브를 개설하고 독자와 접촉점을 늘리려 하고 있다. 팬덤작가를 좇는 것을 넘어 스스로가 팬덤이 되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편집자나 번역자에게도 약간의 팬덤이 생기고 있다.

  팬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좋은 일이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일이다. 모두에게 알리고 슈퍼맨에게 팔아라는 말이 있듯 강력한 팬덤은 마케팅에 절대적이다. 하지만 사회가 빠르게 편한 만큼 팬덤 또한 빠르게 흐른다. 그 속에서 나만의 팬덤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지도 미지수다. 그럼에도 결국 사람이 사는 것들은 전부 '호감'이라는 순수한 감정을 벗어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과학 - 우리가 세상을 읽을 때 필요한 21가지
마커스 초운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과학 교양 책들은 많은 과학 지식을 간단하게 알려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마치 쇼츠가 유행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굉장히 심오한 지식을 그렇지 않게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일반인에게 굳이 심오한 내용까지 전달해야 할까라는 고민은 분명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는 ‘칼 세이건’이 했던 방식이 많은 듯하다 (칼 세이건의 책은 훨씬 심오하지만).

  현재까지의 과학 중에서 가장 주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21가지를 모아둔 이 책은 까치글방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책의 내용은 너무나 당연해서 지식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중력부터 시작해서 빅뱅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주제에 20페이지 정도의 지면을 할당해서 설명한다. 당연히 가볍고 경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짧게 설명하는 게 가장 어렵다.

  ‘지구 온난화’ 챕터는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하다. 매체에서 연일 ‘탄소’라는 말이 쏟아지고 있지만 사실 탄소가 잘못한 건 아니니까. 지구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일단은 이산화탄소의 양이 중요한 듯하다 (사실 여전히 프레온 같은 물질이 더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고 있지만). 시멘트를 만들 때에도 소를 키울 때에도 온난화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 방출된다 (소를 먹지 말아야 하는 이유).

  탄소가 균형을 깨진 사례는 역사적으로 세 차례가 있다. 농도가 줄어 빙하기를 맞았다. 반대로 산업 혁명 이후로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바다는 산화되고 온도가 올라가면 수증기도 많이 발생해 기온은 더 많이 올라간다. 바닷물이 모두 증발해 버린 금성을 보면 알 수 있다. 400도가 넘는 금성의 표면 온도가 얘기해 주는 게 우리의 미래일까.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는 모든 과학자가 얘기하는 가장 진실에 가까운 법칙이다. 무질서도는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 끝이 있다면 정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릴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그런 상태를 “열적 죽음”이라고 부른다는데 단어가 좀 멋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은 여러 어려운 내용들은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지만 원래도 어려운 건 어렵긴 하다. 그래도 쉬운 예로 접근하려는 점에서는 잘 쓰였다고 생각한다. 250페이지 남짓의 책은 읽기에도 들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아 좋다.

  요즘 과학 교양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다들 비슷한 느낌은 있지만 과학적 지식을 갈무리하기에도 두루 살펴보기에도 괜찮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대욕망 - 알파에서 베이비부머까지 데이터로 읽어낸 욕망의 방향
대홍기획 데이터인사이트팀 외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MZ'라는 말은 모르는 이상할 정도로 매체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주 쓰인다. 우리 세대가 늘 'X세대'라고 듣던 것처럼 말이다. 그 사이 여러 세대론이 있었지만 X 이후로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MZ'가 처음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MZ'를 지나 이제 'ZA(잘파)' 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MZ'의 M 또한 나이를 먹으며 세대보다 나이에 의한 성향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대 별로 성향을 분석한 이 책은 한스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물건을 판다는 일은 세상의 움직임을 읽어야 하는 일이다. 세상에 유니크한 메시지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메시지에 반응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트렌드 세터가 될지 말지는 물건을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유행을 좇아 발 빠르게 움직이든지 스티브 잡스처럼 고객도 설명하지 못하는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켜 주던지.

  이 책은 대행사에서 쓴 것이다. 광고회사라는 것은 무엇보다 시장의 흐름에 민감해야 하기 때문이 이 책의 분석은 일리가 있다. <대행사>라는 드라마에서 이보영 배우가 했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광고는 핵심 고객에서 보내는 러브레터'

  왕회장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이 크림빵을 좋아하는데 사람들은 자꾸 제과점 빵을 사다 줘. 왜 그런다고 생각하니?'
 '그건 예의가 아니라 욕심이야. 상대가 원하는 걸 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생색낼 수 있는 걸 사다 주는 거야'
 '하나만 기억해. 상대가 뭘 원하는지 만 알게 되면 모든 건 해결 돼'

  사실 책의 도입부에 <대행사>가 언급되어서 놀랬다. 두어 장쯤 읽으면서 <대행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유행을 선도하면 자연스레 모든 것이 따라왔지만 지금은 꽤나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개인적인 성향은 트렌드를 거스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세대 별로 같으면서도 다른 성향은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할지 난감하게 만든다. 가끔은 서로 상충되어 한쪽을 얻으면 한쪽을 잃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하고 야심 찬 광고에 비난에 쏟아지기도 하는 것도 그 이유다. 마치 욕망이라는 것이 하나의 카오스가 되는 듯하다.

  책은 M과 Z 그리고 A를 넘어 X와 BB까지 설명한다. 그나마 분류하여 공략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체에서 끊임없이 MZ나 ZA를 노출시키는 것이 하나의 프레임을 만드는 노력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특히 관계주의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에 무리에서 이탈하고 싶지 않은 심리가 강하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기분 나쁜 점도 있다)

  세대를 정의할 수 없는 건 나이를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를 연령효과라고 한다. 아무리 개방적이고 혁신적이었던 사람도 부모가 되고 지긋한 노인이 된다면 그 생각과 체력(?)은 분명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을 젊은 시절의 생각과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는 노년의 삶은 같은 사람이라도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대는 또 다른 세대에 영향을 준다. 받은 것 없는 X 세대는 자식에게 기대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것을 주려 한다. 그리고 합리적 소비나 재테크에 대해서도 아이와 나눈다. 데이터를 보면 MZ보다 ZA가 더 X세대에 가까운 느낌도 있다.

  변화는 이제 당연한 것이고 뉴노멀은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다. 압축 성장한 우리나라의 세대 성향은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복잡하다. 한국 전쟁, 민주화 운동, IMF 그리고 코로나 까지 세대가 거쳤던 많은 이슈들은 세대의 성향을 결정짓기도 했지만 오히려 공감대도 형성되기도 했다. 

  시간은 마케팅을 변화시키고 있다. 가장 돈을 많이 쓰는 세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부유한 노년층의 증가는 실버산업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지만 가장 격렬하게 소비하는 젊은 층을 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광고는 제품에 따라 핵심 고객층에 따라 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 책은 마케팅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자세한 설명으로 많은 참고가 될 듯하다. 소비자인 세대가 어떻든 나이가 어떻든 내 관심사대로 살아가게 되겠지만 세상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겪었던 심리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정유희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뢰인!"

  내가 좋아하던 '역전재판'은 늘 변호사의 단호한 말로 시작한다. 피고인은 늘 불리한 입장에서 기소를 당해 법정에 선다. 변호사는 단서를 찾아 검사의 논리를 부셔야 한다. 현실은 법을 어긴 사람을 법망에서 탈출시키는 법꾸라지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의로운 법률가들을 상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또 하나의 즐거운 법정 미스터리다.

  현직 변호사인 작가의 해박한 법정 지식과 긴장감의 강약 조절로 마지막까지 즐거웠던 이 소설은 리드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무죄인지 유죄인지는 판사가 결정하지만, 원죄인지 아닌지는 신밖에 모릅니다'

  이 스토리의 기저에 깔려 있는 '무고'는 법 집행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해 결국 죄인이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시간이 흘러 무죄가 인정되기도 하지만 옥살이를 한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작품은 '미스터리'이면서도 법률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정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얘기하는 <함무라비 법전>의 동태복수원칙이다. 이야기의 판을 짠 유키 가오루는 이를 복수가 아는 관용이라 얘기한다. '이 정도의 벌로 용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다는 것이다.

  문제를 낸 것은 유키 가오루지만 풀어가는 것은 세이기라는 별명을 지닌 구가 기요요시다. 세이기는 일본어로 '정의'라는 뜻이다. 사법시험이 이미 합격하고도 로스쿨에 입학한 가오루 다음의 수재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그가 지켜야 할 히로인으로 오리모토 미레이가 있다.

  기요요시와 미레이는 같은 시설에서 자랐으며 기요요시는 미레이를 어둠에서 구해준 영웅과 같은 입장이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읽기 전까지 풍기는 분위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었다. 여주인공을 구하고 그림자가 되어 버린 남자의 이야기. 하지만 작가는 둘 사이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이야기의 제공자이면서 풀어야 할 사람이며 동행보복의 대상자인 두 주인공은 해결사가 아니라 갱생의 대상이다.

  법률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세상에 대처하기 더 수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기요요시와 그를 따른 미레이.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행했던 합법과 위법 사이의 줄타기. 그 속에서 피해자가 생겼다. 사법 시험을 합격했음에도 삼류 로스쿨에 입학한 유키 가오루. 뛰어난 법률 상식과 책임을 회피하지 않은 그는 '무고게임'을 만든다. 모든 것은 그가 만들어 놓은 멋진 한판이었다.

  이야기는 대학생의 유희 정도로 볼 수 있는 '무고게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 '무고'를 주장하는 진짜 법정까지 이어진다. 세상의 법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낙인찍히면 그대로 관심에서 사라지는 그런 고통을 가해자와 심지어 나라의 법률가에까지 묻고자 하는 이 작품의 짜임새는 치밀하다. 차분히 시작해서 반전의 반전을 가한다. 예상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반전을 만들어진다. 그리고 정의로운 결말을 이른다.

  '최소한의 법'. 법률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을 거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회피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법률가들이 신이 되려 하기 전까지는 그랬을지도. 인간은 늘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속에 법 이전에 양심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법으로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속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재판장에서 재단되는 죄의 유무 판별도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죄를 누가 용서하냐라는 질문은 지금도 자주 듣는 말이다. 가해자가 행한 범죄는 피해자가 원하는 수준인가? 우리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벌을 내린 판결을 보게 된다. 미성년자 성폭행이 그렇고 경제사범이나 권력자들의 죄가 그렇다. 게다가 사면이라는 제도는 약한 자를 위해 쓰인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법정은 무슨 근거로 그걸로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작품은 그런 원론적인 질문을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굉장히 잔인하면서도 명확하다. 내 눈을 잃었으니 너도 눈을 잃는다면 용서하겠다는 관용의 법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것만큼 억울하지 않을 일은 또한 없을 듯하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으니 검사도 판사도 더 나아가 나라의 법률 시스템도 동일한 죄를 뒤집어쓰라라고 하는 복수는 오히려 이성적이게 느껴질 정도다. 

  슬픔만이 가득한 내용에 지나치게 이성적인 짜임새 그리고 갱생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답을 내어놓은 작품. 뭔가 어울리지 않은 듯 하지만 더할 나이 없이 재밌게 쓰인 책이다. '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죄가 없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인지 가해자가 숨을 수 있는 법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루스트의 질문
이화열 편역 / 앤의서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일단 읽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리뷰를 남기기 쉽지 않다. 프루스트의 100가지 질문이지만 어떻게 보면 답이 있는 질문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질문이다. 평범한 질문도 있지만 꽤나 철학적 질문도 있다. 문답집이 정말 새로운 형태는 아니라서 어색하거나 하진 않는다.

  이 책은 앤의서재에서 제공을 받았다. 그렇다고 마냥 좋게 리뷰하는 건 아닌 듯하다. 책의 대한 생각은 명확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작다. 어떻게 보면 예쁜 다이어리 정도로 사용할 수 있을만하다. 좋은 질문에 기발한 코멘트가 담겨 있는 곳에 제법 된다. 프루스트 질문에 다른 저자의 답을 찾아 달아 둔다는 건 꽤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기에 이해가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덕목은?
없다. 모든 덕목은 권태롭다(카미유 클로델)

당신 인생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건은?
생존한다는 것 (해리슨 포드)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오늘 (베르나르 피보)

당신이 생각하는 지상의 행복은?
스스로에게 행복한지 묻지 않은 한 나는 완벽하게 행복하다 (칼 라거펠트)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이미 되었다 (알랭 들롱)

당신이 소유하는 가장 소중한 것은?
기억 (말랄라 유사프자이)

그리고 많은 부분은 내가 채워야 한다. 비워 있는 칸에 나의 이야기를 적어야 한다. 문제는 가격인 듯하다. 이런 종류의 책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집어들 수 없을 만큼 부담스러울 수 있다. 프루스트의 이름 때문인지 꽤 괜찮은 코멘트를 찾았을 역자의 노력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약간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책의 가치는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할 독자로 인해 결정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에 닿을지는 사실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과의 문답을 좋아한다면 권해볼 만 하지만 읽음으로써 뭔가를 얻기는 어려운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