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9월 1주


‘그녀’일까, ‘그’일까..
그들의 정체가 아리송한 영화들이죠..
그들은 왜 남장을 해야만 했을까요?..

 

- 동방불패 : 임청하

이젠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마득해 보이지만..  

홍콩영화가 인기 많았던 시절도 있었어요..  

80년대 및 90년대 초반 홍콩영화가 인기를 누렸던 요인은 바로 까칠한 도시남자들의 화끈한 총격 액션 또는 전설 속을 배경으로 하는 무협 액션이 볼만했기 때문이지요..  

인기 덕분에 여러 홍콩스타들이 우리나라에 찾아오기도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배우가 임청하.. 홍콩에서 뿐만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도 배우 임청하의 인기는 한때 대단했습니다..  

동방불패를 포함하여 각종 무협시리즈물에서 ‘그녀’는 거의 대부분 ‘그’라는 새로운 섹슈얼리스트로 거듭나곤 했는데..  

아무래도 그녀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눈길을 끌어서겠죠..  

여성스러우면서도 남성적인 이미지.. 동안이면서 중성적인 마스크..  

그녀의 느낌은 남녀 구분없이 보는 사람을 현혹시키는 뭔가가 있어요..  

여기 동방불패에서는 40대를 바라보는 임청하보다 나이 어린 여주인공 2명이 등장하는데요..  

물론 그녀들도 빠지지 않는 인물들이었지만 보이시한 매력을 뿜어내는 임청하의 파워에는 살짝 못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무자비한 살육을 벌이는 냉혈한 동방불패이지만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영호충(이연걸)에게는 미묘한 여성으로서의 감정을 드러내보이기도 하는데요..  

바로 이런 모습이 그녀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개성있는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때가 30대 후반의 나이라는 사실이 더 놀랍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 또 하나 느낀 점은 영화에 등장하는 그녀의 존재가 곧 동성애와 양성애에 대해 어느 정도 긍정적인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공을 통해 여성으로 변모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곁에 있고 싶어하는 애첩의 모습에선 여성 간의 동성애를, 그리고 여성으로 변한 동방불패는 다시 영호충을 흠모하는 장면에서는 이성애를 그리고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동방불패라는 캐릭터를 통해 양성애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남장여인이라는 내용이 판타지 성향이 강한 무협영화에도 자연스러운 설정으로 보이는데다 영화 속에서도 큰 거부감을 느끼게 하진 않더군요..  

오히려 임청하의 중성적인 이미지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요..

이 영화 동방불패는 소오강호라는 영화의 속편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소오강호라는 작품은 본 적이 없어서 평을 하기가 그렇네요..  

하지만 동방불패 자체적으로도 시리즈로 나오는 등  흥행성적이 좋았던 것은 그만큼 임청하의 역할이 컸다고 봅니다.. 

 

 - 쉬즈 더 맨 : 아만다 바인즈

한마디로 유쾌 상큼 발랄 코믹한 영화입니다..  

킬링타임으로 아주 만족할만한..  

보통 이런 류의 영화들은 그냥 한번 본 이후로는 다시 보게 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건 몇 번 더 보게 되었어요..  

재미도 재미였지만.. 그녀가 보여준 역할이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귀여워서였죠..

이 영화 스토리의 중심은 축구입니다..  

여주인공은 축구를 좋아했고 전 남친에게 무시를 당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축구로서 복수하기 위해 쌍둥이 오빠가 다니는 학교에 남장을 하고 들어가 남자선수 기숙사에서도 버젓이 생활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봤는데 의외로 웃음이 터져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재미에 빠지더군요..  

그 중요한 요소가 바로 그녀의 변장..  

보통 남장이든 여장이든 성별이 다른 변신을 하게 되면 약간씩 어설픈 모습이 보이기 마련인데..  

진짜 남자 같아보였습니다.. 변신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남자배우를 기용했다고 생각할 정도..  

그것도 성인남자라기보다는 앳된 소년같아 보였어요..  

어쩌면 이렇게 귀여운 소년으로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을까요?..  

짧은 헤어컷의 가발과 아기젖살 같은 그녀의 볼살이 미소년의 귀여움을 극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네요..  

특히 볼살.. 정말 한번 잡아당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군요..  

그리고 동방불패와 비슷한 설정도 나옵니다..  

바로 자신을 좋아하는 여학생 올리비아가 있는가하면, 자신이 좋아하게 되는 남학생 듀크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동방불패만큼의 동성애나 양성애같은 에로티시즘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샤워장 씬 등 다소 야릇한 느낌을 연상시키는 장면들도 많이 있으나 적정 수준을 유지..  

하이틴 스타들이 출연한 영화라 전체적인 분위기는 프레쉬하다고 할까요..  

어쨌든 그런 산뜻하고 밝은 느낌..  

지금까지 제 관점은 10대를 겨냥한 미국영화들은 시끄럽게 떠들거나 산만하고 억지스럽게 코믹한 모습을 연출, 거의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점 등이 하나의 틀처럼 잡혀서 비호감이 들었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거부감 들지 않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 같습니다..

 

- 소년은 울지 않는다 : 힐러리 스웽크

영화를 다 본 후 느낀 먹먹함과 슬픔은 컸습니다..  

한동안 우리 인간이 스스로 인격체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진지한 고민도 들게 만든 영화..  

개방된 사회라는 미국에서도 곳곳에 남아있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벌어진 한 여인의 운명..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티나 브랜든이라는 실제 인물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힐러리 스웽크의 남장여인은 임청하와 같은 지적이고 섹시한 남성 이미지도, 아만다 바인즈와 같은 귀여운 소년 이미지도 아닌 완전 평범하면서도 언뜻보면 볼품없는 인물이죠..  

하지만, 스스로를 ‘그’로 인식하고 살기를 원했던 ‘그녀’의 모습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겪어야했던 그 고통은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을까요..

‘티나 브랜든’은 ‘브랜든 티나’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을 더 좋아했던 한 사람의 남성으로 살고 싶었죠..  

하지만 미국에서조차도 그녀의 삶이 따가운 시선과 많은 제약들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듯 합니다..  

그녀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또는 그녀가 다른 도시에 다른 친구들을 만났더라면 어떠했을까..  

라나와 같이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쁜 친구들’을 사귄 것이 죄라면 죄가 되겠네요..

실제 티나 브랜든의 남장한 모습은 지금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더군요..  

영화에서 보다는 오히려 더 잘 다듬어진 호감형 외모였던데..  

그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에서도 그와 만났던 이들이 매너 좋고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그 패거리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라나와 행복하게 사귀었을지도 모르죠..

우리나라도 그런 분위기에 하리수나 홍석천 같은 연예인들이 당당하게 커밍아웃을 했을만큼 이전보다 개방된 의식을 가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퀴어, 레즈비언, 게이, 트렌스젠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아직은 그런 보수적인 면이 많은 사회입니다..  

한국의 티나 브랜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겠죠?..  

과연 그런 분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그들에게 보다 따뜻하고 관대한 시선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드네요..

이 영화, 배경음악들이 잔잔하고 좋았어요..  

특히나 그녀의 넋을 기리는 듯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 곡은 진한 커피같은 여운을 오랫동안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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