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입] 베토벤 & 베르크 : 바이올린 협주곡
베르크 (Alban Berg) 외 작곡, 아바도 (Claudio Abbado) 지휘, 파우 / Harmonia Mundi / 2012년 2월
평점 :
앨범 정보에 소개된 것처럼 2007년에 이미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이자벨 파우스트가 3년만에 다시 녹음한 음반이다. 대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2008년에 공연을 한 뒤, 그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바탕으로 이 녹음을 했다고 하는데 정말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역사상 또 하나의 위대한 연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유있는 템포와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서정, 그리고 선명한 바이올린 음색과 섬세한 북소리. 정말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 필요한 모든 것이 '제대로' 담겨 있는 최고의 음반이다. 게다가 앨범의 멋진 아트워크는 만족감을 훨씬 더해 주는 '작품' 수준이다. 소녀의 그림, 애잔한 눈으로 그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자의 사진, 그리고 북클릿 안에 들어 있는 연주자들의 모습까지. 앨범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자벨 파우스트의 어린 시절을 그렸다는 소녀의 그림은 결국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대상이었던 마농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바로 옆에서 소녀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은 아마도 젊은 시절의 알반 베르크일 것이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이 바이올린 연주자 이자벨 파우스트와 지휘자 아바도가 오늘날 연주하고 있는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아련하고 애잔한 그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소녀'라는 이미지가 주는 그 어떤 '무언가'를, 아름답지만 슬픈 그런 감정을.
그래서였는지 개인적으로 이 음반에서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 연주는 커플링된 알반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는데, 이 곡은 19살에 요절한 마농 그로피우스라는 여인을 위한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녀는 말러의 부인이었던 알마가 그로피우스와 불륜으로 얻은 딸이었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슬픔에 슬픔이 더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말러의 불운했던 결혼, 그리고 그가 사랑했었던 알마가 불륜으로 얻었던 딸의 이른 죽음. 거기에 내면의 고통과 슬픔을 음악이라는 색채로 덧입혀 놓은 알반 베르크.
알반 베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나서 다시 한 번 기억을 되살린 것은 아바도가 사실 현대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가 된 이후 프로그램을 현대 음악(20세기 클래식) 쪽으로 편성하다가(말러를 포함하여) 보수적인 독일-베를린 청중들로부터 야유섞인 저항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그러한 원인으로 그가 마침내 병에 걸려 쓰러졌었던 사실을 떠올리면 문득문득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에 형상화했던 거인의 출현, 영광, 상처, 그리고 바로 그 거인이 쓰러져 간 모습들과 오버랩된다. 그렇다면, 구스타프 말러가 교향곡 제 2 번에서 형상화했던 거인의 '부활'은 어쩌면 현대인들에 의해 다시 음악의 세계로 초대'될' 자신의 음악을 형상화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은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올해 초에 세상을 떠났던 아바도를 추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