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용기는 없다

 

사노요코는 말한다. 그 누구도 용기는 없다고 말이다. ‘러브 호텔 건설 반대에 서명할 사람 혹은 선뜻 나서서 용기를 보여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대중이라는 이름 앞에서, 다수의 사람 앞에서 나를 숨기로 우리를 내세울 뿐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그저 대중이라는 이름에 나를 숨기고 너를 저버리고 우리로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치적 소신도 잊고 경제적 가치를 모른 채 하며 시민의식을 땅에 묻고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욕심의 무게추만 기울이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지금의 현실 사태가 참 무겁고 먹먹하다.

우리라는 가면을 쓴 우리의 주체인 나는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전쟁을 겪은 사노요코의 부모님과 사노요코의 세대들에게 귀한 것은 그저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아닐까 한다. 어떤 좋은 음식도 아니고 어떤 좋은 옷도 아니고 그저 내 몸 누울 수 있는 공간만이 그들에게 전부가 아닐까. 그래서 사노요코는 방의 다다미 크기가 아닌 여러 가지 모양의 집을 꿈꾼다. 실용과 미학이 아닌 그저 누울 수 있고 괜찮은 화장실이 딸린 그런 공간을 원한다. 요즘의 우리가 방의 구조며 가구며 세세한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온전하게 살기 위해’ , 내 몸 쉴 그 공간만이 유일한 집의 자리인 것이다.

지금 내 몸 쉴 공간을 나는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그저 잠을 자고 일상을 녹아내는 공간이 아닌, 내 마음 편히 쉴 나만의 아지트가 있는지 말이다. 그 아지트에는 형식도 없고 예의도 없고 걱정도 없는 오로지 온전한 나 자신으로 스며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살포시 떠오르는 장소에 이내, 마음이 따스해 진다.

이번 책은 1980년대에 쓴 에세이가 많다. 30~40여년 전의 일이 소소하고 가볍지 않게 와 닿는 이유는 산다는 건 어느 시대나, 어느 모습이거나 비슷한 모양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다른 장소, 다른 이유로 생기는 일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비슷한 무게의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매일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이 최고의 드라마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용기만 있다면 아니라고 말하는 게 뭐가 어떻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뭐가 어떨까 한다. 그저 온전한 한 사람으로 살고 내 삶에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나간다면 말이다. 투철한 삶의 의지와 용광로 같은 열정이 아니더라도 내 삶의 철학과 주관을 가지고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나의 삶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소소한 삶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니까. 좋아 좋아, 그렇게만, 그렇게만 나에게 용기를 가지고 말이다.

 

메론 한 조각을 음미하며 , 정말 맛있다라는 말이 사노요코의 글에 그대로 맛깔나게 녹아든다. 그 달큰함이 내 삶에도 살포시 미소로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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