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메르헨 문지아이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김서정 옮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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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도시에서는 눈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겨울이 와도, 찬바람만 씽씽 불 뿐, 하얀 세상은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들도 언젠가부터 눈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눈이 와도, 하얀 눈부신 아름다움은 잠시, 길가에 축축 검은진탕으로 변해 옷에 검은 투성이를 만들어내는, 그리고 '두 발 걷기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도시인들은 거침없이 내달리는 '네 발 자동차'의 편리를 위해 눈을 거부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겨울이 오면 먼저 그리움부터 다가온다.

'눈을 만나고 싶다, 하얀 눈을, 내 눈을 가득 채워 주던 어린 시절의 함박눈들을, 백조인양 우아한 춤사위로 나를 환상으로 이끌어주던 그 눈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리움으로 회색빛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 보기를  여러 번,

그 그리움들이 하얀 눈으로 돌아왔다. 안데르센과 함께...

 

어렸을 때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상속 이야기들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옆에는 안데르센이 있었다. <못생긴 아기 오리>를 읽을때는 내 예쁘지 않은 모습이 언제가는 화사한 꽃처럼 피어날 거라는 믿음이 생겼고, <인어공주>를 읽었을 때는, 왕자의 행복을 위해 한 점 망설임없이 투명한 물방울로 돌아가는 그 소리없는 발걸음에 같이 울면서 꼭 하늘나라에서 '반짝이는 햇살'로 태어나기를 바랐던 마음을 만났고, <성냥팔이 소녀>는 나에게 마음이 아주 슬플 때, 내 마음 속 작은 성냥을 꺼내 따뜻하게 마음을 지피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안데르센은 내 어린 시절을 슬프지만 아름다운 동화세상으로 안내해 주었고,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만의 멋진 동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작은 아이가 소녀가 되고, 어른이 되어 세상속에서 투박한 걸음으로 뒤뚱거리면서도 내 안의 안데르센 동화세상은 멈추지 않고 자라난다.

세상 어른이 되어 내 안의 안데르센 세상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 본다.

안데르센의 메르헨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을까? 그 수많은 이야기들은 어떻게 태어나  사람들 마음속으로 들어가 빛이 되었는지 궁금해 진다.

 

나에게 이야기로만 인식되던 안데르센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라는 이름으로 재인식되었던 때는 바로, 2005년 서울국제도서전. 안데르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관에서 만난 안데르센은 여윈듯한 기다란 얼굴을 가진 슬픈 사람이었다. 그때까지 막연히 안데르센은 행복했던 사람이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던 사람, 동화의 아버지는 당연히 행복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단순한 믿음안에서 안데르센은 행복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안데르센은 참 외롭고 쓸쓸했던 사람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사랑의 답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사람.  

 

그런 안데르센을 2013년 다시 만나고 있다.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2일,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수선공이었던 아버지와 세탁부였던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은 안데르센 동화의 바탕을 이루는 사랑이 되어 주었다. 계급사회였던 당시, 하층민으로 태어나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발판삼아 상류사회 인사가 되었지만 평생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는 혐오했다고 한다. 자신의 뿌리를 끊임없이 부정해야만 했던 안데르센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힘듬들이 서로 섞이면서 묵혀지고 걸러지는 과정을 통해서 안데르센만의 동화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동화속에서 안데르센은 순수하게 증류되어 빛으로 승화된다.

 

창밖을 내다본다. 지금도 함박눈들의 흔적이 사방에 널려있다. 하얀 세상속으로 <눈의 여왕>이 

커다란 썰매를 내달리고, <성냥팔이 소녀>는 맨발로 걷고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았던 눈사람은 눈동자를 이루던 작은 나뭇가지만 남겨 놓은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안데르센의 <눈사람>이 살아난다. 정말 끝내주는 추위에 태어난 눈사람은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다. 마당에는 집안에서 쫓겨난, 사슬에 묶여 있는 개가 있다. 해와 달을 구분하지 못하는 눈사람에게 개는, '머지 않아 너는 해에 의해 담벼락 옆 도랑으로 흘러가게 될 거야'라고 말해 준다. 그런 눈사람눈에 지하실 가정부 방안의 난로가 보인다. 새까만 작은 몸속에서 따뜻한 밝은 빛을 뿜어내는 난롯불을, 눈사람은 한 눈에 사랑하게 되면서 작은 소망을 품게 된다.

"내 안이 이상하게 삐걱거려요! 나는 저 안에 들어갈 수 없을까요?"

"넌 저 안에 절대 못 들어가! 그리고 난로 곁에 가면, 넌 사라질 거다, 멍!"

잠시라도 난롯불 옆에 다가가보고 싶은, 따뜻함을 느껴보고 싶은 눈사람의 열망은 개의 충고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추운 날씨가 풀리면서 눈사람은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몸을 데운채 지하방 난롯불을 바라보면서 소리없이 사라져 간다. 몸 속을 이루던 부지깽이만 남긴 채...

 

동화의 대부분을 이루는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오래 오래 끝없이요.'

대신,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눈물이 있다. 그리움이 있다.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 있다.

안데르센의 외로움속에서 태어난 이야기들은 맑은 마법의 샘물로 목을 축이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따뜻한 위로가 된다.

'외로움'도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세상의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안데르센은 귀에 속삭여준다.

고마워요, 내 안의 안데르센!

내 주변의 세상 모든 것들을 친구로 만들어 준 당신에게, 언제나 감사해요.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뭉뚱그려 무시할 게 아니라 저마다

그 이름으로 불어 주어야 합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이 책 <안데르센 메르헨>에는 43가지 이야기들이 각자의 상상력을 자랑하며 가득 담겨있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 책장을 다 덮었어도 여전히 이야기들은 방 안 가득히 떠 다니며,

거미가 실을 잣듯, 끝없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안데르센의 메르헨은 현실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살아있는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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