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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사는 게 왜 이렇게나 고되고 힘든 것인지. 삶의 속도가 빨라졌다. 눈 떠보면 아침이고, 어느새 회사고 잠시 쉬는 듯하면 점심시간이다. 잠시의 여유도 느낄사이 없이 퇴근을 하고, 다시 눈을 감고 뜨면 또 다른 아침이다. 모든 게 빨라졌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데, 어느새 몸도 예전만 못하다. 결국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 옛날이 좋았어'와 같은 과거 회상형 문장들이다.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닌데, 아직은 바쁘게 살아도 될 나이인데. 한심하게도 나는 모든게 천천히 욺직였던 과거를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이 모든게 빠르게 변해버린 세상 탓이다.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과 세상에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듯 하다. 어느 때 부터인가, 서점가에는 여행에세이들이 늘어났다. 『론리 플레닛』류의 관광지 안내 책자가 아닌, 자기를 되돌아보기위한 여행을 떠난 여행자들의 기록물들이 한 권, 두 권 세상에 선을 보이게 되었다. 아마도 나처럼 점점 빨라지는 세상의 속도에 지쳐버린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 산티아고', 이 생소한 지명이 뒷 동네 이름처럼 친숙해지게 된 것도 바로 그 여행에세이 붐 덕분이 아닐까? '산티아고'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여행 도서가 한, 두권씩 늘어나더니, 어느새 그 이름도 친숙해졌다. 그렇게나 친숙해진 그 도시를 나는 세스 노터봄의 『산티아고 가는 길』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꽤 유명한,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는. 하지만 한국에는 고작 한 권의 책만이 번역되었으며 책에 관심이 조금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생소한 이름의 세스 노터봄이라는 작가는 꽤나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도 『산티아고 가는 길』이 여행에세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화려한 이력에서 오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장르를 넘나드는 굉장히 넓은 작품의 스펙트럼을 가진 이 노작가의 이력은 나에게 책을 읽기도 전에 두근거림과 설레임을 주었다.
책을 펼쳤을 때 내 눈에 보였던 것은 하얗게 표백된 지면도 아니었고, 올 컬러로 찬란한 색상을 빛내는 유적지의 멋들어진 화보도 아니었다. 누런 색상의 부담없어 보이는 지면에 콕콕 들어박힌 활자들. 그리고 자칫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 수도 있는 흑백의 사진들. 보는 순간 눈과 마음이 동시에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지치게 하는 총 천연색 화려하고 세련된 현실과는 잠시 격리되는 듯한 기분. 아.. 어느새 속도는 책에서까지 나를 바쁘게 쫓고 있었다.
노작가가 세번째로 찾은 스페인, 노작가는 스페인을 찾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스페인에 대한 애정이 늘어감을 느낀다. 거칠고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스페인에 대한 첫인상은 점점 사랑으로 변해간다. 평범한 사람들은 스페인의 찬란한 풍광에 마음을 빼앗기지만 작가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스페인의 조그만 마을과 그 마을의 조그마한 교회들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작가는 다시 한번 스페인으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다. 자신이 사랑하고 애정하는 그 것들을 다시 보고 추억하기 위하여.
노작가의 순례길은 정해진 틀을 따라, 정해진 행로를 따라 가지는 않는다. 나이에서 오는 여유로움일까? 일정에 바쁘게 쫓기지 않고 가는 곳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에서 과거와 역사를 추억한다. 수려한 필체로 그려내는 그의 추억을 따라 어느새 나도 그 길에 함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화려하기 보다는 담백하고 수려하다. 페이지마다 꽉 꽉 들어찬 글자가 버겁다기 보다는 배가 부르다. 비록 이 책을 들고 지금 스페인을 찾는다면, 내가 기대하는 것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겠지.... 하지만 정해진 일정없이, 정해놓은 방문지 없이 자신만의 계획과 기분을 휘적휘적 스페인을 거니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접하는 과거의 사실과 그만의 이야기를 엿보면서 한없이 행복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