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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전설적인 사랑
알랭 비르콩들레 지음, 호세 마르티네스 프룩투오조 자료협조, 이희정 옮김 / 이미지박스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생텍쥐페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충 넘겨보니 생텍쥐페리와 그의 연인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들과 서로에게 보낸 사랑의 달콤한 편지들이 삽화식 구성으로 글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게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사랑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이고 로맨틱할까, 그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궁금하고 또 빨리 읽어보고 싶어졌다. 적어도 책을 제대로 읽어 내려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글너 내 예상은 반은 틀리고 또 반은 맞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생텍쥐페리의 알려지지 않은 사랑이야기가 들어있기는 하지만 아름답다고 하기엔 그토록 잦은 헤어짐과 오랜 별거와 전쟁과 생텍쥐페리의 외도가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순탄치 못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생텍쥐페리의 알려지지 않은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생텍쥐페리의 바람기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아내로 남기도 한 콘수엘로는 에스파냐 태생으로 이미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엔리케 고메스 카리요의 아내이기도 했다. 남아메리카 출신답게 밝고 쾌활하며 솔직하고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모국어인 에스파냐어는 물론 불어와 영어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만큼 언어학적 재능이 있었으며, 그림과 조각에도 남다른 소질을 보였고, 뛰어난 말솜씨와 아름다운 외모와 뿜어져 나오는 매력으로 사교계에서도 환영받는 그런 화려한 여자였다. 원래 남편인 카리요와 결혼한 지 1년만에 남편의 죽음을 맞이한 콘수엘로는 상중에 생텍쥐페리와 불같은 사랑에 빠지고 또 결혼하게 된다.

  그런 콘수엘로에 대한 나의 관심의 초점은 두 군데로 집약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남편의 상중에도 또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할 수 있었던 콘수엘로의 용기 또는 개방성이다. 솔직히 그건 너무 경솔한 처사가 아닌가 싶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분명 우리 정서와는 맞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런 콘수엘로를 생텍쥐페리의 가족이 좋아할 리 없었다. 시골의 보수적인 귀족 집안인 생텍쥐페리의 가족들은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고, 온갖 수단으로 둘의 관계를 은폐시키려 했다고 한다. 따라서 생텍쥐페리에게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아름답고 다재다능한 여자가 왜 생텍쥐페리를 사랑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것이 그녀에 대한 내 두 번째 관심의 초점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생텍쥐페리는 잘생기지도 않았고 상당히 우울하고 제멋대로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바람둥이이기까지 한 이 대머리 아저씨가 뭐가 좋다고, 그의 곁은 끝까지 지키며 사랑할 수 있었을까..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그렇게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여자가 생텍쥐페리 앞에서는 순종적인 여자가 되어 남편의 바람기와 외도에 괴로워하면서도 인내하며 아내의 자리를 오롯하게 지키는 지고지순한 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이런 게 바로 사랑의 힘인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둘 사이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생텍쥐페리는 그녀 곁을 끊임없이 떠나면서도 그럴 수록 못견디게 그녀를 그리워하며, 그녀는 그가 언제 또 자신을 떠날지 망므을 졸이고 괴로워하면서도 정작 그녀 자신은 그를 떠나지 못한다. 둘은 모두 가슴에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엇갈린 곳에서면 서로를 그리워하는 힘겨운 사랑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운명처럼.. 마치 전설처럼..

  경솔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였고, 변덕스럽다 생각되었던 그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진지했고, 온전했다. 결국은 각자에게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듯이, 나름대로의 사랑의 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역사의 저 너머 우리의 인식 속에서만 존재해왔던 생텍쥐페리가 가졌던 치유되지 않는 근원적 슬픔, 하늘에 대한 끝없는 갈망, 전설처럼 남은 콘수엘로와의 사랑을 통해 그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소설인 <어린왕자>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어 기뻤다.) 이 큼지막하고, 하늘과 별을 사랑한 생텍쥐페리의 사랑이야기가 들어있고, 그림과 사진과 편지글도 많은 책이 나는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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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랑하고, 기다리고, 안아 줄 이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내 집은 작아졌고, 창문만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이가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하늘을 집 안에 들여놓으려고요. -콘수엘로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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