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 지음, 안진환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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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 불황의 경제학

- 폴 크루그먼 - 


 1930년 대공황 이후 경제학자들은 수많은 가설과 현실 실험을 통해 거시경제의 큰 화두인 경기순환에 대해 알고자 노력 해 왔다. 로버스 루카스, 밀턴 프리드먼 같은 자유주의자는 여전히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주장하기도 했고, 폴 새뮤앨슨은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필요하다면 금융기관을 (한시적으로) 국유화 할 수도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공짜 점심이 있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도입부에 나오는 캐피톨 힐 육아 조합의 이야기는 거시경제의 처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고, 또 상당히 설득력 있는 모형이다. 육아기 자녀를 둔 조합원 간에 외출이 필요할 때 아이를 맡기는 대신 "쿠폰"을 지급하고, 쿠폰을 받은 부모는 또 자신의 외출이 필요할 때 그 쿠폰을 활용하여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SYSTEM에서, 쿠폰은 통화에 해당하고, 외출하는 부모는 소비자, 보육하는 부모는 근로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부모들의 공통된 생각 중 하나는 어떤 이유로 인해 연속해서 외출해야할 경우를 대비하여 쿠폰을 최대한 많이 쌓아두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소비성향(외출)은 낮고 저축성향(보육)은 높아, 서로 쿠폰을 쌓기 위해 보육을 하려고만 할 뿐(구직 증가) 맡기려는 사람은 없는(소비 감소) 악순환이 반복되어 쿠폰의 유통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간단한 방법은 조합 차원에서 쿠폰을 '공짜로' 풀어버리는 것이었다. 적정 수준의 쿠폰을 확보한 부모들은 그제서야 보육하는 대신 외출하기 시작했고, 수요 공급의 적정 지점에서 쿠폰의 유통이 정상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 사실상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많은 것들이 다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통화를 공급함으로써 불황의 문제가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좀 더 복잡한 현실 경제에서는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점이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저자는 이런 것들을 "공짜 점심"에 가깝다고 보는 것 같다. 활용할 수 있는 수단임에도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적용하기만 하면 공짜에 가깝게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불황의 원인(쿠폰이 유통되지 않은 원인)이 각 부모들의보육의 질이 떨어졌거나, 아이를 차별했거나, 쿠폰을 비이성적으로 많이 모으고자 하는 탐욕이 있거나 하는 등의 도덕적, 사회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특정한 원인으로 인해 유효수효가 발생하지 못했던 것 뿐이라는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는 당시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겪은 혹독한 구조조정 등의 기억으로, 당시의 경제위기가 개인인 소비자의 낭비, 그리고 기업의 무분별한 확장 등 "비도덕성"에 기인한 것으로 자책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사실이 아니다. 불황은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가 부족해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재벌기업의 부도덕이 경제 위기로 이어지는 직접적 연결고리도 약하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범 아시아권 신흥국에서 촉발된 신뢰의 붕괴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심리적으로 같은 "band"로 엮여 있는 우리나라에까지 전이되어 일어난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심지어 구조조정을 요구한 IMF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 도덕적 사회적 현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모습이 바로 외부의 "신뢰"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임을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다. 일종의 투자심리 회복을 위한 쇼에 가깝다는 말로 들린다. 태국에서 외환 위기가 촉발된 경위도 마찬가지이다. 정경유착 등 도덕적 판단을 벗어나, 당시 위기는 화폐적이며 현상이었던 것이다. 바트화 가치를 무리하게 방어하려 했던 외환 당국의 노력(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등 경제팀의 잘못된 판단과 시기를 놓친 행동 등이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태국 등 아시아, 한국, 일본, 영국, 미국 등 다양한 시기 다양한 원인으로 일어난 불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관통하는 용어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아닐까 싶다. 경제, 특히 금융은 내 생각에도 합리적일 때 만큼이나 비이성적일 때가 많은 것 같다. 조지 소로스는 이러한 불안 심리를 직접 조장해 파운드화를 공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파운드화를 유럽 화폐 통합에서 떼어놓기까지 했다. 불안한 심리에 따른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고, 모두가 발을 빼는 상황에서 건전하고 합리적 생각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최악의 손실을 입게 되는 상황, 그래서 마지막까지 합리적인 사람도 도망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는것, 그것이 많은 불황을 지나치게 큰 경기침체로 이어지게 만드는 원인인것 같다.

 더이상의 대침체는 없을 것이라 자신했던 2000년대. 2007년~2009년으로 이어진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는 거시경제가 새로운 국면에 와 있음을 보여주었다. 1930년의 bank run과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인데, 이번에는 은행이 아닌 "그림자 금융" 부문에서 일어난 인출 사태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렸다는 점이 달랐다. 다만, 밴 버냉키의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으로 은행을 구제하고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대공황까지 가지는 않았던 점도 다른 것 같다. 지급준비금 등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는 은행에 비해, 은행과 사실상 유사한 기능을 하면서도 거의 통제를 받지 않았던 "그림자 금융". 그리고 각국의 투자자가 서로 다른 나라에 투자하면서 위험을 예전보다 더 빨리 전이시킬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주목해야할 불황의 진원지는 중국일 것으로 생각된다. 부동산 부실, 그림자 금융, 지나친 관치 금융과 이에 따른 부실 대출, 은행 재무제표의 신뢰성 등 RISK로 간주할 부분들이 엄청나다. 게다가 올 초에는 조지 소로스 등 헷지펀드의 대가들이 이미 몇 번 건드려 보기도 했다. 중국의 신용 리스크가 급격히 터진다면 2008년의 사태를 능가할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가끔 들린다. 중국 공산당이나 은행 당국이 아무쪼록 미리미리 잘 대처하기를 바라야겠다. 


201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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