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람을 안다는 것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경식 다시 읽기 서경식 다시 읽기 1
권성우 외 지음 / 연립서가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 바쁜 나날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퇴직 전에 기대했던 여유로운 일상이 아니라,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진정되지 않는 심경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70년 인생 중에서 대학이라는 곳에 소속했던 20여 년의 짧은 기간이 오히려 나 자신에게는 예외적인 시간이었던 듯한 느낌이 든다. 원래 내가 처해 있던 불안정한 상태로 되돌아와 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을까. (321)

나는 옛 식민지 종주국의 majority 사이에서 태어난 minority, 분단국가의 ‘재외국민’, 비전향 정치범의 가족이었다. 이렇다 할 기술이나 능력도 갖추지 못했고 험한 노동을 견딜 건강한 육체도 없었으며, 그저 책에 빠져 있을 뿐인 ‘생활 부적응자’이고 ‘결격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고독’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 그랬던 젊은 날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흘렀다. 그때 죽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그대로 죽었어도 좋았으련만,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5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젊은 날의 망상이 옛 모습 그대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 나를 포함해서, 옥고를 치렀던 두 형, 소녀 시절부터 부조리한 운명에 상처 입었던 여동생, 한과 슬픔 속에서 절망한 채 세상을 등진 아버지와 어머니, 그들의 상처는 지금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다. (322-323)

대학 연구실에서 철수한 장서를 정리하고 있자니 ‘언젠가는 읽어야지’ ‘이것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구해 놓고 손도 대지 못한 서책과 재회한다. 하지만 그런 책을 꽂아둘 공간도 없으며, 지금부터 다시 공부할 시간도 체력도 내게 남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겠다. 읽어야 할 책도 못 읽고, 알아야만 하는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글을 쓰고,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하면서 살아온 셈이다.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적당히 둘러대며 살아왔는가. (323-324)

본의 아닌 오해를 받은 채(또는 오해를 안긴 채), 이제는 그 오해를 풀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 사람도 있다. ‘그때 한 마디라도 더 건넸으면 좋았을 텐데’ 라든가, ‘어째서 한 발짝 더 다가가 따져 묻지 않았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묻다가 ‘아, 이제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도 한다. 소식이 끊긴 사람, 마음을 다쳐 정신적으로 아파하는 사람, 병마나 자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나야말로 그렇게 되었어야 했다고까지 생각한다. 거듭해 온 실패, 과오, 죄의 기억만 가슴속에 쌓여 간다. ‘손을 쓸 수 없었다’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운운하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변명하듯 중얼거리는 나를 본다. (324)

졸저[『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를 저자가 구구절절 설명해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마디만 허락된다면 식민지 지배, 전쟁, 군사독재, 이산 등 민족사가 안겨 준 분열증적 상황에 질식할 것 같았던 내가 토해 낸 ‘한숨’에 적지 않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326)

우리 두 사람은 이곳저곳을 여행했습니다. 그는 무서운 꿈을 자주 꿉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을 때는 어머니가 꿈에 나와서 "너는 참 약삭빠르구나"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꿈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니는 잘 알고 계신 거야" 라고 중얼거리며 괴로워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어머님이 했을 리 없는 말들입니다. (316)

나는 서경석 씨와 만나서 가치관과 생활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알게 되는 것, 배우는 것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지난 총선거에서는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자민당이 압승했습니다. 쓰라린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안 되는 날이 다시 찾아오는 걸까요. 그런 날과 맞닥뜨린다면 피해를 입고 싶지 않습니다. 동시에 지금도 일본인으로서 가해의 역사적 책임을 안고 있는 저는 다시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이 세상에서 저를 지우고 싶습니다. (3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괴도 냥꼬의 진짜를 찾아라 - 명화 감별 챌린지 괴도 냥꼬의 명화 감별 챌린지 진짜를 찾아라 1
김정민 지음 / 아미서가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틀린그림 웃기게 틀려 있을 때 많음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리지널 오브 로라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창작노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보코프는 자신의 영감과 집중력이 점점 기력이 쇠하는 건강과의 경주에서 이기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아직 쓰이지 않은, 절반쯤 쓰인, 다시 고쳐 쓰인 난해한 책과 그녀를 동일시하는 것을 통해서만 마침내 표현해볼 희망을 품을 수 있을 뿐

그녀는 미래에 얽매이기를 원치 않아, 다음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거절했다

망명 장소를 잘못 택했다는 사실을 곱씹지는 말자

그녀는 보기 좋은 무희였지만, 뭔가 좀 연약하고 어설픈 연미 있어 호의적인 평가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극찬하는 평론 사이의 좁은 턱에 아슬아슬하게 계속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중이었다고, 지레짐작을 하고 싶어진다

예술에 대해, 사랑에 대해, 몽상과 각성의 차이점에 대해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만약 당신이 [꿈꾸는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녀를 추궁하면, 그녀는 마치 납작머리 푸른 뱀처럼 당신에게 덤벼들 것이다

두시카 마야: 러시아어로 ‘내 사랑‘이라는 뜻

극락조화: 남아프리카산 파초과에 속한 식물로, 바나나를 닮은 잎 끝에 왕관을 씌운 듯한 꽃 모양이 극락조를 닮았다. 꽃말은 ‘사랑을 위해 멋을 부린 남자‘ ‘영원함‘이다. 참고로 나보코프가 초기에 사용한 필명인 시린은 러시아어로 ‘극락조‘라는 뜻이다

파이커: ‘구두쇠‘ ‘인색한 도박꾼‘이라는 뜻

단테 시대에는 두려움 등의 감정이 깃들어 있는 ‘호수‘가 가슴속에 존재한다고 믿었는데, 이 호수 개념은 곧 피가 한데 모이는 ‘심실‘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위스 로잔 병원에 입원해 있던 1976년 여름 동안 내가 읽은 책들은... 찰스 싱글턴이 번역한 단테의 "신곡 ‘지옥편‘ " .... 겉만 번지르르한 주해의 시대가 가고, 문학성의 정직한 빛이 다시 위용을 되찾는 걸 보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장난이... 너무나 그럴듯했던 탓에 사태는 에드먼즈도 미처 생각지 못한 파문을 몰고 왔다. 거짓말이나 우롱에 대한 비난이 아닌 저작권 위반에 대한 나보코프 연구자들과 애호가들의 비난 메일이 쇄도했을 뿐 아니라, 드미트리의 연락을 받은 보이드가 격앙된 어조로, 미발표 작품을 허가 없이 게재한 것에 대해 나보코프 재단 차원에서 소송을 고려할 수도 있음을 알려왔다.

1999년 국제 나보코프 학회지인 ‘더 나보코비언‘은 나보코프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로 ‘나보코프 위작 경연‘을 열었다. 심사위원회는 ‘나보코프의 미발표 원고를 가장 진짜 같이 재현한 작품‘이라는 조건에 맞는 응모작 세 편을 선정해, 이 세 편을 실제 "오리지널 오브 로라" 원고에서 발췌한 다른 두 부분과 함께 ‘너 나보코비언‘ 42호(1999년 봄호)에 싣고, 독자들에게 (위작이 아닌) 나보코프 본인이 썼을 것 같은 작품을 골라보도록 했다. 경연 결과는... 놀랍게도...

조각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긴 했지만 하나의 그림에서 떨어져나온 게 분명한 퍼즐

플로라가 파티에서 대화하고 있는 상대는 명백히 육체적으로 실재하지만, 자신에 대한 언급을 피하며 플로라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대사를 신중히 소거하는 화자 자신이다

플로라와 성교를 하는 중에 흥분한 화자는 "내 사랑"이라는 말을 한번은 영어로, 한번은 러시아어로 두번 연속해서 말하는데, 이 말을 듣고 놀란 듯 감았던 눈을 뜨는 플로라에 대해 "그녀가 러시아인을 그렇게 자주 만나온 것은 아님을 참작해야 한다"고 부연하는 대목... ‘보이지 않는 화자‘는 ‘러시아계 이민 작가‘

와일드의 실험은 자기 의지력에 의한 자살, 즉 정신을 통해 육체의 생명을 끊는 자기 말살의 사고실험으로, 머릿속에 칠판을 그리고 거기에 ‘나를 표시하는 종선을 한 개 그려넣은 다음 그것을 밑에서부터 (머릿속에서) 지워나가면, 육체도 따라서 죽을 거라는 다소 황당무계한 가설

물론 와일드의 실험은 결국 실패해 그는 심장마비로 죽고

제1장부터 5장까지는 텍스트에서 일인칭 화자 ‘나‘를 소거하는 서사학적 실험이, 제6장부터 제7장까지는 육체로서의 ‘나‘를 소거하는 철학적이고 정신병리학적인 실험이 진행

나보코프의 마지막 코너킥이 당신에게 날아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대의 책 읽기 - 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
천정환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11월
구판절판


묵독하는 정독을 위해서는 조용한 개인적 공간이 필요하며, 홀로 그 공간에서 부동자세를 취해야 한다. 인류가 처음부터 책을 읽을 만한 집중력과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있을 수 있는 인내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서 높은 집중력과 훈련을 요하는 이런 자세는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것이 틀림없다. 또한, 근대인들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 도서관과 같은 ‘근대적’ 공간에서 책 읽는 자세를 집단적으로 훈련한다. 부모와 선생이 행하는 이 훈련에 적응하지 못하면, ‘주의산만한’ ‘열등생’이나 ‘지진아’가 된다. -136쪽

대중은 묵독을 위한 신체훈련과 비슷한 훈련을 연극과 영화 보기를 통해서도 새롭게 경험한다. 1890년대와 1900년대 활성화되었던 토론공간을 대체하며 등장한 극장과 영화상영관은 공공의 공간인 동시에 고립된 개인의 공간이다. 이 공간의 문화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적 체험을 근간으로 했다. 서구적인 근대극장의 관객은 익명의 다른 개인들과 함께 동일한 체험을 공유하되, 객석의 개별 시선들을 하나로 모으는 수렴점으로서의 무대나 스크린을 쳐다보게 된다. 타인과의 대화나 교류는 중단되고, 부동자세로 한 곳만을 집중하여 응시해야 한다. -140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욤이 2021-07-11 0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그럴까?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