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부리 아래의 돌 -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아버지들을 위한 비망록
김호정 지음 / 우리학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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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이에게 이리도 기막힌 가족사가 있었다니...

 

김호정은 우리 과 2년 후배이다.

언제나 반듯하고 정의로우면서도 조신한 느낌을 주는 사람. 그래서 왠지 믿음이 가고 마음이 더 가는 그런 사람.

 

난 이 책에서 김호정이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모두 쏟아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정하게 머리를 빗겨주던 아버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한 슬픔을

의지하던 언니와 헤어지고 졸지에 맏딸이 되어버린 부담감을

공포 속에서 자식을 먹여살리려 발버둥치며 모질어진 어머니와의 갈등을

가난 때문에 더 큰 꿈을 꿀 수 없었던 서러움을

 

간첩으로 조작되어 감옥에서 돌아가셨음을 알았을 때의 기막힘을

어디에 하소연 한 마디 못하고 숨죽여야 했던 세월의 악몽을

맨땅에 헤딩하듯 아버지 관련 인물들을 찾아나설 때의 막막함을

재심을 청구하고 기다린 육 년여 동안 바짝바짝 타는 속을

고문은 없었다며 눈곱만큼의 죄의식도 비치지 않는 가해자들을 응징하고픈 분노를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무죄 선고의 허망함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곁으로 불러올 수 없다는 고통을

 

그 모든 것을 쏟아냈다면

책 읽는 내내 눈물 콧물 쏟으며 엉엉 울고 아이고~ 우리 불쌍한 호정이...

책장을 덮고는 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김호정은 다른 선택을 하였다.

김호정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함구하고

그녀의 글솜씨만큼이나 멋지게 뽑을 수 있던 많은 제목들을 (아마도) 포기하고

발부리 아래의 돌로 이 책이 자리매김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우리가 그 돌에 걸려서,

아야, 이게 뭐야?, 어이쿠 하며 그 순간 멈춰서서, 자기 아버지 김추백 씨의 진실을, 국가 폭력에 의해 조작된 무수한 이들의 억울한 희생을, 우리 현대사의 어두움을 직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우규 씨 구원회처럼,

일회성이거나 사건이 종결되면 해산되는 그런 모임이 아니라

따스함과 성실함으로 언제나 함께 하는 연대의 손을 내밀어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호정아, 내 기억 속에 너는 항상 머리를 한 갈래로 묶고 있었는데

혹시 네 머리를 묶어주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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