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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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유럽으로 떠나기 전 친한 남동생에게 빌려서 봤다가 홀딱 반해서 구매하게 된 책.

 

책 제목도 ‘관계의 물리학’이라니 얼마나 그럴듯하고 멋있고 문과 감성에 이과적 사고를 녹여낸 제목인지 책도 아주 술술 잘 읽혔다.

 

한 번은 정말 인간 관계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을 때 읽었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소중한 사람이 생겼을 때 읽어서 느낀 바가 그 전과 달랐다.

 

 

관계의 우주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사귄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고,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닮아가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에 스며드는 일이라고 한다.

 

 처음에 당신과 내가 너무나도 성향이 달라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가 당신과 나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내가 당신의 내면에 반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내 말버릇이나 행동을 닮아가는 당신을 보며, 당신을 닮아가는 내 모습을 보며 우리의 관계가 진전이 되고 내가 당신을 참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종을 심을 때 마냥 가까이 심지 않듯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정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서로 상처를 내는 일도, 상처를 받게 되는 일도 없을 텐데…
좋으면 좋아서 꼭 그 관계를 붙들고 있게 되고, 멀어지면 멀어질 까봐 꼭 붙들게 되고 결국에는 나의 욕심으로 억지로 붙들고 있던 관계에 상처만 남는 것 같다.
당신과 나 사이에 최적의 거리가 어디일까?

 

 물론 책에서처럼 당신과 나 사이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당신과 나의 마음속에 따라 서로 천국을 보여줄지 지옥을 보여줄지 결정되게 된다고 하는데, 항상 당신에게 천국을 보여줄 수 없을까?

 

그건 나의 욕심일까?

 

 

 호의가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게 여기는 그 순간이 관계의 첫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겪어봐서 알면서도 가깝고 친해지면 나도 모르게 그 관계에 있어 방심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
‘나랑 친하니까 이 정도쯤은 이해해주고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 못된 마음들이 쌓여서 상대가 소홀과 무례를 느껴 그 관계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되고 나 자신이 알아 차리게 된 때는 이미 늦으니 방심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항상 고마워 하는 마음을 갖고, 표현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의 관계가 나의 방심과 자만으로 멀어 지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고 속상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 관계를 놓쳐버리며 후회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
10대 때에는 한 서른이 되고 나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 달인이 되거나 능숙해 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 될 수 없고 흥정 할 수 없는 절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를 건네는 것이 상당히 자기 자신에게 자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사람의 생각과 배경과 행동을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없고, 같은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란 나와 동생의 사고도 이렇게 다른데 누가 누구를 이해하며,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가 '그 사람의 마음에 가서 과연 와 닿을 수 있을까?' 하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는 사람이어서. 그 어떤 위로나 말로도 상대방이 맞닥뜨린 일들을 치유하거나 변화시켜주지 못 한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기를 그래도 우리는 이해한다고 말을 하고 위로를 함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확인하고, 위로를 받음으로써 나의 존재를 인정받게 된다고.....

 

 

 내가 당신을 만나서 좋은 인상을 받고, 당신을 자주 만나고, 당신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렇게 질량을 갖게 된 감정은 가까워질수록 끌어당기는 힘도 커진다고 한다. 서로의 인력은 햇볕과 빗방울을 끌어당겨 사과 나무의 잎을 피우고 사과가 가지에 매달리게 하고, 그 사과가 땅 위로 떨어뜨리게 만든다고 한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일은, 그러므로 지구에 안유인력이 작용하도록 만들고, 지구의 모든 사물이 흐트러지지 않고 올바로 서도록 만들고,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아름다운 질서를 창조한다고 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말하고 흔하게 정의하고 노래에 지겹게 등장하는 그 감정 하나가 지구와 태양과 달이 친밀하게 공존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의 온도가 이 천체의 존속에 공헌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말을 받아들이고 해석 하는 것은 마치 인상파 화가와 같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사물을 보이는 색깔대로 그리지 않고 어떤 화가의 그림에서 사과는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그림에서는 노란색으로 칠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자신의 심상에 따라 사물들이 다르게 인식이 되고 표현이 되니까.


그러고 보면 말도 참 그런 것 같다. 똑 같은 말을 내 뱉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상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마음에 칠해진다. 말의 화살은 쏜 사람에게는 흔적이 없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마음이란 과녁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게 된다. 말은 하는 자의 소유가 아니라 듣는 자의 소유가 되니까.
내가 아무리 장난으로 한 말이 당신에게 와 닿아서는 상처가 되듯이…


 사실 이건 오늘 있던 아주 따끈따끈한 일인데, 점심때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나에게 “너가 그럴 때 마다 무서워.”라고 했다.


종종 다른 사람에게 무섭다는 말을 들어와도 그건 결코 상처가 되거나 내 과녁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당신의 입에서 나온 그 ‘무섭다’라는 단어가 내 과녁에 와서 크게 자국을 남겨버렸다. 생각보다 큰 자국이 남아서 나 스스로가 그 자국을 보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깐만 전화를 끊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말이었고, 나의 날이 선 반응에 당신도 많이 당황했을 것 같았지만 일단 그것과는 별개로 내게 그 말이 상처가 되었다는게 내겐 더 컸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근데 내가 무섭다고? 왜? 내가 뭘 잘못 했는데? 어느 포인트 어느 부분에서 도대체 어디가 왜? 다른 사람들이 그래도 당신은 내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거 아니야?’하는 마음에….


내가 당신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별거 아닌 마음에 이렇게까지 혼자 놀라고 상처받은 내가 어이가 없었다. 오늘 일을 살펴보면, 말은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에 따라서도 흔적으로 남을 수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 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으면 타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야?’하고 물어보기 보다는, 평상시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사는지 스스로 살펴 봐야 한다고 한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사고하는 방식을 바꾸고, 말하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고 한다. 성격은 바꾸기 힘들지만 말의 색채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니까.


 사람의 심장에 보관된 말은 소멸 시효가 없다고 한다. 심장에 박힌 상처가 된 말은 말의 주인과 상관없이 한 존재의 일생을 잔인하게 갉아먹는다고 한다. 나도 15살 때 누가 내가 웃을 때 윗 잇몸이 많이 드러나서 징그럽다는데 그거를 확인 하고 싶다고 갑자기 내게 “야, 한여린. 웃어봐.”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그 이유를 알고 나서 그 무렵의 나를 참 잔인하게 갉아 먹었다. 어디를 가도 속 편하게 웃지 못 했고, 혹시나 내가 활짝 웃으면 누군가에게 추하게 보일까봐 의식적으로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게 되고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 말이 참 나를 많이 상처 입히는 때가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상처를 줄 가능성이 있으니까 항상 조심하고 싶다. 당신들의 마음의 과녁에 엉망으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감정이 메말라 간다고들 한다.
이 책의 작가도 그렇다고 했지만 나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고마워하고 사랑하고 미안해 하는 감정은 마음속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감정이다.
감정이 메말라 가는게 아니라 그 마음을 표현하는 정성이 메말라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둬두고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친구한테 종종 도대체 내가 왜 좋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내가 참 표현을 많이 해줘서 좋다고 한다. 예전에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친구들이 나에게 어찌보면 좀 오글거리는 말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표현하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했다.

 

 

아낌없이 주고도 펑펑 남는 마음을 왜 그렇게 아끼고 사는 것일까?
죽으면 쓸모도 없는 따뜻한 말들을 왜 그렇게 아끼고 안 쓰는 것일까?
사람의 감정은 표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알 수 없다.


나는 오해와 서운함도 거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당연히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하는 생각은 너무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절대 알 수 없다.
일단 그리고 좋은 감정들이나 따뜻한 말은 나는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마음껏 표출하고 싶다.
내가 언젠가 당신과 나의 관계를 뒤돌아 볼 때 당신에게 더 좋은 말을 해줄걸, 따뜻한 말을 건넬걸,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다고 후회하지 않게.

 

 

 

 작가가 영국 런던의 해머스미스라는 지역에 갔다가 시내 한가운데에 마그러빈이라는 공원묘지가있는데 거기에 갔다가 놀랐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는데,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여행 하고 있을 때였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에 구글 지도를 보고 관광지라고 되어있는 곳에 발길이 닿으면 가곤 했는데, 한 교회(혹은 성당) 옆에 묘지가 많았다. 묘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산책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침울하거나 어두운 분위기가 아니라 환하고 고요했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 묘비석들도 다 제각각 개성이 다르고 죽은 사람의 애틋한 이름과 곧게 서있기도, 조금은 비뚤어진 형태로 서 있는 묘비석과 여러 천사 형상의 석조물들, 그리고 묘비 근처에 놓여있는 꽃들 사이로 햇살이 물에 물감이 번지듯 밝게 번졌다.
책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유럽의 묘지를 보고 마음이 참 싱숭생숭 했다. 한국은 아무래도 님비 현상으로 납골당이나 묘지는 도시 한가운데에 있지 않고, 보통 어딘가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숨겨져 있는데 이렇게나 도심 한 가운데에 버젓이 죽음이 존재감을 내고 있어서. 세상에 삶만 존재 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죽음도 존재 한다고...병원에서도 장례식장은 지하에 있고 화장터는 저쪽 멀리 벽지에, 무덤은 산속으로 밀려나 있는데.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 마치 없는 것 처럼 안 보이는 곳으로 떨쳐내고 마치 죽음은 없는 것 처럼 삶을 살아가는데….

 

 

 지구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지각에는 산소, 알루미늄, 철, 칼슘 등 90여 종의 원소가 존재 한다고 한다.

그중에 프랑슘이란 원소는 원소 중 맨 나중에 발견된 원소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좀 특별한 원소다. 

가장 불안정하여 반감기가 22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지각 전체에 존재 하는 양도 겨우 30g이 채 되지 않는 극미량. 그래서 과학자들이 프랑슘을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물질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미량으로 생성하는 행복 에너지가 87번 원소인 프랑슘을 닮았다고 한다.
보통 슬픔이나 우울, 좌절 등 무겁고 음습한 감정들은 오래 생성되어 있고, 행복이나기쁨은 프랑슘 처럼 금세 생성되었다가 사라져버리곤 한다. 즐거운 감정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다른 어두운 감정들이 마음의 지각을 장악해버리고 마니까.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들을 구사하며 살아가는데, 대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걸 선택한다. 이 관계를 잘 유지하는 동안 행복이라는 프랑슘이 분출되는 걸 직접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겠지.

행복은 금세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에 부지런히 내 안의 우물에서 펌프질을 해야 갈증을 해결 할 수 있고,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사소한 일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내 역치를 낮추어야 한다.

 

내가 나의 프랑슘이어야 한다.

그리고 당신 또한 내 행복의 원천이므로 당신도 나의 프랑슘이다.

나의 프랑슘을 많이 생산해 내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당신에게 말한다.

너를 참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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