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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는 마음 - 매혹됨의 역사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노만수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2월
평점 :
산에 처음 오를 땐 ‘주관(나)’으로 시작한다. 나의 상처, 회한, 아픔, 그리움, 상실, 기쁨 등을 곱씹으며 오른다. 내가 왜 그 사람이랑 헤어졌을까? 우리 엄마는 왜 그렇게 빨리 가버린 것일까? 그 친구에게 내가 매정하게 군 것일까? 그때가 나의 전성기였지? 이러쿵저러쿵 등산을 하다 보면 건강이 좋아지겠지?..........
그러다 자꾸 산을 오르다 보면 ‘객관(자연)’이 나를 방문한다. 어, 이 돌멩이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이 산의 꼭대기에는 주로 왜 저런 구름이 피지? 이 산등성이를 오면 이런 바람이 자꾸 부는 건, 왜? 이곳에 구상나무는 언제부터 여기에 터를 잡았을까? 이 바위가 이 계곡에 천년 동안이나 자리잡은 까닭은? 등등 이렇게 ‘나’가 넓어져 ‘너(산)’에게 스며드는 듯, 너(산)가 나에게 너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주라고 당부하는 듯한, 그런 주관(나)과 객관(산)이 어느덧 혼일해 원래의 나(의 상처, 회한, 아픔, 그리움)를 타자(산)가 어루만져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 산을 문학적으로 느끼려고도 하고 자연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싶기도 하고, 산에서 산은 나에게 갖가지 느낌 속으로 데려간다.
이 책은 그런 느낌의 책인 듯싶다. 산은 산이고 나는 나인데, 산과 내가 서를 알고 싶어 하는 그런 느낌.
산에 오르는 마음. 그 마음은 원래는 나의 것이나, 시나브로 산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죽는 연습(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을 하러 산에 가는지 모르고. 어차피 산에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그 전에 나가 돌아갈 자리(산)가 어떤 곳인지를 이 책은 ‘지적(학문 교양)’으로 알려준다. 참으로 신박한, 산(山) 책이다.
이 책 이전에는 산 모험서나, 산 정복의지투쟁(내가 이 산을 오르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자랑하는)류, 산 여행 멜랑꼬리 감성서 류가 주류였는데................그래서 좋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