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박수연 옮김, 파울라 F. 벤투라 그림 / 혜원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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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몇 번이나 읽으려다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문단에 질려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이런 고고한 문장을 백만 명도 넘게 읽을 수 있었단 말야?!] 라면서 내팽개쳤던 책이다. 최근 교보문고에 갔다가, 원하던 책(전공 관련 서적-_-)을 사지 못해 두리번 거리다가 발견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했다. 꽤나 예전에 출판했는지 지금의 깔끔하고 예쁜 판형들과는 거리가 있는 - 좌우 상하 여백이 적고 글씨 크기는 작은 - 구성이었다. 번역도 영어 냄새 풀풀 나는 엉성한 번역이었다. 그런데 그 엉성한 번역과 원 어문을 떠올리면서 읽다 보니, 오히려 이해가 더 잘되었다. 번역에 구애받지 않는 꼼꼼하지 않는 자신에게 감사할 일이다.

이 책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였다. 부엔디아 가문은 마콘도라는 마을의 생성과 번창, 그리고 소멸과 그 맥락을 같이 했다. 시간적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이야기는 한 가문과 마을에 라틴 아메리카의 농축된 역사와 기억을 담고 있었다. 소설이 지닌 농밀함에 나는 숨이 막혀 대여섯 번 책장을 놓고 숨을 돌려야만 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나아갈 셈이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책을 다 읽었고, 그 완벽한 마무리에 혀를 내둘렀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정말 치밀한 사람이다. 책에 등장하는 아우렐리아노의 끈질김을 그 역시 가지고 있었다.

호세 아르카디오와 아우렐리아노의 이름을 이어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같은 면모를 보이면서도 각자의 삶을 살았다, 라던지, 가문에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담았다, 라던지, 그런 것을 다 차처하고서 가장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신화와 함께 한 그네들의 삶이다. 자신이 죽인 유령이 집안에 기거하자 아내와 함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난 호세 아르카디오, 불가사의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던 아우렐리아노, 불사의 생명을 가지고 오랫동안 유령으로서 부엔디아의 집에 기거했으며 일찍이 부엔디아 집안의 운명을 예언했던 멜키아데스. 피로 얼룩진 역사와, 신화를 혼용하면서 마르케스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라틴아메리카의 할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피비린내 나는 역사와 감추고 싶어하는 정치 현실, 바나나 공장의 뻔뻔하면서도 악한 자본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와 환상과 영웅과 상상이 가득한 이야기다. 현실은 상상과 합체하여 또다른 그 무언가로 승화하고, 언젠가 어디선가 어느 순간에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된다.

난 그게 너무 부럽다. 왜 우리나라의 일제시대와  6.25와 군정시대와 노동 투쟁은 항상 심각하고 어둡고 숨겨지고 복잡해야 하는걸까. 우리나라의 축제와 춤과 노래는 어디로 간 걸까. 왜 노래는 노래방에서 불러야 하고 춤추기 위해 클럽으로 가야하는걸까. (음. 이건 첨언이긴 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백년 동안의 역사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가문도 아닌 백 년 동안의 고독이다. 백 년의 시간 속에 사람과 사람은 명예욕, 물욕, 식욕, 정욕, 정치적 욕망을 향해 내달린다. 번영하였을 때의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소유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 외롭게 죽어갔다. 몇 십년 동안이나 살면서도 사실은 서로를 몰랐음을 우르술라는 아주 늦게야 알고 눈물을 흘리고, 아우렐리아노는 평생 타인을 사랑하지 않았다. 미녀 레메디오스는 빼어난 미모의 사람이었으나 누구도와도 결혼하지 않아 구혼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였던 때는 언제나와 같이 불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천성도 무엇도 아니라는 듯이 보였다. 성격이 결정되어 있듯이 사랑하는 마음도 결정되어 있는 듯이- 부엔디아 가문의 근친상간의 내력과 함께-보였다면 착각일까.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농밀하게 역사와 사람을 담는 작가가 있는가 생각해본다.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었으나 이런 느낌은 아니었지, 하고 말해보고, 박경리의 <토지>를 읽기 시도해볼까, 하고 생각해본다. <아리랑>, <혼불>... 도 떠올려본다. 조금 찾아봐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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