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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인문학 -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9인의 사유와 통찰
전병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다
한때 ‘힐링’을 주제로 한 도서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책을 안 읽던 주위 사람들조차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읽었을 정도니 그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때 누군가 “힐링이 뭐야?”라고 물어오면 ‘너나 나처럼 일상에 찌들어 있는 고달픈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거’라고 대답했다. 사실 ‘힐링’은 그에 대해 정의를 내릴 만큼 어렵거나 다가가기 어려운 주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강하게 불던 ‘힐링’ 바람은 잠잠해졌고, 그 뒤를 이어 ‘인문학’ 열풍이 크게 불어왔다. 그런데 누군가가 “인문학이 뭐야?”라고 물어오면 전과는 달리 입을 꾹 다물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내가 설명하기에 인문학은 그 범주가 너무 넓었고, 나 스스로 그것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관련 도서를 꽤 읽었음에도 그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흐리게만 보이던 인문학이 조금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철학(이태수), 뇌과학(김대식), 역사학(유발 하라리), 서양사(주경철), 경제학(토마 피케티), 인지심리학(조너선 하이트), 문화심리학(김정운), 빅테이터 분석(송길영), 한문학(정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그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들의 기저에는 ‘인문학’이 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놀랍게도 그들의 시작점은 모두 ‘삶’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는 데 있었다. ‘우리’와 ‘삶’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이야말로 모든 것의 기초이자 한 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진제 겸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또, 그들 중 일부는 우리나라의 인문학 교육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한다. 지나친 인문학의 열기 속에 ‘진짜’는 생각보다 그 수가 적은 탓이다. 실제로 장사꾼이 제대로 익지 않은 열매를 억지로 따내거나 유사한 열매를 가지고 와서 이것이 진짜라고 우기고 있는데, 정작 사는 사람은 진짜를 알지 못해 익지 않거나 가짜인 열매를 사고도 그것이 잘못됐음을 알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줄 지식인을 발굴하고, 우리 스스로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며,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학습하는 것이 시급하다.
▶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을 찾는 기나긴 여정
저자는 서문에 ‘지적 성장을 위한 넓고 깊은 대화이자 한 번 더 캐묻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책은 결코 얕지 않을뿐더러 가볍게 읽기에는 부적합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용에 있어 어느 정도의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기에 더 편한 책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술술 잘 읽힌다. 아마도 책 형식이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어 다소 어렵고 딱딱할 법한 내용들이 훨씬 더 부드러워진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매 챕터의 시작과 끝에 intro와 outro를 넣었는데, 여기에는 인터뷰이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선정한 이유, 인터뷰 후기 등등이 적혀 있어 독자가 인터뷰이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미 챕터마다 내용이 탄탄해 속이 꽉 찼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이들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다는 것이다. 더 넓고 더 깊이 있는. 그만큼 모든 인터뷰의 내용이 곱씹어도 모자랄 만큼 참 좋다. 인문학은 ‘우리’ 그리고 ‘삶’에 항상 연결되어 있다. 인문학 혹은 우리와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읽고 고민하기에 좋은 책이다.
사실, 과거에는 학문이 곧 인문학이었습니다. 인문학이 특정 학문 분야를 지칭하게 된 것은 서양에서 학문 분화가 일어난 후에 그것을 수입해 번역하면서 역사, 철학, 문학을 묶어 부른 것입니다. 조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일본 사람이 붙인 이름이 맞을 겁니다. 르네상스를 인문주의의 부흥이라고 부른 것도 일본 사람 입니다.
왜 인문학인가, 이태수_ p21
제가 고전을 배울 때는 왜 중요한지도 모르고 배웠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디로 향하는지 알려면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를 거쳐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넓은 폭으로 이해해야 해요.
달려오는 미래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김대식_ p65
우리는 몸과 정신을 바꾸는 힘까지 포함해 유례없는 힘을 갖게 되겠지만, 이 모든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사피엔스는 이제 신이 되려한다, 유발 하라리_ p118
불평등은 경제성장에 꼭 필요하지만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될 필요가 있다.
21세기 자본주의와 그 적들, 토마 피케티_ p161
결국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잘 관리하는 것 같아요. 외로움에서 도피하기 위해 관계 속으로 뛰어드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어요. 나중에 더 외롭지요. 인생에서 한순간은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외로움한테 호되게 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 외로워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만나고 나면 매번 후회가 돼요. 내가 소진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조르바가 준 선물, 김정운_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