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픔의 틈새 ㅣ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5년 8월
평점 :

▶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들
각자의 사정으로 고향을 떠났지만 조국으로부터 외면받아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향을 잊지 않고 가슴 깊이 그리워한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채 살아야 했던 사람들. 바로 사할린에 거주한 한인들이다. 이 책, 《슬픔의 틈새》는 일제 강점기부터 최근까지 긴 시간 동안 강제로 조국을 잃은 채 살아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 디아스포라 문학이다.
한인들이 사할린에 온 목적은 단 하나다. 가족과 함께 잘 먹고 잘사는 것. 그래서 제대로 된 안전장치 없이 탄광에 뛰어들어 일을 하고, 남편을 찾아 아버지를 찾아 기차와 배를 수시로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사할린까지 온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잠깐의 행복과 긴 절망이었다.
달콤한 말로 조선인을 꾀어 사할린 탄광으로 데려간 일본은 패색이 짙어지자 광부들을 본토로 강제 징용한 뒤 사할린에 남은 한인들을 나 몰라라 한다.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은 사할린을 통제하며 한인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금지한다. 그리고… 해방 후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데려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조선(한국)은 사할린 한인들을 사실상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국적법을 제정한다. 한국, 소련, 일본.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 당시 그들의 심정을 ‘절망’이라는 얄팍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턱 없이 부족할 거다.
생각지도 못한 조국의 배신과 외면 앞에서 좌절감과 울분, 분노, 체념과 같은 감정을 동시에 느꼈을 한인들은 충격에 몸져누울 시간조차 없었다. 어떻게든 삶을 이어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척박하고 삭막하며 모질기까지 한 운명에 맞섰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찾아내고자 애쓰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슬픔의 틈새》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생각만 해도 고통스러운 역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고 절절하게 그려냈다. 그들은 분명 존경받아 마땅하다.

▶ 주단옥, 타마코, 올가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뜨리면 안 되는 인물이 있다. 일본 이름은 타마코, 소련(러시아) 이름은 올가인 주인공 주단옥이다. 그는 13살에 광부인 아버지를 따라 사할린에 왔다가 일생을 그곳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시작과 끝에 주단옥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단옥의 인생은 그 당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하고 기구하다. 그러나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역경’을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는다. 항상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하며, 능동적으로 삶에 대처한다. 그뿐인가. 사랑마저 스스로 쟁취한다. 이렇게만 보면 요즘 세상에 저게 뭐 대단한가 싶겠지만, 주단옥이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태어난 인물이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슬픔의 틈새》가 오직 ‘주단옥’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가 이 책의 근본이고 정체성인 것은 맞지만, 작가는 그를 통해 사할린 한인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지 단지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던 건 아니기 때문이다.

▶ 《슬픔의 틈새》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고국으로부터 아무런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할린 한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혼란스러운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꽉 닫힌 결말임에도 오래도록 먹먹한 울림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