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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 상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평점 :

▶ 노병은 죽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1947년 생으로 만 78세다. 74년에 데뷔했으니 벌써 50년이 넘게 글을 쓰고 있는 건데, 그의 글은 늘 새롭고 짜릿!하다. 작가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 당연한 걸 해내는 사람이 많지 않을뿐더러 쉽지도 않다. 더군다나 큰 성공을 거둔 이라면 자기가 성공한 방식을 답습해 쉬운 길로 가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스티븐 킹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존경받아 마땅하다.
또, 스티븐 킹은 평범한 소재로 진수성찬을 만들어내는 귀재이기도 하다. 분명 처음 읽을 땐 ‘이게 뭐?’ 싶은데, 숨도 안 쉬고 마지막까지 다 읽은 다음에는 ‘미쳤다’(p)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성공한 중년의 이야기가 왜? 알코올의존증인 남자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뭐! 싶은데, 읽어보면 안다.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이야기가 얼마나 큰 전율과 희열을 주는지.
스티븐 킹은 이번 책을 통해 더 날카롭게 벼려진 글솜씨를 자랑하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 영화? 아니 소설!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상)에 수록된 단편집 중 유달리 분량이 긴 단편소설이 있다. 바로 <대니 코플린의 악몽>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첫 부분을 읽을 때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편임에도 책의 거의 반에 가까운 분량을 차지하는 걸 보아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는 틀렸고, 스티븐 킹은 옳았다. <대니 코플린의 악몽>은 장편소설로 나왔어도 될 주식이었다.
<대니 코플린의 악몽>은 증거를 찾고 범인을 쫓는 데 주력하지 않는다. 살인 사건 용의자로 몰린 대니 코플린이 점점 고립되는 과정과 그를 범인이라고 확신한 형사 프랭클린 잴버트의 묘한 신경전을 주로 다룬다. 심증만으로 만들어진 확신이 어떤 불신과 혐오와 차별을 만들어내는지 하나하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나 드라마로 나와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미 영상화가 확정되었다고 하니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스티븐 킹의 책을 사랑하는 데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굳이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다층적인 캐릭터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 그리고 뒤로 갈수록 빛을 발하는 탁월한 스토리텔링을 들 수 있겠다. 그것들은 얇은 막처럼 심장을 감싼 뒤 제멋대로 조였다 풀기를 반복한다. 단숨에 소름 돋게 만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서히 온몸을 짓누르며 압박감을 주는 이야기들. 독자의 시간을 순삭하는 데 도가 튼 이야기꾼이 이번에도 큰 사고를 쳤다. 이번에도 내 시간은 빠르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