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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서양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평점 :

▶ ‘서양(문명)’을 안다는 착각
사전에 따르면 ‘서양’은 유럽과 남북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러 해에 걸쳐 받은 주입식 교육 덕분에 ‘서양’이라고 하면 자동 반사적으로 ‘민주주의’, ‘평등’과 같은 단어를 떠올리고는 한다. 물론 ‘인종차별’과도 같은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 혹은 중립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왔을 것만 같던 그들의 ‘서양 문명’이 선형적으로 계승되어 온 것이 아니란다. 거기에 더해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가 이념적 유용성을 가지고 있어 발명되고 보급되고 지속되었단다. 결국,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서양은, 서양 문명은 그들의 입맛에 맞게 교묘하게 편집되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고전 고고학자이자 이 책의 저자인 니샤 맥 스위니는 《만들어진 서양》을 통해 서양의 기원을 검증하고 그것이 오늘날의 거대 서사로 발전해 간 과정을 추적한다. 어려운 말,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를 가진 14명의 인물을 통해 더 쉽고 흥미롭게 말이다.
▶ 진짜 서양사의 민낯을 보여주는 인물들
그동안 인물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들은 많았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만들어낸 업적을 달성한 위대한 인물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들. 그들이 말하는 역사는 우리가 지금껏 배워온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차별점이 드러난다. 저자가 알려진 것과 다른 모습의 ‘서양 문명’을 낱낱이 풀어 헤치는 데,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물을 매개로 삼기 때문이다.
인종, 신분, 사는 지역 등을 막론하고 선정된 14명의 이야기에서 ‘서양 문명’이라는 거대 서사가 어떤 식으로 계승되고 변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이야기들이 자못 흥미진진하다. 예를 들어, 고전기 그리스 시대엔 성별, 계급으로 차별할지언정 인종(피부색으로 인한) 차별이 없었으나, 18세기에는 인종 차별이 극에 달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18세의 흑인 노예인 소녀가 시집을 썼다가 법정에 서는 일까지 발생한다. ‘흑인’에 ‘노예’인 소녀가 그런 높은 수준의 글을 썼을 리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또,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정착민들은 자신들이 영국인 개척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해방을 요구하지만, 그 독립과 자유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을 위한 것이지 비서양인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서양 문명’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에 따른 모순적인 태도가 도덕적 문제를 야기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은 그들에게 언제나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비서양인은 자신들처럼 ‘우월’하고 지적이지 않은 존재이기에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된다는 착각이 기저에 깔려 있어 그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니샤 맥 스위니는 특정 집단의 이익과 권력의 요구에 따라 교묘하게 편집되고 수정된 ‘서양 문명’의 거대 서사를 14명의 이야기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낸다. 또한 그가 제기한 문제는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서양’과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국가에서도 충분히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주제가 아닐까 싶다.
▶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서양’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침략과 약탈을 반복해 왔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을 죽였고, 납치했고, 나라를 빼앗았다. 그들의 악행은 야만스럽고 잔혹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유’와 ‘평등’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는 데 성공했다. 자기 입맛대로 만들고 덧씌워 재구성한 ‘서양 문명’을 앞세워서 말이다. 아마 이 만들어진 서양의 거대서사는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쉽게 대체되지 않을 거다. 다만, 이러한 문제 제기가 허구와 환상과 이익 관계에 의해 짜깁기 된 엉성한 탑을 언젠가는 무너뜨릴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