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포 투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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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2인용 테이블에서 나눈 단 한 번의 대화로 인생이 크게 변할 때가 많다."



▶ 아름답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책

참 신기하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차고 넘치는 시대인데, 우아한 글을 자랑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에이모 토울스가 떠오른다. 그가 그런 류의 느낌이 나는 특정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그런 식의 묘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그런 그가 쓴 단편은 어떨까. 에이모 토울스의 단편집은 처음이라 기대가 되면서도 처음이니까 기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하기 마련이니까. 솔직히 중편은 몰라도 단편에서는 전작들에서 느낀 감정들을 느끼고자 하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널뛰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명불허전. 역시나는 역시나다. 에이모 토울스는 전작들에 버금가는, 부담 없이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세련된 책들을 쓰는 데 또 성공했다.




▶ 6편의 단편, 다른 맛 다른 이야기

전체적으로 과함이 없는, 순한데 자꾸 당기는 맛이다. 그런데도 겹치는 주제나 캐릭터 성격, 내용이 하나도 없다. 단 하나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전부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뿐이다(가장 처음에 나오는 단편 <줄서기>는 주 배경이 모스크바지만 결국 마지막 종착지는 뉴욕이었다).

나에게 단편집의 재미나 인상을 좌우하는 건 단연 결말이다. 내용이 아무리 재밌어도 결말이 엉성하면 줄기가 꺾인 꽃처럼 책에 대한 호감도 이내 시들고 만다. 결말을 독자에게 맡긴다는 식의 무책임한 열린 결말, 일은 벌였는데 수습하지 못해 개연성 없이 다 죽이고 끝나는 배드엔딩, 반대로 새드엔딩은 안 된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급조해낸 해피엔딩 등. 하도 많이 당하다 보니 이 책을 읽을 때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책 속 단편소설들의 내용이나 결말은 완벽했다. 마치 각각 다른 영화를 본 것처럼.



▶ 《우아한 연인》 외전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우아한 연인》을 읽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읽었더라. 아마도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은 뒤에 에이모 토울스에 홀딱 빠져 연달아 읽은 듯했다. 《테이블 포 투》의 중편 <할리우드의 이브>는 《우아한 연인》의 외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꼭 《우아한 연인》을 읽을 필요는 없다. 앞의 내용을 알지 못해도 지장 없이 술술 읽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할리우드로 간 이브. 그곳에서 그녀는 자기만의 매력을 발산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 안에 기차에서 알게 된 은퇴한 형사, 이젠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왕년의 스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스타와의 우정은 덤이다. 거기다 이브의 화려한 외모와 그에 못지않은 완벽한 언변에 빠져드는 사람이 속출한다.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당당한 태도 또한 그녀를 더 빛나게 하는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여기까지만 보면 큰 특색 없이 그렇고 그런 이야기일 것 같은데, 2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장르가 바뀐다. 할리우드에 와서 친구가 된 배우 리비의 노출 사진이 이브의 손에 들어온 거다. 이브는 왕년의 스타와 은퇴한 경찰, 스턴트맨 지망생과 함께 협박범을 찾아 나선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 이건 마치 에이모 토울스가 쓴 추리소설의 맛보기를 본 느낌이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 이 중편을 읽고서 그가 쓴 추리소설을 기대하게 됐다. 아마 그건 단호하고 잔혹하지만 그 만의 품위를 잃지 않는 우아한 추리소설이 되겠지.



▶ 섬세함이 낳은 공감의 공간

에이모 토울스는 섬세하다. 분명 남자인데 여자가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캐치한다. 특히, <할리우드의 이브>에서 숙녀가 되기 위해 참는 것을 강요받았던 이브의 과거 이야기라든가 협박범으로부터 노출 사진을 받은 리브에게 ‘잊으’라고 한 이브가 느끼는 감정은 직접 경험해보기라도 한 것처럼 사실적이다.



또, 특정 상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는다. 가령, <나는 살아남으리라>에서 넬은 엄마에게서 계부 존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존이 바람난 것 같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엄마는 이내 말을 번복하지만 넬은 예정대로 존의 뒤를 쫓는다. 결과적으로 존은 바람난 게 아니었고(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이유였다! 내용은 책을 통해서!), 엄마와 존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넬은 오래도록 그 이야기를 입에 담는다. 작가는 넬의 이 행동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모든 작품에 마음을 ‘콕’ 찌르는 장면이 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드는 그 장면. 이 책이 만약 영상이었다면,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의 짤이 만들어졌을 거다. ‘맞말 대잔치’ 혹은 ‘반박불가 맞말’이라는 제목을 달고서.




▶ 항상 500페이지를 거뜬히 넘기는 책을 출간한 작가였기에 ‘에이모 토울스’하면 장편만 떠올렸지 단편은 연관 짓지 못했는데 이게 웬걸, 너무 재밌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단편소설로 작가 수련을 했습니다.……단편소설 창작에 의지한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한다. 그 재밌는 걸 혼자만 보셨다고요?? 에이모 토울스를 애정하는 독자로서 앞으로 그의 책이, 장중단편 가리지 않고 많이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왕이면 추리소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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