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일부 재편집한 콘텐츠임을 밝힙니다*

 

 

 

 

 

EP.3

여행 동반자

 





우리는 여행을 자주 했는데,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흔한 다툼도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서로 행동 범위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취재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라고 물으면 요코는 항상 “갈래요”라고 곧바로 대답했다. 그런데 요코는 매번 어느 나라 또는 어느 지방에 가는지는 거의 물어보지 않았다.


“당신은 여행을 좋아한다면서도 어딜 가든 상관없다고 하는데, 그래서야 정말로 여행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겠어?”


언젠가 이렇게 물어봤더니 요코는 다음과 같은, 일종의 명언을 남겼다.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디든지 좋아요.”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여행을 떠나는 요코는 명승지나 유적지 등은 안중에도 없고, 기념품을 쇼핑하느라 돌아다니기 바빴다. 

나는 나대로 흥미로운 명승지나 유적지를 돌아다니느라 한나절을 모두 보냈다. 또는 호텔에서 그 지방의 신문과 잡지를 읽으면서 맥주나 와인을 마셨다.

그렇게 따로 행동할 거라면 부부끼리 여행을 가는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말을 들을 법도 하지만, 우리는 세 끼 식사만큼은 늘 함께하므로 그것으로 만족했다.


요코의 쇼핑은 여행지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해외에서 열차 여행을 할 때도 차내 판매원에게서 물건을 사기도 하고, 플랫폼에서 정차 시간이 길어질 것 같으면 역 매점에서도 물건을 샀다.





단 한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이른바 요코만의 쇼핑법이다. 

“이 나라의 동전을 남기고 다른 나라로 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동전 지갑을 들고 플랫폼의 매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휘말렸던 적이 있었다. 

국제 열차가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갈 때 요코는 언제나처럼 남은 스위스 동전을 다 써야 한다며 동전 지갑을 들고 플랫폼의 매점으로 향했다. 늘 걱정하던 몸무게는 잠시 잊은 듯 가볍게 달려갔다.

그런데 몇 분 후에 국경 경찰이 순찰을 돌다가 내 옆에 놓인 요코의 핸드백을 수상히 여겼다. 내가 사정을 설명해도 경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안에 돈이 얼마 들어 있나요?”


경찰이 물었다. 

묘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그런 건 알 턱이 없지요.”


나로서는 그것이 최선의 답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경찰은 호루라기 같은 물건을 입으로 불었고, 그 소리를 들은 또 다른 경찰이 달려왔다. 아내가 핸드백에 얼마나 돈을 넣고 다니는지 모르는 사람은 남편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인 듯했다.

서양에서는 ‘레이디 퍼스트’라는 둥 여자를 위해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아내를 꼬치꼬치 감시하는 것이 부부 사이인 걸까? 고개를 갸웃하는 내게 경찰들은 수갑까지 채울 기세였다. 변명은 고사하고 제대로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요코가 태연하게 돌아왔다. 비스킷 봉지 같은 것을 손에 들고서.

“알겠습니다”나 “죄송합니다” 같은 말은 한마디 하지 않은 채 경찰들은 사라졌다. 무례한 건지, 인종차별인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 혼자 발끈한 채 열차는 국경의 역을 뒤로했다.

 

 


 


_<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출간 전 연재 4회 계속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

반생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첫 만남에서부터 소박하고도 별난 일상,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의 사랑스러운 모습, 그리고 긴 이별을 준비하기까지의 삶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편지.

힘들고 숨 가쁜 인생을 동행하는 사람, 떠올리면 미안하고 고마운 누군가가 당신 곁에도 있습니까?

 

저자_ 시로야마 사부로

일본 경제소설의 아버지. 해박한 지식과 통찰로 기업과 조직의 생리, 직장인들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경제소설을 잇달아 발표하며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이전 소설과는 전혀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 표정, 사소한 행동까지 함께 살아온 날들을 꼼꼼하게 써내려가며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환기시켰다.

그러던 중 2007년에 세상을 떠났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 원고를 그의 서재에서 발견한 둘째 딸 이노우에 기코가 편집부에 전달해 비로소 《무심코 당신을 부르다가》가 완성됐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어린 고백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렸고, 일본 TBS TV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화제를 일으켰다.
대표작으로 《소설일본은행(小説日本銀行)》《황금의 나날(黄金の日日)》《관료들의 여름(官僚たちの夏)》《임원실 오후 3시(役員室午後三時)》《가격파괴(価格破壊)》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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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2017-08-03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게 바로,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요? 서로가 무엇을 하든 ‘믿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