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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의 바람 쓸쓸한 서재, 풍소헌(風蕭軒) 소개

'사랑과 지식에 대한 갈구는 나를 천국 바로 앞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나를 이땅으로 다시 내려놓았다.' - <버트란트 러셀> 사랑과 지식이 아무리 화려한 역사와 업적을 자랑해도 결국 인간세상을 지켜온 것은, 말없는 연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바람구두

풍소헌(風蕭軒)이란....
-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자객 형가편에 등장하는 시입니다. 훗날 낙빈왕이 "역수에서 송별하다易水送別"란 시를 지어 이때를 회상하는데 널리 알려져 있기로는 형가의 "역수가(易水歌)" 가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풍소헌이란 옥호는 이 시에서 따온 것이죠.

風簫簫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네

형가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이리뷰 카테고리 소개
 
 
 서평/隱流書閣  
- 서평을 담고 있는 은유서각(隱流書閣)의 "隱流" 보이지 않게 속으로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물이 보이지 않게 흐르는 경우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 경우겠지요. 하나는 물이 깊어 그 흐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한 경우는 한겨울 얼음장 밑으로 흘러가는 걸 겁니다. 그렇게 책을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리뷰/臥遊蝸廬  
- 리뷰 와유와려(臥遊蝸廬)는 알라딘에서 판매하고 있는 DVD처럼 영상 매체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臥遊란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인데 DVD볼 때 제 자세가 거의 눕는 자세라서요. 蝸廬란 것은 달팽이집이란 뜻으로 댓구를 맞춰줘봤습니다.

 음반/汨蘭蘇理 
- 음반 골난소리汨蘭蘇理는 알라딘에서 판매하고 있는 CD와 같은 음반매체에 대한 리뷰를 다루고 있습니다. 汨蘭蘇理 자체에 무슨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고, 과거 LP시절엔 음반에 골이 파였기에 일종의 말장난으로 만든 말입니다. 빠질골汨난초난蘭깨어날소蘇다스릴리理입니다.
  
  

마이페이퍼 카테고리 소개
 
 
 대화/萬民共同  
- 대화 만민공동(萬民共同)은 이웃하고 함께 나누는 일종의 대화방이자, 제 나름대로 서재 자체에 대한 글쓰기를 하기 위한 알림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만민공동으로 사용하자는 뜻으로 이름을 저렇게 지어봤습니다.

 낙서/日暮途遠  
- 낙서 일모도원(日暮途遠 )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한자성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인물 오자서와 관련된 일화이지요. 낙서 코너에 쓰는 글들은 대개 그저 흘러나오는 대로 쓰는 글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늘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되더군요. 그래서 저렇게 지어보았습니다.

 편지/甁中之含  
- 편지 병중지함(甁中之含)은 제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인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 그간 제가 올렸던 "유리병편지"란 게시판에서 퍼오는 글들입니다. 한자어 자체도 그와 흡사한 뜻을 지닌 것으로 골라봤습니다.

 문학/茫茫大海  
- 책하면 바로 문학 작품들을 연상하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세계가 마치 넓디넓은 망망대해(茫茫大海) 같았기에 그렇게 표현해 봤습니다.

 미술/墨痕暗香  
- 미술 묵흔암향(墨痕暗香)은 먹의 흔적, 어두운 향기란 뜻입니다. 과거엔 먹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그로부터 연상해서 제 마음대로 정해본 이름입니다. 제가 관심있어 하는 미술작품들과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음악/哀而不悲  
- 음악 애이불비(哀而不悲)는 "즐거우면서도 방탕하지 않고 애련하면서도 슬프지 아니하다 樂而不流 哀而不悲."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좋은 음악에 대한 정의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카테고리를 정해보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사진/境界紙鏡  
- 사진 경계지경(境界紙鏡)이란 말은 사물의 경계에 서 있는 종이거울이란 뜻입니다. 종이거울이란 말은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책 제목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사진이란 이렇듯 사물, 사람, 사건의 경계에 서 있는 거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카테고리는 주로 제가 촬영한 사진들과 사진작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꾸미고 있습니다.

 출판/白面書生  
- 출판 백면서생(白面書生)은 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명색이 서재인데,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없다면 아쉬울 것 같았습니다. 아마 알라딘 서재지인들 중 상당수는 이와 관련된 경험 혹은 경력이 있는 분들 같습니다. 출판의 길은 어렵고도 힘든 길이지요. 백면서생이란 말은 "글만 읽어 얼굴이 창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글만 읽어 세상 물정에 어둡고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대신 세상의 때가 아직 묻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하겠지요.

 사람/一葉片舟  
- 저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다루는 홈페이지를 하고 있지요. 일엽편주(一葉片舟)는 "한조각의 작은 배"란 뜻입니다. 인생의 바다에 한 개인은 그저 나뭇잎 같은 작은 존재이겠지요. 저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물건/視而不見
-  물건 시이불견(視而不見) 카테고리는 말 그대로 물건에 대한 카테고리입니다. 우리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종종 물신의 사회라고 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하고 있는 삶의 경쟁이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기 위한 경쟁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물건에 대한 글을 쓰면서 "보기는 하되 보이지 않음. 시이불시(視而不視)"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말자는 경계의 의미로 지은 카테고리명입니다.

 여행/風行旅路  
- 여행 풍행여로(風行旅路)는 지역, 여행에 대한 글과 여행지에 대한 소개를 다루고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알게 모르게 많이 떠돌아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간 떠돌면서도 어디 한 군데 그에 대한 흔적을 남겨놓지 않았더군요. 풍행여로는 말그대로 '바람이 가는 여행길'이란 뜻입니다. 그간 제가 다닌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문헌/書庫長櫃  
- 문헌 서고장궤(書庫長櫃, 책을 담아둔 곳간의 길다란 궤짝) 카테고리는 퍼온 글을 담아두는 카테고리입니다. 인터넷의 미덕은 역시 정보의 공유이겠지요. 보다 알차고 되도록 정제된 자료들을 모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창고/不用不說  
- 창고 불용부설(不用不說) 역시 파오는 카테고리입니다. 글을 쓰고 생각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묵직해지거나 괜히 감정적이 되곤 하는데 그런 저 자신을 달래고 풍소헌을 찾는 이들에게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카테고리가 하나쯤 있었으면 해서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물과 글들은 쓰일 곳이 없음으로 해서 유쾌해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쓸데없고 말할 필요 없다는 뜻을 담아 이름지어 보았습니다.

 秘庫 
- 그리고 아마 여러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카테고리일텐데 비고(秘庫), 즉 비밀창고란 카테고리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뭐 대단히 음탕한 이미지들을 모아두거나 한 곳은 아닙니다. 그저 아직 여러분들 눈에 보이기엔 너무나 설익은 내용이거나 저 자신이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것들을 모아둔 창고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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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풍소헌 소개를 마칩니다.
알라딘 서재가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마침 시간이 있어서 그간 제 서재에 글 남겨주신 분들이 어느 분들이 계신가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제게 글 남겨주신 분들은 많은데 제가 찾아가 답을 드리거나, 글을 남겨드린 분은 적었습니다.
그런 점이 늘 죄송하면서도 역시 이 게으름증을 빙자한 관계기피증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군요.

보다 즐거운 서재를 만들어서 저도 즐겁고, 이곳을 찾는 다른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서재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 모두에게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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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배경은 펜실베니아의 제철공장지대다. 2차대전 이후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던 미국 위상의 급격한 하락을 상징하듯 영화의 배경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퇴락해 보인다. 게다가 이 마을의 주민들은 러시아를 그 출신지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마을 중앙에는 커다란 러시아 정교 교회당이 들어서 있고, 마을공동체라 불리울만한 유대관계를 맺고서 살아간다. 육체노동을 하며 미국사회의 하층민으로 살아왔던 이민 1세대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민2세대들도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언어적, 문화적 충돌과 어려움이 덜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사회적 신분의 상승(이른바 입신양명)과 러시아적 정체성의 유지(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러시아 출신과 결혼하는 것을 바란다)를 희구하는 그들의 부모들에게 엿을 먹이려는 듯 그들의 삶은 공장과 선술집, 그리고 가끔씩의 사슴사냥 속에서 부유한다. 그들은 애초부터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는 미국사회에서 신분의 상승은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들 자신이 미국의 쓰레기라는 한계를 철저히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미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러운’ 징병의 대열에 합류한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약간의 두려움과 머뭇거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지만, ‘전쟁도 사슴사냥과 같은 하나의 게임일 뿐’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으며 그들은 전장으로 향한다. 그들이 거기서 본 것은 전쟁의 광기와 어떠한 도덕적 주저함이 없는 살육의 현장이었다. 게임이 지속된다면 게임의 참가자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러시안 룰렛처럼, 베트남전속에서 참전자들의 생명은 하나둘씩 스러져 가고 미쳐간다.

그 와중에 참전했던 세친구 중, 닉은 탈영을 해서 자취를 감추고, 스티븐은 반신불수가 되고, 마이클만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나중에 닉이 패망직전의 베트남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한 마이클은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가 닉을 구하려고 하지만, 닉은 러시안 룰렛판에서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만다.

감독 마이클 치미노는 이 영화를 통해 미국사회의 주변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광기어린 전쟁을 통해 파괴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전 이후 최초의 진지한 영화적 시도였던 이 작품은 미국의 주류계급이 원하는 도식적인 결말로 허무하게 끝난다. 베트남으로부터 도착한 닉의 시신을 묻고 난 후, 옛친구들은 식사를 하며 미국찬가를 조용하게 부르는 것이다. 영화 곳곳에서 베트남인을 비하하는 영화적 장치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였지만, 생명주의와 反戰이념을 기초로 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수시간동안 영화를 봤던 내게 있어, 이건 완전한 反轉이었다. 별로 권할만한 작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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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줄거리 :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 시대극으로 옮긴 작품. 한 늙은 영주가 세 아들에게 영토를 나눠주기로 결심한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그 얘기를 듣고 매우 기뻐하지만 막내는 그의 형들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70대의 구로사와가 만든 <란>은 그 스스로 자신의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말한 그런 영화이다. 여기서 구로사와는 우선 스크린 위에 장대한 비주얼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고 그 결과 표현주의적 작품에 가깝다고 할 만큼 시각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다른 한편으로 <란>은 하늘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 조건을 내려다보려는 야심찬 시도를 행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출처:서울아트시네마 홈피)

ㅇ 평 : 나에게 '세익스피어'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애틋한 감정을 지우기는 어려운데, 그 이유는 무엇이든 읽으며 공부하는 걸 좋아한 어머니였지만 당시 어려운 집안 때문에 고등학교만으로 배움의 기회를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야 형제분들 모두가 그러셨으니 그러려니 말씀하시지만 말이다.

내가 어릴 적, 책 외판원 아저씨들이 우리 동네에 참 많이도 드나들었다. 물론 우리집 앞에서도 지나치지 않고 초인종을 눌렀는데, 그 책값이 무척 비쌌다. 당신이 책을 많이 보지 못하고 자랐다는 후회 때문이었는지 어머니는 자식들이 책을, 아니 무엇이든 읽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외판원 아저씨가 내미는 카탈로그를 바라보면서 참 많이도 망설이셨을 것이다. 당신의 어린시절을 뒤돌아보면,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는 사줘야겠는데, 책값이 너무 비싸니... 당시 어렸던 나조차 어머니의 얼굴에 가득찬 망설임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쉬웠다. 그러던 중, 거듭 우리집 공략에 실패하던 한 외판원 아저씨가 머리를 쓴 것이 무조건 책을 가지고 우리집에 찾아오는 거였다. 자기가 책을 팔러 왔는데, 도저히 책들이 무거워 다시 가져가기가 어려우니까 일주일 후 자기가 여기에 다시 올 때까지 맡아달라고 했다. 그때 두고 간 것이 삼성출판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 50권짜리였는데, 지금 생각하기에도 그 빼빼 마른 아저씨가 그걸 혼자서 어떻게 날랐는지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참 고생했을 것 같은데... 암튼 일주일동안 어린 우리들은 밤새도록 책을 몇권씩 읽어댔고,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머니는 모종의 결단을 내려 일주일후 아저씨에게 책 구입의사를 밝히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어린 우리들만 그 책을 읽었던 게 아니었다. 당시 어머니도 몇권씩 빼서 같이 책을 읽곤 했는데, 지금 여렴풋이 기억나는 어머니의 모습은 '세익스피어 이야기'를 읽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세익스피어'라는 단어를 들으면 책을 읽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거 이야기가 샜다. 그것도 옆길로 많이도 샜다.

영화를 보기전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을 각색한 작품이란 말을 듣는 순간 김이 팍 샜다. 줄거리가 너무 뻔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이 영화는 세익스피어가 쓴 리어왕의 플롯을 충실히 따랐다. 결말까지 내 예상과 정확히 드러맞았다. 세 딸들이라는 소재가 세 아들들로 바뀌고, 중간중간에 일본적인 소재를 차용한 정도만 다르다고 할까? 그렇지만, 3시간여의 영화를 보면서 왜 세익스피어라는 작가가 널리 추앙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릴 적에 세익스피어를 읽었지만, 세익스피어는 6살도 안 된, 그것도 남자아이가 완전히 이해할만한 작가는 아니었다(요즘 나는 여자아이가 조숙하다는 말을 처절하게 인식하며 살고있다). 이 영화을 통해 다시 보게 된 세익스피어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세계의 비정함과 잔인함, 무모한 사랑, 그리고 탐욕과 배신, 인생의 허망함이 총체적으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극 중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의상과 건축물, 당대의 전쟁씬도 굉장한 볼거리다. 현재의 일본의상은 중국 당나라 시대 의복문화가 화석화된 것이라고 하는데, 중심부에서 변경지역으로 갈수록 종교나 문화가 도그마화 된다는 것의 실례라고는 하나 너무나 아름다웠다. 물론 입는 사람들은 고역이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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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의 산골분교를 찍은 니콜라 필리베르의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에는 천진난만한 여남은 아이들과 20여년동안 이 마을에서만 근무해 온 조르쥬 로페즈 선생이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프랑스인들의 교육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시골마을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있어 교육이란 행복한 삶을 살아나가기 위한 그야말로 기본적인 덕목을 배우는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으로부터 숫자를 세는 법, 글자를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지만, 그 외에도 함께 생활하는 법과 서로 이해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의 중반, 감독은 로페즈 선생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짧막한 인터뷰를 한다. 로페즈라는 姓이 말해주듯이 그의 아버지는 스페인에서 넘어온 이민1세대였고, 이민1세대들의 삶이 으례 그렇듯이 선생의 아버지는 공사판을 떠돌다 가난한 소작인으로 이 지방에 정착했다. 왜 선생님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로페즈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어릴 적부터 동무들과 학교놀이를 하면 자신이 선생님역을 도맡아 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고 말이다. 선생의 부모도 아들이 교사가 되는 것이 일종의 신분의 상승이라고 간주해서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단다.

로페즈는 말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 일이지만, 나는 이 일을 너무나도 사랑한다"고. 그 말마따나 다큐멘터리 내내 로페즈선생과 아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지리하게도 길게 나온다. 내가 선생님과 일상적으로 저렇게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기억을 해보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내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 로페즈 선생은 손을 씻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손을 씻어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키려 하고, 서로 싸움을 한 아이들에게도 왜 싸웠는지 왜 싸움이 나쁜지,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에 대해 지리하게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는데 따른 고민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길게 선생님과 나눈다. 이럴 때 보면 그들은 선생과 학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을 양육하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살아가는 친구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과정을 통해 꼬맹이들에게나 중학생이 되기 직전의 아이들에게나 급우들은 경쟁에서 이겨 짓밟아야하는 대상이 아닌 더불어 살아야 할 친구들로 거듭 인식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한 경쟁, 명령과 불복종에 대한 폭력이 상시화된 공간이 학교라고 생각했던 내게 프랑스의 학교는 너무나도 생경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영화의 마지막, 로페즈선생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입을 맞추고 작별인사를 한다. 아이들 하나하나와 진심어린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노선생은 마침내 눈물을 흘린다.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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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여성영화제 상영작이다.

마그레테 폰 트로타 감독 특별전 형식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중 한 작품이었는데,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책으로만 읽었던 로자 룩셈부르크의 일생을 영상으로 본다는 기대감을 안고 본 작품이었는데, 장면 장면마다 왜 이리 가슴이 불편한지 ...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단병호씨를 인터뷰하다가 그의 나이보다 팍싹 늙어보이는 외모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썼는데, 오늘 본 로자 룩셈부르크가 내게 그랬다.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생각도 많이 변화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나 자신을 합리적인 사민주의자로 규정하곤 했는데, 대학 때 읽었던 맑스를 생각해 보면 왜 이리 창피하고도 답답하냔 말이다.

암튼, 영화에는 당시 맑시즘의 교황이라고 일컬어지던 카우츠키와, 베벨, 베른슈타인, 클라라 제트킨을 볼 수 있고, 리프크네흐트의 공원연설장면도 등장한다. 당시의 사진과 비슷한 외모의 배우들을 기용하고, 당시 연설장면을 재연한 것만 봐도 감독이 당시상황의 고증에 상당히 집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변 : 내 기억으로 1968년은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긴장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로자 룩셈부르크의 책인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와 개혁 또는 혁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 글 뒤에 숨어있는 여성을 생각하며 언젠가 그녀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오 요기헤스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며, 로자의 옥중 서신을 통해 그녀가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지만 여성으로서의 감성 또한 잃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2,500통의 서한을 썼고, 이 편지들은 영화를 만드는데 최고의 자료가 되었다. 서한들은 그녀가 얼마나 감성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했으며 따뜻한 여인인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역동적이고 전투심이 넘쳤는지도 보여준다.
로자는 정말 완벽할만큼 선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인간보다 자연에게 더욱 가까운 ‘유대감’을 느꼈다. 그녀는 문학과 음악, 미술과 식물학(사실 식물학에 대해선 전문가였다), 지질학에 대해 관심이 높아 촘촘하고 깔끔한 글씨로 공책 가득 메모를 하곤했다. 그녀는 언제나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며, 무슨 일을 하든 열정을 가지고 행했다. 그녀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녀 특유의 발랄함과 인내심으로 친구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에 관해 모은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어도 될 정도였다. 그녀는 평생을 바쳐 연구해도 아깝지 않을 여성이었다. 몇몇 역사가들은 내 영화가 매우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는 역사물을 만들거나 로자의 완벽한 초상을 그리는게 목표가 아니었다. 나의 영화로 인해 로자 룩셈부르크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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