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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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파업'의 작가 안재성씨가 1930년대 조선내 사회주의자들의 자취를 뒤쫓아가며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조선내 자생적 사회주의 그룹이었던 "경성트로이카"를 이끌던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 그리고 그들의 수많은 동지들이다.

저자는 책의 첫부분 "사라진 시간을 찾아서"라는 章에서 자신이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고 있다. 1990년대초 소장파 사학자 김경일 교수에 의해 발굴되어 비로소 활자로 기술된 "이재유 연구"와 이효정 할머니(경성트로이카조직의 유일한 남한내 생존자)의 아들 박진환씨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작가인 안재성씨는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주인공들의 모습이 대단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비극적 죽음을 보고 허탈하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었지만, 이재유는 해방을 1년 앞둔 채 감옥에서 죽음을 당했고, 해방정국과 6.25를 거치며 남로당 총책이었던 김삼룡과 빨치산 총대장으로 활동했던 이현상도 남한정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또한 항상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던 순박한 이상주의자 이관술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일제의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냈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버림받고서 설자리를 잃고 죽어갔다. 박헌영 또한 미제의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북한에서 총살당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수많은 혁명적 좌익세력이 생각났다. 인류의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페인의 혁명적 좌익을 탄압하고 심지어 사살했던 스페인의 스탈린주의자들과, 자생적이고 현장중심적인 사회주의자들인 경성트로이카를 견제했던 국제파의 모습이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의 삶의 숭고한 의미를 더욱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따라서 이후에도 일제하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와 그들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이러한 책들이 더욱 많이 나와야 한다.

2004년 6월의 어느 초여름밤 경성트로이카 조직의 일원이었던 남한내 유일한 생존자 이효정 할머니가 숨을 거뒀다. 그의 삶은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모진 핍박만 받았던 한많은 생이었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세상을 등진 것일까? 세월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그건 결단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딱딱한 역사서같은 구성을 피해 소설적 장치를 차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씌여졌으며, 인물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과정을 시대순서에 따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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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정문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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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지방으로 출장갈 때 차안에서 읽으려고 한겨레21을 샀다. 그 한켠에 이 책에 대한 한쪽짜리 서평이 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와 영풍문고에 서서 읽어봤다. 한번 책장을 넘기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십수년간 전선을 취재한 기자가 자신의 기자觀과 그동안의 취재기록을 엮어 펴낸 책이다. 저자는 자신을 종군기자라 칭하지 않고 전선기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종군기자란 일제가 만들어낸 軍言일체의 치욕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군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국군의 일방적인 전과를 '실황중계'하는 것은 기자의 역할이 아니다. 진정한 전선기자의 역할은 전세계 민중을 대리하여 정치의 연장으로서 전쟁을 취재하며 그 진실을 파헤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는 "전시언론통제는 전선기자들을 전선에 오르도록 만드는 에너지다. 그곳에 전시언론통제가 있었기 때문에 전선기자들은 사력을 다해 전선에 올랐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베트남전쟁을 전선기자의 황금기라고 말한다. 전선의 참혹함과 전쟁 뒤에 가려진 권력의 추악함을 파헤쳐 냄으로써 전쟁의 종식을 앞당기는 등 인류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권언유착은 심각해지고, 우리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을 "종군기자"들을 통해 마치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듯 즐기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저자는 참 많은 곳을 다녔다. 16년간 그는 버마 소수민족과 학생반군들의 투쟁, 베트남전 당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벌어진 미국의 더러운 전쟁, 파키스탄과 인도사이의 카슈미르분쟁,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아체와 동티모르의 독립투쟁, 예멘 내전, 아프가니스탄 내전,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스라엘군의 학살, 미국과 나토에 의해 날조된 코소보내전을 취재했다. 그가 전하는 전쟁의 모습은 참혹하며 전선에 들어선 인간이 느끼는 공포감까지도 잘 묘사했다. 그리고 "정치가 없는 전쟁기사는 자위행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그인만큼 전쟁의 참상뿐만 아니라 배후에 도사린 정치지형을 해박하게 정리한 것도 훌륭하다.

책의 내용중에 이스라엘군의 조준사격에 팔레스타인 어린아이들과 기자들이 차례로 고꾸라지는 상황에서 학살의 현장을 눈으로라도 보아 기억하기 위해 꿋꿋이 전선을 지켰던 기자들의 모습과, 동티모르의 위급한 상황에서 전선을 떠났다는 자책감으로 저자가 딜리의 바닷가에서 혼자 쪼그려앉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나도 괜히 콧물을 훌쩍였다. 진정 양심적인 저널리스트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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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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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년대 중남미문학의 황금기 이후 다소 침체되었던 중남미문학을 부흥시킨 소설가가 루이스 세풀베다란다. 형이 읽고서 추천해 주길래 퇴근하자마자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그의 문체는 이전의 중남미 소설의 특징인 마술적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쉽고 평이하며 남미의 지역적 색채를 잘 담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갖가지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유기적으로 잘 결합되어 소설의 마지막을 향하여 맹렬히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뜻 제목을 보고 "이거 또 번역한 놈이 책 팔아먹으려고 제목부터 고쳤군"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원제도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다. 그리고 책장을 몇장 넘기다 보니 왜 이런 제목을 붙일 수 밖에 없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연애소설", 그리고 그것을 "읽는 노인"이라... 대단한 은유다.

칠레의 군부쿠데타에 반대해 반체제운동을 벌이다 투옥당한 경험이 있고, 이후 망명길에 올라 환경운동, 민주화운동 등에 투신했던 그의 경력이 말해주듯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친자연적인 원주민문화를 말살하며 전지구를 약탈하고 있는 자본주의와 1세계중심의 세계체제를 비판하며 그는 무엇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길인지 되묻는다. 마르케스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를 간단하게 정리했다. "사람들을 감동시킴으로써 행동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세풀베다는 훌륭한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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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바람구두의 바람 쓸쓸한 서재, 풍소헌(風蕭軒) 소개

바람구두의 바람 쓸쓸한 서재, 풍소헌(風蕭軒) 소개

'사랑과 지식에 대한 갈구는 나를 천국 바로 앞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이 나를 이땅으로 다시 내려놓았다.' - <버트란트 러셀> 사랑과 지식이 아무리 화려한 역사와 업적을 자랑해도 결국 인간세상을 지켜온 것은, 말없는 연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바람구두

풍소헌(風蕭軒)이란....
- 사마천의 사기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자객 형가편에 등장하는 시입니다. 훗날 낙빈왕이 "역수에서 송별하다易水送別"란 시를 지어 이때를 회상하는데 널리 알려져 있기로는 형가의 "역수가(易水歌)" 가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풍소헌이란 옥호는 이 시에서 따온 것이죠.

風簫簫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네

형가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마이리뷰 카테고리 소개
 
 
 서평/隱流書閣  
- 서평을 담고 있는 은유서각(隱流書閣)의 "隱流" 보이지 않게 속으로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물이 보이지 않게 흐르는 경우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 경우겠지요. 하나는 물이 깊어 그 흐름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한 경우는 한겨울 얼음장 밑으로 흘러가는 걸 겁니다. 그렇게 책을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리뷰/臥遊蝸廬  
- 리뷰 와유와려(臥遊蝸廬)는 알라딘에서 판매하고 있는 DVD처럼 영상 매체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臥遊란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인데 DVD볼 때 제 자세가 거의 눕는 자세라서요. 蝸廬란 것은 달팽이집이란 뜻으로 댓구를 맞춰줘봤습니다.

 음반/汨蘭蘇理 
- 음반 골난소리汨蘭蘇理는 알라딘에서 판매하고 있는 CD와 같은 음반매체에 대한 리뷰를 다루고 있습니다. 汨蘭蘇理 자체에 무슨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고, 과거 LP시절엔 음반에 골이 파였기에 일종의 말장난으로 만든 말입니다. 빠질골汨난초난蘭깨어날소蘇다스릴리理입니다.
  
  

마이페이퍼 카테고리 소개
 
 
 대화/萬民共同  
- 대화 만민공동(萬民共同)은 이웃하고 함께 나누는 일종의 대화방이자, 제 나름대로 서재 자체에 대한 글쓰기를 하기 위한 알림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만민공동으로 사용하자는 뜻으로 이름을 저렇게 지어봤습니다.

 낙서/日暮途遠  
- 낙서 일모도원(日暮途遠 )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한자성어에서 나온 말입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인물 오자서와 관련된 일화이지요. 낙서 코너에 쓰는 글들은 대개 그저 흘러나오는 대로 쓰는 글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늘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 되더군요. 그래서 저렇게 지어보았습니다.

 편지/甁中之含  
- 편지 병중지함(甁中之含)은 제가 운영하는 홈페이지인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에 그간 제가 올렸던 "유리병편지"란 게시판에서 퍼오는 글들입니다. 한자어 자체도 그와 흡사한 뜻을 지닌 것으로 골라봤습니다.

 문학/茫茫大海  
- 책하면 바로 문학 작품들을 연상하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세계가 마치 넓디넓은 망망대해(茫茫大海) 같았기에 그렇게 표현해 봤습니다.

 미술/墨痕暗香  
- 미술 묵흔암향(墨痕暗香)은 먹의 흔적, 어두운 향기란 뜻입니다. 과거엔 먹으로 그림을 그렸기에 그로부터 연상해서 제 마음대로 정해본 이름입니다. 제가 관심있어 하는 미술작품들과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음악/哀而不悲  
- 음악 애이불비(哀而不悲)는 "즐거우면서도 방탕하지 않고 애련하면서도 슬프지 아니하다 樂而不流 哀而不悲."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좋은 음악에 대한 정의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카테고리를 정해보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사진/境界紙鏡  
- 사진 경계지경(境界紙鏡)이란 말은 사물의 경계에 서 있는 종이거울이란 뜻입니다. 종이거울이란 말은 사진작가 최민식 선생의 책 제목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사진이란 이렇듯 사물, 사람, 사건의 경계에 서 있는 거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카테고리는 주로 제가 촬영한 사진들과 사진작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꾸미고 있습니다.

 출판/白面書生  
- 출판 백면서생(白面書生)은 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명색이 서재인데,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없다면 아쉬울 것 같았습니다. 아마 알라딘 서재지인들 중 상당수는 이와 관련된 경험 혹은 경력이 있는 분들 같습니다. 출판의 길은 어렵고도 힘든 길이지요. 백면서생이란 말은 "글만 읽어 얼굴이 창백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글만 읽어 세상 물정에 어둡고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대신 세상의 때가 아직 묻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하겠지요.

 사람/一葉片舟  
- 저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다루는 홈페이지를 하고 있지요. 일엽편주(一葉片舟)는 "한조각의 작은 배"란 뜻입니다. 인생의 바다에 한 개인은 그저 나뭇잎 같은 작은 존재이겠지요. 저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물건/視而不見
-  물건 시이불견(視而不見) 카테고리는 말 그대로 물건에 대한 카테고리입니다. 우리는 현대자본주의 사회를 종종 물신의 사회라고 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가 하고 있는 삶의 경쟁이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소비하기 위한 경쟁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물건에 대한 글을 쓰면서 "보기는 하되 보이지 않음. 시이불시(視而不視)"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말자는 경계의 의미로 지은 카테고리명입니다.

 여행/風行旅路  
- 여행 풍행여로(風行旅路)는 지역, 여행에 대한 글과 여행지에 대한 소개를 다루고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알게 모르게 많이 떠돌아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간 떠돌면서도 어디 한 군데 그에 대한 흔적을 남겨놓지 않았더군요. 풍행여로는 말그대로 '바람이 가는 여행길'이란 뜻입니다. 그간 제가 다닌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두려고 합니다.

 문헌/書庫長櫃  
- 문헌 서고장궤(書庫長櫃, 책을 담아둔 곳간의 길다란 궤짝) 카테고리는 퍼온 글을 담아두는 카테고리입니다. 인터넷의 미덕은 역시 정보의 공유이겠지요. 보다 알차고 되도록 정제된 자료들을 모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창고/不用不說  
- 창고 불용부설(不用不說) 역시 파오는 카테고리입니다. 글을 쓰고 생각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묵직해지거나 괜히 감정적이 되곤 하는데 그런 저 자신을 달래고 풍소헌을 찾는 이들에게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카테고리가 하나쯤 있었으면 해서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물과 글들은 쓰일 곳이 없음으로 해서 유쾌해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쓸데없고 말할 필요 없다는 뜻을 담아 이름지어 보았습니다.

 秘庫 
- 그리고 아마 여러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카테고리일텐데 비고(秘庫), 즉 비밀창고란 카테고리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뭐 대단히 음탕한 이미지들을 모아두거나 한 곳은 아닙니다. 그저 아직 여러분들 눈에 보이기엔 너무나 설익은 내용이거나 저 자신이 두고두고 곱씹을 만한 것들을 모아둔 창고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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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풍소헌 소개를 마칩니다.
알라딘 서재가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마침 시간이 있어서 그간 제 서재에 글 남겨주신 분들이 어느 분들이 계신가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제게 글 남겨주신 분들은 많은데 제가 찾아가 답을 드리거나, 글을 남겨드린 분은 적었습니다.
그런 점이 늘 죄송하면서도 역시 이 게으름증을 빙자한 관계기피증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군요.

보다 즐거운 서재를 만들어서 저도 즐겁고, 이곳을 찾는 다른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서재였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드립니다. 모두에게 평화와 행복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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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배경은 펜실베니아의 제철공장지대다. 2차대전 이후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던 미국 위상의 급격한 하락을 상징하듯 영화의 배경은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퇴락해 보인다. 게다가 이 마을의 주민들은 러시아를 그 출신지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마을 중앙에는 커다란 러시아 정교 교회당이 들어서 있고, 마을공동체라 불리울만한 유대관계를 맺고서 살아간다. 육체노동을 하며 미국사회의 하층민으로 살아왔던 이민 1세대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민2세대들도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들에게는 언어적, 문화적 충돌과 어려움이 덜하다는 정도일 것이다. 사회적 신분의 상승(이른바 입신양명)과 러시아적 정체성의 유지(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러시아 출신과 결혼하는 것을 바란다)를 희구하는 그들의 부모들에게 엿을 먹이려는 듯 그들의 삶은 공장과 선술집, 그리고 가끔씩의 사슴사냥 속에서 부유한다. 그들은 애초부터 앵글로 색슨이 지배하는 미국사회에서 신분의 상승은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들 자신이 미국의 쓰레기라는 한계를 철저히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미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러운’ 징병의 대열에 합류한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약간의 두려움과 머뭇거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지만, ‘전쟁도 사슴사냥과 같은 하나의 게임일 뿐’이라는 말로 위안을 삼으며 그들은 전장으로 향한다. 그들이 거기서 본 것은 전쟁의 광기와 어떠한 도덕적 주저함이 없는 살육의 현장이었다. 게임이 지속된다면 게임의 참가자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는 러시안 룰렛처럼, 베트남전속에서 참전자들의 생명은 하나둘씩 스러져 가고 미쳐간다.

그 와중에 참전했던 세친구 중, 닉은 탈영을 해서 자취를 감추고, 스티븐은 반신불수가 되고, 마이클만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나중에 닉이 패망직전의 베트남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한 마이클은 다시 베트남으로 들어가 닉을 구하려고 하지만, 닉은 러시안 룰렛판에서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만다.

감독 마이클 치미노는 이 영화를 통해 미국사회의 주변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광기어린 전쟁을 통해 파괴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전 이후 최초의 진지한 영화적 시도였던 이 작품은 미국의 주류계급이 원하는 도식적인 결말로 허무하게 끝난다. 베트남으로부터 도착한 닉의 시신을 묻고 난 후, 옛친구들은 식사를 하며 미국찬가를 조용하게 부르는 것이다. 영화 곳곳에서 베트남인을 비하하는 영화적 장치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였지만, 생명주의와 反戰이념을 기초로 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수시간동안 영화를 봤던 내게 있어, 이건 완전한 反轉이었다. 별로 권할만한 작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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