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자신의 좁은 시선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으로 세상과 자신을 보는 연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유명한 명제로 마무리되는 『논리철학논고』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은 마침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려던 노력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삶만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케임브리지의 지성계를 떠나서 오스트리아 시골 오지로 떠났던 것이다.

그래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음도 0으로는 나눠지지 않겠지. 한 마음이 애틋해도 상대가 0이면 역시 0일 수 밖에 없으니.
아! 이건 곱셈 영역일까? 어떤 수라도 0으로 곱하면 0이 되어버리니.
마음이란게 참... 아니, 0이란게...

어떤 수를 0으로 나눠도 그 값이 무한대가 되는 경우는 없다. 나눗셈은 곱셈의 역逆이라고 정의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수를 0으로 나누고 그다음 0을 곱하면 처음 수를 다시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한대에 0을 곱하면 0이 되지 다른 수가 되지는 않는다. 0을 곱해서 0 이외의 값을 얻을 수 있는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수를 0으로 나눈 결과는 글자 그대로 ‘무정의無定義’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 하고픈 말, 늘...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인사이드 아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영화를 봐야겠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그려진 더할 나위 없이 잔인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보편적 ‘비극’은 뜻밖의 위로도 선사한다. 인생은 미래의 어딘가에서 반드시 나를 기다릴 안온한 품을 향해 무릎이 깨져도 달려가는 것이다. 또는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 누군가를 건강한 모습으로 기다리는 일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그렇게 건널목에 아직 다다르지 않은 젊은이와 그곳을 지나온 더 이상 젊지 않은 이들을 격려한다. 분명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같은 영화를 보는 일은 삶을 연장하는 편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