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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그녀들이 - 임경선 연애소설
임경선 지음 / 학고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캣우먼 임경선은 묘하다. 이충걸 편집장이 소설을 냈을 때도 그랬지만, 뭔가 소설을 쓰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쓴다는 소설'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신뢰는 제한적이다. 다행이 연애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집' 이다. 단편소설이라고 하기엔 스케치에 가까운 20-30대 여성들의 연애장면들인데, 이게 말이다. 정말 '캣우먼 식 설정' 이다. 어디까지 저자가 묻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제법 남자를 다뤄보지 않았거나 풋풋한 '연애 낭만' 이 있는 여성독자라면 (나는 정말 이 나이의 여성독자들이 그리 풋풋할거라고 생각 안 했는데, 달린 리뷰를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 피하시기를 권장한다. 나는 보통 처자이므로 이 소설에 그런 '순수한 사랑은 어디있나요? ' 같은 아쉬움 전혀 느끼지 않았으며, 재밌게 잘 읽었다. 보통 말랑한 여성 필자들이 동세대 여성 독자를 타겟으로 할 때 순수문학과 로맨스 소설 사이의 애매한 경계 타기를 하기 마련인데, 캣우먼은 그 오랜 관록 때문인지.. 양쪽 다를 그리 신경쓰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표지에도 그걸 의식한 듯 '임경선 연애소설' 이라는 표현이 박혀있다. 마치 연애에세이를 보는 듯한데, 몇몇 작품은 단편소설의 여운 쯤 되시겠다.
공감 문장 몇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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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늙은 아저씨들이 젊은 여자 앞에서 지갑을 여는지 이해가 됐다. 세상 물정 다 아는 아저씨들이 어린 여자애들의 여우 같은 행동에 넘어가 선물을 사주는 건 아니다. 갖고 싶은 물건을 이리저리 만져보다 형편이 안 돼 못 사서 시무룩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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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짠한 모습 잘 연출하는데 좀 받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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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그 방에서 견딜 수 없어 현주는 책 속으로 들어갔다. 책 속에 존재하는 남자들은 현실의 남자와 달랐다. 그들은 나쁜 놈일수록 더 매력적이었고 결코 위험하지 않았다. 현주의 외모를 평가하지도 현주를 배신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책 속에서 이십대를 보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옳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덜컥 광고대행사에 합격했다. 꽃처럼 나비처럼 청춘을 즐기던 애들은 여전히 취업 전선에서 허덕이는데. 스물다섯 살이 된 지금 현주는 제법 시크한 도시 여자로 재평가되고 있었고 자신도 그것을 어느 정도는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빛나는 남자들 앞에만 서면 어둡고 습한 방의 그 아이가 되살아났다. 혼자 겉돌고 위축돼 있던, 귀염성 없는 아이 말이다. 그럴 때마다 현주는 풀이 죽었다. 입력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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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비슷한 문장을 쓴 적이 있었는데, 여기 '그 아이'에 공감하는 분들 꽤 있으리라. 참, 이 책 시크한 도시 여성들의 남자 만나기고 헤어지기 다양버전 매뉴얼과 가이드 정도의 부재가 어울린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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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나는 고독을 잘 다루는 편이었다. 맘에도 없는 남자를 만나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진심을 털어놓지 않는 여자친구들을 만나 남을 헐뜯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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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도시감성 아닌가.. 이런 '설정' 덕분에 나는 재밌게 읽었는데, 아마 설정 자체가 나와 동떨어졌다면 동감하기 어려웠겠지. 특히 이 동감이 어디서 극대화 되냐면, 9개의 소설 중 마지막 '해후'. 읽고 한번 더 읽었다. 짧은 소설에 반전이랄게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 그렇게 서로를 질투하고 부러워했고 사랑했던 '그녀들이' 떠올랐고, 출판사에서 일했던 '어떤 날' 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손미나, 임경선, 차인표의 책이 한국소설 상위권에 있다. 전통적인 문단 소설에 대한 의미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