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 디거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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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맞아 일본 미스터리계 빅4 작가들의 신작이 쏟아져 나오고, 여러 팬들이 헐렁한 지갑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요즘, 빅4는 아니지만 저얼대 놓치기 아까운 책이 나왔다.

이미 '13계단'으로 작년 국내 추리문학 시장을 강타(정말?)했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그레이브 디거'다. 큰 얼개는 '소악당'인 주인공 야가미가 새로운 인생을 위해 골수이식이라는 선행을 하려 하지만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여기저기서 쫓겨다닌다는 하룻밤 이야기다.

이 소설의 큰 세가지 축을 이루는 1) 정체불명의 집단과 경찰로부터의 야가미 도주현장, 2) 경찰의 수사와 추리현장, 3) 살인마 '그레이브 디거'의 범행현장 등이 교차되면서 속도감 있게 펼쳐지며, 특히 야가미는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고 헤엄치고 택시를 타고 전차를 타고 고공레일을 서커스하듯 건너고 하면서 정말이지 스릴있게 요리조리 도망친다. 오로지 병원에 도착해 '선행'을 하기 위해.

작품에 등장하는 도주 경로를 작가가 꼼꼼히 취재해 현실감있게 반영했다 하니, 도쿄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지도를 펴 놓고 경로를 따라가보라는 추천인의 코멘트도 있었다)

여기에 일본 경시청의 감찰계와 보안계와 수사계 등 각 경찰들의 특징과 인간적인 캐릭터를 잘 살린 수사 과정도 돋보였다. 작가가 창작한 영국 '그레이브 디거' 전설과 이를 현실에 응용한 범행과 그 이유도 매우 흥미롭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미 13계단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냈던 다카노 가즈아키는 이 스피디한 범죄소설로 보이는 책에서도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주제를 야가미의 행동과 경찰들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낸다. 그레이브 디거'의 범행 이유와 추악한 정치인의 비리를 알게 된 후 경찰의 심경은 거대한 조직이나 권력, 제도 앞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없다는 무력감이다.

진중한 사회적 문제제기를 던지면서도 '13계단'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느낀 건, 속도감도 있지만 주인공 야가미의 낙천성과 유머러스한 면일 것이다. 진짜 '악당'같이 생긴 야가미에게 골수이식 담당 여의사는 "양심의 갈등이 있기 때문에 무서운 얼굴이 되는 거에요, 가책을 느끼지 않는 진짜 악당은 평범하게 생겼답니다" 같은 말을 한다. 왠지 훈훈하지 않은가.

책 말미 해설 부분에서 "이 책을 보다가 중간에 덮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얼굴을 보고 싶네요"라든가 "정말 '환불 보장'의 걸작입니다"라고 하는 에도가와란포상 어느 심사위원의 호들갑스러운 평에 기꺼이 동참하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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