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30여 년 전에 독일에서 출간된 이후 12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이 책은 국내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페미니즘 서적에 속한다. 저자는 독일 사회 내 다양한 여성들의 사연을 수집하였고 그들의 구술을 있는 그대로 엮어 생생함을 더했다.
각각의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다양하지만 동시에 놀라울 정도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낙태, 주부 우울증, 이혼, 불감증, 가정폭력 등 개개의 사연들은 가슴이 저리지만, 나이의 많고 적음, 정규직과 비정규직, 백인과 흑인, 대졸자와 고졸자,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동서고금의 모든 여성들이 오로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받고 있는 고통들이 지독하리만치 닮았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다.


출퇴근길의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번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페니스에 집착했어', '오로지 내 클리토리스가 나의 진실' 등의 자극적인(!) 소제목들을 누가 볼세라 민망하여 그랬다면, 나중에는 모욕당하고, 얻어맞고, 억압받는 여성들의 면면을 접하고는 잠시 울분을 삭히고자 책을 덮었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결혼한 힐데가르트는 성공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경험이 있는 레나테는 결혼 후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남편 때문에 고민한다. 알렉산드라는 소위 '암묵적 운동권 지침'에 의해 억지로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고, 앙케는 강제로 밀어붙이는 남자친구 때문에 불감증에 시달린다.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성 역할과 규범에 의해 그녀들은 아버지, 남자 선배, 남편으로 이어지는 일평생의 고난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고통을 겪으면서 그녀들은 작은 시도를 감행한다. 대학 입학 준비를 하고, 여성들끼리의 모임을 주선하며, '오늘은 따로 자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페미니즘 전사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여성해방의 당위를 부르짖고자 함도 아닌, 억압에 대항하는 살아있는 외침이다.


1970년대의 사례들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미 옛날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몇 년 전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마리 트랭티냥'이 남자친구에게 '맞아' 죽었다. 여성들에게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의 프랑스에서만 한 달에 6명이 남편에게 맞아 죽는다. 하물며 가정폭력을 쉬쉬하고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오죽이나 더 심각할까. 개별의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이 이러할진대, 전 여성에 대한 온갖 자질구레한 압박과 거대한 구조 및 사회적 통념의 외피를 쓰고 가해지는 억압의 양상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고통스럽고 부끄러울지라도 남녀를 불문하고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여성은 자신을 돌아보고 당당한 저항과 여성끼리의 연대를 굳건히 하기 위함이고, 남성은 이 모든 지배와 억압을 행하는 주체가 바로 자신이라는 점을 통렬히 직시해야 하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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