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얼굴
라티파 지음, 최은희 옮김 / 이레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1996년, 탈레반 군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장악했다. 탈레반 치하에서는 여성에 대한 교육이 금지되었고 노래가 금지되었고 TV가 금지되었다. 여자대학은 폐쇄되었고 의회는 물론 모든 직장에서 여성들이 추방당했다. 여성들은 눈 부분만 그물망으로 되어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덮는 '부르카'를 입어야만 했고, 남자 가족과 동행이 아니면 집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여성들의 운전이 금지 당했고 창 밖을 내다보는 것조차 처벌받았다. 매니큐어를 칠했다는 이유로 손가락이 잘리고, 길에서 이유 없는 채찍세례를 받기도 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겁탈 당했고, 사소한 이유 때문에 공개처형 되었고, 존재 자체가 부정되었다.


끔찍하고 잔혹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처절한 여성 수난사가 기자가 되길 꿈꾸던 아프가니스탄 중산층 가정의 16세 소녀 라티파에 의해 담담하게 서술된다.
극한 상황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살아가던 라티파는, 자신은 물론 온 가족의 공개처형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 학교를 조직함으로써 탈레반에 저항한다. 이후 프랑스 언론사의 도움을 받아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가기까지의 과정은 탈레반의 극단적인 신앙과 여성 억압에 맞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소녀의 감동적인 스토리다.


9.11테러, 그리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있은 지 약 일년쯤 되는 시기에 이 책은 출간되었고 미국 평단의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받았다. '탈레반의 실상을 알고 싶다면 CNN을 끄고 이 책을 읽어라', '탈레반의 야만성을 철저히 일깨워주는 책' 등의 평이었고, 이는 국내 출간 당시 일간지들의 소개와 다르지 않다. 물론 탈레반 정권의 극악무도한 억압이 실제로 있었고, 지탄받아야 마땅한 행위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현대의 '안네 프랑크'라고 칭송 받으며 프랑스로 도피한 '선택받은' 소녀 이외에 탈레반의 횡포에, 미국의 미사일에 죽어간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 어떠한 것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 없으며, 이 책이 그러한 용도로 쓰여지지 않기를 모두가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라티파의 증언은 눈물이 날 정도로 생생하고, 그녀에게 닥친 역사의 잔혹함이 읽는 이의 가슴을 친다.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정권과 종교적 억압과 사회 통념과 가부장적 권위에 의해,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 고통받고 있을 여성들에게, 라티파는 무릎꿇지 말고 저항하라고 말한다.


라티파는 '여성은 한가닥 신성한 빛'이라고 표현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여성에게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책을 '21세기를 살면서도 자기 조국에서 권리를 박탈당하고 어둠 속에 갇혀 사는 모든 여성들, 자녀와 친척들이 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판결문도 없이 공개 처형된 모든 여성들'에게 바친다고 쓰고 있다.


"인생에는 언제나 끝이 있으니 복종할 필요는 없다. 복종이 내 삶의 조건이라면 나는 노예 상태의 삶을 단호히 거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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