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의 대부분 내용이 연재된 어느 단체의 기관지를 보며 “(이 책의 내용이 연재된 코너인)<세상야사>가 제일 재미있다”고 떠들고 다녔던 장본인으로서, 연재분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는 것은 두 팔 벌려 반길 일이나 어줍잖은 평가로 책에 대한 소감을 쓴다는 것이 적이 부담스러워 한동안 골머리를 썩였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책을 꼼꼼히 읽으며 예전의 느낌을 떠올리게 되거나 새로운 감흥과 깨달음을 얻은 것도 성과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자면, ‘세상야사’란 코너는 당시 나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록Rock음악과 만화, 미스터리 소설이 취미의 전부였던 내가 대학 운동권 사회에 발을 담그면서 느낀 감정이란, 민중과 혁명을 논해야 할 청년이 쓸데없는 문화에 마음을 빼앗겨 있다는 죄책감, 나의 관심사에 대해 대부분 선배들이 모르고 있더라는 소외감, 때문에 이것들을 전적으로 사적인 생활로 치부하는 데서 오는 운동과의 괴리/이중성, ‘구식’ 인간들 사이에서 나홀로 다른 세계를 알고 있다는 쓸데없는 자만심 등등이 뒤범벅돼 단단히 꼬인 상태였던 것. 몇 년이 지나며 이런 감정이 엷어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쪽팔리다.

그래서 기관지에 이런 글이 실린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SF작가인 필립 딕과 어슐러 르귄이 반전작가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았을 땐 어찌나 흡족했는지. 이 글들에 대해 주변인들과 이야기하면서 의외로 많은 활동가들이 다양한 문화적 취미와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빼앗긴 자들’과 ‘어둠의 왼손’에 등장하는 배경 행성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어떤 면에서 비슷한지, 혹은 다른지에 대해,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쉰Rage Agains The Mashine이 거대 기업을 끼고 음반을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토론도 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이 다양한 음악이나 미술, 게임을 다루고 있다고 알려진 때문에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좋아하던데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겠다”는 말도 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꼭 그렇진 않다. 체게바라가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지고 혁명 운동이나 반전, 저항 정신이 하나의 트렌드인 양 취급받는 요즘엔 존 레논의 급진적 가사나 피카소의 공산당 활동이 매체를 통해 가끔 알려지기도 했지만, 저자와 이야기하듯 차분한 설명을 접하는 건 오히려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에게 더 신선한 시각과 상상력을 제공해 줄 법 하다.

조금 반칙이지만 저자의 머리말을 빌려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1부 ‘만국의 로봇이여 단결하라’에는 게임, SF, 해킹에 감춰진 정치적인 이야기들, 2부 ‘파시스트가 되느니 차라리 돼지가 되겠다’에서는 조지 오웰이나 피카소, 존 레논, 바그너 등 잘 알려진 예술가들의 정치적인 활동이나 사연들, 3부 ‘힘내라 바퀴벌레’에는 한국과 남미의 역사에서 알려진 사람들과 사건 및 노래들, 4부 ‘인터넷 광장’에서는 인터넷과 정보통신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담겨 있다.

1, 2, 3부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로선 4부 ‘인터넷 광장’이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잘 몰랐던 역사도 알게 됐고, ‘정보통신운동은 기술이 담보되는 해당 활동가들의 부문운동’이라 생각하는 것이 부끄러운 생각인 줄도 알았다. 또 막연히 ‘진보언론과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혹은 생각 없는’ 무리로만 생각했던 ‘네티즌’과 인터넷 여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힌 이 책을 쓴 문제의식을 조금 인용해 보자면,

   
  예전에 ‘혁명은 어느 순간 펑하고 터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략) 그래서 ‘그날’이 오기를, 혹은 ‘그날’은 올 것이라고 줄기차게 노래했지요. 그래서 오로지 그날을 위해 참고, 희생하고, 결의하고, 투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며 보니까 그날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략) 오히려 그날은 오랜 논쟁과 투쟁, 반란의 결과물이고, 하루하루가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그 혁명은 나날이 계속되는 일상 속에서 지속되는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그리고 이제 기나긴 혁명은 우리에게 예전보다 많이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그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으로 감추어진 것들을 꿰뚫어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바닥으로부터 전복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을 이 문제의식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상상하고, 더 많이 읽고 듣고 보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감추어진 것들을 꿰뚫어보려는’ 시도는 그럴 때 더 풍부해질 거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을 굳이 집어내자면,
게임과 SF소설을 즐기는 사람, 스필버그의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 바그너의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 조지 오웰의 소설이 반공주의를 담고 있다고 믿는 사람, 비틀즈와 존 레논을 들어본 사람, ‘미래소년 코난’을 기억하는 사람, ‘조계종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모르는 사람, 조선 독립의 발단이 33인의 <기미독립선언>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 미선이 효순이 추모 촛불집회에 참석해 본 사람,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
너무 광범위하다고? ‘강추’의 이유와 해답은 모두 책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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