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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얀 마텔 지음, 황보석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날 한 대 후려쳤다.
꼭 그런 느낌이다.
난 항상 영화든 책이든(혹은 논문이든, ㅋㅋ)
제목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그 중요한 걸!!
여기서도 self.. 책을 덮고 나서 그 단어에 대해, 이 소설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아팠다.
정체성..에 대한 실험.
작가는 소설 속에서 실험을 한다.
그러고보니.. 이 굵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주인공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불필요했기 때문이겠지. 여기서는 '나' 가 중요할 뿐이니까.
성에 관하여, 언어에 관하여,..주인공은 성의 두 분류, 언어의 몇 가지 분류에 완전히 열려서 노출되어 있다.
남자의 삶을 살기도 하고, 여자의 삶을 살다가, 다시 남자로 돌아온다. 어릴적부터 이 '나'는 성의 구분을 애매하게 생각했다.
굳이 '남자로써', 혹은 '여자로써' 구분지어 생각하는 것의 불필요함을 느꼈다고 할까.
생을 흔들어놓는 큰 사건을 기점으로,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보기엔 완벽하게 새로 부여된 삶에 적응한다. 아마 소설 속의 여러가지 설정들이 그런 것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외교관이었던 부모, 사고로 돌아가시면서 아직 어린 '나'에게 많은 돈을 남겨준 상황.
처음에는 '나'의 사고방식에 동화되기 힘들었다. 독특한 면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소설의 초반부에는 내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내아이의 어린시절'이 나오기 때문일까.
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계집아이로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다른 성으로 산다는 것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그런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롤 플레잉 게임을 한다고 가정하자.
난 캐릭터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 먼저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떤 언어를 쓰는 어느 민족인지.
생각해보면, 그 둘은 지구상의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것 같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작가에 대해서 두 가지 꼭 기억하고 넘어갈 부분.
1)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
이 책에는 다단 편집이 된 부분이 군데군데 나온다.
두 개의 다단은 각각 다른 언어로 적혀있다.
언어에 대한 실험을 시도한 흔적... 이건 소설 속의 주인공도 겪는다. 동의어반의어 사전을 하나 구입하게 되면서 이질적이라고 생각되는 두 언어에 대한 관계...
결국 두 언어는 영어든 불어든,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인간인 것처럼 'language'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언어 고유의 기능.
소설이 끝나가는 시점의 다단에서는 한쪽면은 상황을 설명하고 한쪽면은 내면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난 주인공과 거의 비슷한 공포를 느꼈다. 그런 편집 기술이 줄 수 있는 효과는 처음 느껴봤다.
2)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
의문과 가짜의문에 관한 주인공의 독창적인 생각.
..그리고 숱하게 책장을 접어놓게 만들었던
인간성에 대한 이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