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개
캐롤린 파크허스트 지음, 공경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부부'라는 건, 참 독특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남남인데, 같이 살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부부는 촌수가 없다던가..그만큼 친밀한 관계라는 건

결혼 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가까움이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은 침대를 쓰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나에 대해 잘 아는 내 배우자가

과연 날 어느만큼 알고 있을까?

또 나는, 상대방을 얼마나 많이,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을까?

 

행복해보이던 부부, 어느 날 부인 렉시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죽은 채 발견되고, 경찰은 사고라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남편은 뭔가 석연치 않다.

유일한 목격자는 애견 로렐라이 뿐이다.

그래서 혼자 남은 남편은 로렐라이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렉시에 관해 알고 싶다.. 왜 사과나무에 올라간 걸까.

 

작가는 개한테 말을 가르치려는 과정과 결과보다는

그들의 만남으로 거슬러올라가

의미있었던 대화, 사건, 싸움, 여행 등을 곱씹으면서

죽은 아내를 추억하는 한편, 죽음의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함께 살면서도, 가장 친밀하면서도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내면.

사실 난 그게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태생적으로.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대화로 풀라고?? 그건 상당히 껍데기같은 이야기다.

대화로 이해가능한 부분이 있는가하면

말로 꺼내기 조차도 힘든 내면의 세계도 있다.

(그런 게 없는 단순하고 행복한 사람도 종종 있는것 같긴 하지만.)

 

물론, 우리 부부는 대화가 아주 많고, 누가 봐도 사이가 좋다.

싸우는 일도 거의 없고, 상대방을 서로 존중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다른 인간이다.

같이 살지만, 가장 가깝지만, 그래도 각자 다른 개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말하지 않고 묻어두면, 아니 설령 입밖으로 꺼낸다 하더라도

그 속내를 내 것처럼 알 수는 없는거다.

 

같이 있어도 외로운 게 인간이다. 다만..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외롭거나 힘들 때 부비적거릴 수 있는 단 한명.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부부.

이 책에 나온 부부도 행복하고 금슬좋은 부부였다.

남편은 아내의 삶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몰랐던 아내의 내면을 깨닫고 충격에 휩싸인다.

  

책을 덮고 나서,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자문해본다.

(내가 모르는 상대방의 내면세계가 너무나 알고 싶고,

너무나 이해하고 싶고, 나 역시도 다 꺼내 펼쳐보이고 싶다.)

하지만 모른다 하더라도, 그 모름의 깊이를 알 수가 없고

나 자신조차도 내 내면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음에,

또한 나 스스로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순간이 있음에 

또다시 씁쓸해진다.

내 생각에 설득력이 없다면..

이 책을 읽을 때 306페이지를 곰곰히 씹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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