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소나무집 > 앤서니 브라운의 헨젤과 그레텔
헨젤과 그레텔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14
앤서니 브라운 그림, 그림 형제 원작, 장미란 옮김 / 비룡소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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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동화 중에 <헨젤과 그레텔>을 모르는 아이들은 별로 없을 거예요. 수많은 출판사에서 <헨젤과 그레텔>이 나왔으니까요. 여기 알라딘에서도 검색하면 열 권이 넘게 나옵니다. 거기에 또 하나 보탰다고 우습게 보진 마세요.  이 책은 그동안 나온 책들과는 다른 매력이 가득합니다. 스토리는 똑같지만 그림이 독특합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눈으로 본 <헨젤과 그레텔>이기 때문이지요. 

새엄마를 한 번 보세요. 아주 세련된 외모에 분홍색 옷을 입고는 안락 의자에 앉아 새로운 가족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칙칙한 집안 풍경과  우울해 보이는 아빠랑 도무지 어울리지 않습니다. 침실에 누워 있는 새엄마의 머리 좀 보세요. 고데기를 감고 아빠 얼굴을 외면하고 있군요. 새엄마의 화장대는 화려한 물건들로 가득하지만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네요. 집안이랑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자꾸만 보입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전신 거울과 그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빨간색 하이힐은 어떤가요? 이런 여자가 어떻게 나무꾼 아빠를 만나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산으로 아이들을 버리러 가는 장면을 좀 보세요. 아이들은 작아져서 깡똥해진 옷을 입고 불안한 얼굴이지만 새엄마는 세련된 옷차림에 담배까지 입에 물고 있습니다. 나무꾼의 아내가 아니라 해외 여행이라도 가는 것 같은 경쾌한 모습입니다. 조약돌 덕분에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맞이하는 새엄마의 얼굴은 마녀보다도 더 으시시하고 차갑기만 합니다. 뒤에 나오는 마녀가 새엄마를 많이 닮은 걸 보면 둘은 같은 인물이 틀림없어요. 가난하다고 아이들을 버릴 생각을 하다니 그건 온전한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요.

두번째 숲에 버려져 나무에 기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숲속에서>에 나오는 한 장면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먼저 찾아내네요. 마녀를 죽이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맞이하는 사람은 고개를 푹 숙인 아빠랍니다. 새엄마의 꼬임에 넘어가 아이들을 숲에 버렸지만 늘 죄책감에 시달렸을 아빠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요. 우중충하고 시커먼 기둥으로 둘러싸였던 집도 파란 하늘 아래 말끔해져 행복한 결말을 예고합니다.

반전은 맨마지막 페이지에 있습니다. 벽에 웅크리고 있는 생쥐 한 마리는 뭘까요? 화려한 전신 거울이 있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죽고 없다던 새엄마가 생쥐가 된 게 확실하군요. 이 생쥐는 돌아온 아이들에게 어떤 대접을 받을지 궁금합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새로운 해석, 현대판 <헨젤과 그레텔>의 매력에 빠져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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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소설가의 나이에 대하여

아줌마는 배제하라? 문예지 신인상 심사에서 '노티'나는 작가들은 암묵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기사를 읽고 '소설가의 나이'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기서 '시인의 나이'는 고려되지 않는데, 상업적인 계산과 밀착되어 있는 것은 소설가의 나이이지 시인의 나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관련기사는 이렇다. 

북데일리(06. 09. 13) 문예지 신인상 아줌마는 배제? 작가의 주장 파문

“문예지 신인상을 심사할 때 편집위원 혹은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아줌마를 배제하라’라는 규율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일단 무조건 아줌마 냄새가 나는 작품은 제외시킨다. 요즘은 신인상 공모 공고에 대놓고 ‘우리는 젊은 작가를 원한다’라고 주를 달아놓는 문예지도 있단다. 그럼 젊지 않은 작가는 아예 응모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한겨레출판. 2006)로 제1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조영아가 문예지 신인상을 향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시사 주간지 한겨레21(제626호)을 통해서다. 조영아는 “수준이 고만고만한 몇 작품을 뽑아놓고 일일이 전화로 나이를 확인한 다음 연락이 없다. 그중에 나이 제일 어린 누군가가 다시 연락을 받는 행운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공모를 준비할 때면 아줌마 티가 나는 작품은 일찌감치 제쳐둔다. 뛰어나게 잘 쓰지 않은 이상 뽑히기 어렵다는 지론에서다”라고 덧붙였다.

-문학상 심사에 나이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일반인들로선 의외로 받아질 대목(*하지만 얼마간은 '상식적인' 것이기도 하다. 특히 수천 만원의 상금을 내건 신인상들의 경우, 잡지나 출판사에선 '본전'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고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이'를 한 가지 변수로 고려하는 것이다. 기사에서 이 '돈' 문제가 언급되지 않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일단 조영아가 민감할 수 있는 문제를 거론한 것은 젊은 작가들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문학판의 풍토를 지적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우려는 깊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조만간 문학상 공모에 나이 제한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많고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아줌마 티가 난다는 이유로 심사 대상에서 일찌감치 제외된다는 것은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나라를 떠나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올해는 유독 신춘문예, 문학상에서 나이든 늦깎이 신인들의 출현이 돋보였다. 오래 묵혀 온 문학에의 열정과, 탄탄한 습작 과정을 통해 등단한 실력 있는 신인들에게 ‘나이’란 문제조차 되지 않는 납득할 수 없는 잣대다. 따라서 만약 신인상에 그같은 풍토가 작용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신인상에 거액의 상금만 내걸지 않으면 된다. 혹은 수상작가가 상금을 거절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독자가 작가의 나이와 무관하게 책을 좀 사주든가).

-조영아 역시 나이 마흔에 등단한 아줌마 작가다.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서른 넘어 시작한 부단한 글쓰기의 수련과정을 공개 한 바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결혼 후 전업주부로 생활하면서도 늘 ‘글밭’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두 아이를 키우며 가정 살림을 이끌어야 하는 주부에게 창작의 여유를 부릴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번갯불에 콩 볶듯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남편을 출근 시키고 고시원에 출퇴근하며 이를 악물고 글을 썼다.

-동화는 물론 단편, 중편 습작을 거듭했으나 등단은 쉽지 않았다. 각종 신춘문예와 각종 문학상에 도전했지만 최종심에만 오를 뿐 수상은 하지 못한 것. 그러나 창작을 향한 그의 투지는 쉽게 사그라질 만큼 약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잠든 때를 틈타 밤잠까지 줄여 가며 매일 10시간 이상 글을 쓰며 갈고 닦은 열성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게 됐다. 조영아의 이번 칼럼은 그의 이같은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이번 신춘문예나 문학상에서 드러났듯이 실제로 잘 쓰는 아줌마 작가들, 혹은 나이 많은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라고 반문하며 "`우리도 한 때는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아줌마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라고 일갈했다.

-그의 이번 주장은 고시원, 공공 도서관의 좁은 칸막이에 갇혀 등단에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전국의 늦깎이 습작생들에게 띄우는 격려이자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문예지 신인상을 향한 시의적절한 채찍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기사는 최근에 번역돼 나온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뒤 부슈롱을 떠올리게 했는데, 지난 200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상을 수상한 그의 소설 <짧은 뱀>(문학세계사, 2006)이 그가 76세에 쓴 처녀소설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작가 부슈롱은 프랑스의 엘리트 학교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항공 산업에서 시작해 텍사스 주의 테제베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산업분야에서 일했다고 한다. 사전 습작의 경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2004년, 76세의 나이에 발표한 첫 소설 <짧은 뱀>으로 일약 유명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작가의 나이를 불문하는 걸 보면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도 공쿠르 상처럼 상금이 얼마되지 않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려나 부슈롱의 '노익장'은 가령 미셸 투르니에처럼 40대에 데뷔하는 늦깎이 작가들조차도 젊어 보이게 만든다.

소개에 따르면 <짧은 뱀>은 "정교한 고증학적 지식과 잔혹한 상상력이 결합된 종교적 모험 이야기. 14세기 말 북극지대에서 펼쳐지는 문명과 야만의 충돌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작가 베르나르 뒤 부슈롱이 76세에 쓴 생애 첫 소설로, 200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상을 수상했다. 야만의 지옥에서 타락의 길을 걷는 북방동토(누벨툴레)의 기독교도들을 구원하기 위해 출발한 원정대. 그들이 '짧은 뱀'이라는 선박 한 척에 의지하여 빙산과 폭설로 고립된 혹한의 섬을 찾아가는 과정이 일인칭 시점의 보고서 형식으로 기술된다." 나이로 보아 '긴 여정'을 남겨놓지 않은 작가의 데뷔작이지만, '굵은 여정'의 시발점으로 기록되기를 기대한다.

 

 

 

 

한편 한국문단의 가장 대표적인 늦깎이 작가 박완서(1931- ) 선생의 단편문학전집이 전 6권으로 문학동네에서 새롭게 출간됐다. "1999년 출간된 전집을 새로운 장정으로 다시 선보이는 개정판"으로 "초판에는 빠져 있던 1998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추가하여, 총 여섯 권으로 구성했"으며 "1971년 3월부터 1998년 11월까지 발표된 박완서의 단편소설들을 총망라했으며, 각각의 작품은 발표시기 순으로 나누어 실었다"고 한다.

1970년「여성동아」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의 경력이 올해로 서른 여섯 해이다(그간의 업적으로 몇달 전 작가는 모교인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가로서 나이보다 중요한 것이 작가로서의 태도, 혹은 각오에 있다는 걸 확인시켜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러니 나이를 핑계삼는 문단/출판계 일각의 '계산'은 속좁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혹 그러한 계산이 요즘 한국문학의 독자들을 점점 말라붙게 한 것은 아닌가?). 문학의 신이시여, 그들의 소갈머리를 어찌해야 하옵니까?..

06. 09. 16-17.

 

 

 

 

P.S. 마흔도 멀지 않은 요즘 같아선 나도 소설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와 폴 오스터/크누트 함순의 <굶기의 예술>을 (다시) 읽고 정신을 차려야겠다. 그들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선 얼마나 강퍅해야 하며 굶주려야 하는가를 증언해주고 있으니까(기름기 좀 들어간 작가들은 다른 종의 소설가들이다). 하긴 네가 지금 배부른 처지냐고 하면 대답이 사뭇 궁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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