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6
로버트 네이선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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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해야 할까? 허망하다고 해야 할까? 열매가 다 익기도 전에 태풍에 의해 망가져버린 느낌이랄까?


아담과 이브가 맛나게 먹었던 선악과는 잘 익어 있었다. 뉴턴이 만류인력을 발견했다던 그 사과도 잘 익어(?) 있었다. 유레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의 욕조는 충분히 다 차 있었다. 아르키메데스의 몸무게 부력만큼이나 꽉!!!


그런데 제니의 초상은 다 차있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무엇인지 빈 느낌이다. 이 공허함이 무엇일까?

소나기처럼 이루지 못한 풋사랑의 느낌일까? 아니면 모래시계의 태수와 혜린의 아련한 사랑이 생각나서일까?

짝사랑에 대한 감정과 서로가 사랑을 느끼는 관계 중 어느 한쪽이 떠나버린다면 어느 감정이 더 아플까? 뭐 사랑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짝사랑은 한쪽이 떠나기에 다른 한쪽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을 느끼는 관계에서는 이게 좀 다르다. 한 사람이 떠나고 한 사람이 남게 된다면 남은 사람은 떠난 이를 가슴에 뭍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제니의 초상은 단순하게 본다면 제니와 이벤의 러브스토리라고 말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 많지도 않다. 매튜스, 스피니,아르네 등등


어딘가에서 불쑨 나타난 제니. 묘한 느낌을 남기고 그녀는 떠난다. 그녀의 그림을 스케치했고, 처음으로 이벤은 25달러라는 돈을 받았다. 제니를 처음 본 순간을 기억했고, 그 기억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녀를 통해 이벤은 어려운 생활에 숨통이 트였다.

제니. 그녀를 통해 어려운 생활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고은의 시처럼 돛을 잃어버리니 풍경이 보였다는 시처럼, 화폭에 무엇인가를 담을려 하지 않고 풍경처럼 제니를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벤은 제니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 불현듯 나타나 사라지는 제니.

잠시만 한눈을 팔면 제니는 사라졌다.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제니는 항상 바람처럼 왔고, 구름처럼 머물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절의 풍경은 바람이 일어야 소리를 낸다.

바람은 제니였고, 풍경은 이벤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제니는 이벤에게 왔다. 생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는 사이는 많지 않다.

이벤과 제니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이벤은 마지막까지 제니와 함께하려 했다.

하지만 제니를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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