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시 삼백수 : 5언절구 편 우리 한시 삼백수
정민 엮음 / 김영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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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우리 한시 삼백수

5언절구 편이다. 예전에 7언절구편이 나온 적이 있다. 그때도 느꼈지만 한시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글자를 정확히 맞추면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은 웬만한 어휘력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7언절구보다 더 짧은 5언절구편이라 표현력이 다소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어휘력과 표현력이 부럽기도 하다.

시를 읽다 보면 영시든 한시든 우리나라 시던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단어와 표현이 다를 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시대에 따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분명한 시간적인 갭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인간사 특별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유방선(1388-1443)산에 사는 맛이라는 시를 보면 산 속에 집을 짓고 혼자 사는 이야기를 시로 만들었다. 산 속에 있기에 자연의 소리를 듣지만 외로움을 느낀다는 시다. 우리가 이 당시를 생각할 때 선입견을 갖게 된다. ‘옛날에는 산에도 많이 살고 그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응답하라 1997’에서 보면 PC통신을 할 때, 부산에 산다고 하면 회를 자주 먹고 집에 배가 있으며, 부산에 있는 자신의 친구를 알 수 있는 듯한 착각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른 곳, 혹은 지역이 주는 선입견으로 인해 나와는 동떨진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선입견에 불과하다. ‘산에 사는 맛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나 또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구음(1614-1683)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 남한산성을 오르면서 지은 시다. 전쟁 후의 참혹한 현장을 시로 읊조렸다. 죄 없는 백성들의 죽음. 이 현장을 보면서 참혹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지금의 남한산성은 이 때와는 다르다. 산책과 여행의 한 코스일 뿐이다. 지금에야 성을 만드는 것이 전쟁을 대비하는 것은 아니니까.

남한산성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남한산성이 갖는 의미와 지금의 남한산성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시간은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유물로 만들어 버리는 오묘한 힘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우리 한수 삼백수에는 계절의 변화와 장소, 감정의 변화에 대한 여러 시가 담겨져 있다. 한자를 잘 알아서 음과 뜻, 또는 파자를 하면서 읽으면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 올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확히 말하면 시를 읽으면서 한자 공부를 다시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다르지만 감정으로 쓰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나도 시를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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