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What? - 삶의 의미를 건저 올리는 궁극의 질문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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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실험적'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따로 있을까? 대개 실험은 여태껏 이룩된 바에 대한 반감 내지 반작용으로 시도되지 않던가?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작가에 꼽히기도 한 마크 쿨란스키는, 실험작 <무엇 what>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으로 일관한다. 그리고 책의 제목이 바로 그가 실험작을 내놓은 이유다. 그에게 "무엇 what"은 모든 질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 최고로 궁극적인 질문이다. 굳이 철학적 의미로 풀이하자면 '본질' 또는 '실체' 정도 되겠다.  

 

그렇다면 반드시 본질 또는 실체를 찾아야만 하는가? 많은 사상가들과 천재들이 오랜 세월 이를 찾고자 했으나 어느 누가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있던가?

 

질문 자체에 답이 있다는 역설! 인간의 삶은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에 가치가 놓여 있음을, 쿨란스키는 강조하기 위하여 이렇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 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식'에 가깝게 지내면서 근본적 '질문'들로부터는 지나치게 멀어졌기에. 원초적 의미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    

 

마크 쿨란스키는 어떻게 질문들만 가지고 이 책 한 권을 채울 수 있었을까? 질문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과연 그것 역시 일종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도입에서부터 "이 책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즉, 쿨란스키는 질문 자체에 대한 질문 역시 던지는데, 그런 분이 이 책의 똑똑함을 보여주는 듯 하다. 어떤 질문들은 그 의미상 실제로 평서문(이 책에서는 질문과 대조하기 위한 효과로 '선언적 진술'이라 지칭하고 있다)에 가깝기도 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런 실험은 정말 필요한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굳이 어려운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대중들을 불편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그도 그럴 것이 현대는 질문에서 더 나아가기 힘든 '상대주의'와 '회의'의 시대이다. 많은 단정과 선언은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되며, 칸트보다는 니체가 더 통한다. 하지만 과연 누가 '니체'에 대해 안다고 할 수 있나? 니체가 비판한 '신'은 '신' 자체인가 아니면 '맹목적인 정신'인가? 당신의 회의가 향하는 곳은 이 세계인가 아니면 그저 불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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