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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아메리칸맨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박연진 옮김 / 솟을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2006년 발간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전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고,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킴에 따라
국내에도 잘 알려지게 된 미국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엘리자베스 길버트.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이 작품은 줄리아로버츠 주연의
헐리우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 영화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글을 종전에 전혀 읽어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2002년 발간된 <라스트 아메리칸맨>을 읽고서 "어떻게 이 여자는 이렇게 균형잡힌
시각과 재치있는 위트를 가지고 한 인간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라스트 아메리칸맨>은 "신선한 존재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한 실존
인물, 유스타스 콘웨이에 대한 한 편의 르포르타주이다!
20세기 미국 시민인 유스타스 콘웨이는 첨단문명이
제공하는 온갖 혜택을 거부한 채, 직접 카누를 만들어 미시시피강을
여행하였고, 3,200킬로미터가 넘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넉 달 반 동안 사냥과
채집만으로 연명하면서 걸어서 넘었으며, 4,000킬로미터에 달하는 미국 대륙을 103일 동안 말을 타고 횡단하였다. 즉, 유스타스 콘웨이는
단순히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야생인 척' 하는 부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는 진짜 "이 아래의 땅, 저 위의 하늘과 결별하지
않은 자'에 해당한다.
그는 미국인들이 지속적으로 편리함만 간구함으로써 우리의 진짜
환경이 지닌, 조금 거칠지만 계발적인 아름다움을 박멸해버렸으며, 안전하지만 철저히 모조된 '환경'으로 그 아름다움을 대체했다고 믿는다. 물론
이론의 여지는 있겠으나 지나친 기략으로 인해 사회가 점차 파멸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유스타스의 생각이다.
- p.29.
이런 태도는 교만에서 비롯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소외를 초래한다. 우리는 리듬에서 비껴났다. 설명하자면 단순하다. 우리에게 공급되는 음식을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재배하지
않는다면, 가령 계절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까? (…중략…) 적어도 유스타스 콘웨이가 바라보는 미국은 그러했다.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천 년 동안 인간 존재와 문화를 규정해온 자연의 순환과 엇박자를 그리고 있었다.
- p. 30~31
그는 숲에서는 "오직 진실만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거짓도, 치욕도, 착각도,
위선도 없다. 그곳은 단 한 번도 변한 적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아니할 완벽한 법칙이 모든 존재를 관장하는, 진실만이 충만한
곳이다.
- p. 89.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이런 유스타스
콘웨이의 삶을 그의 가족관계, 소망, 동기, 이성관계, 전 사회와의 관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한다. 그리고 그녀의 관찰 내지 관조는
놀라울만치 빈틈없으면서 동시에 균형잡혀 있다. 이를테면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유스타스 콘웨이의 아버지에 대한
평가와 관련하여, 그를 끔찍히 여긴 이 소설의 주인공, 콘웨이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경청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많은 미국인을 자연으로 끌이들이기를
희망했던 콘웨이의 꿈과 관련하여서도, 이를 무작정 찬양하거나 또는 비난하지
않고, 과거 유토피아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여러 인물들, 그리고 프론티어 정신으로써 미국 땅을 개척해
나갔던 옛 인물들과 비교함으로써 실제적
의미를 탐구한다.
더욱이 유스타스 콘웨이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평면적인 인물이
아니라 여러 일들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입체적인 인물인데,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이러한 점에 대해 정확하게 간파하면서 재치있는 입담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전형적인, 현대의 지적인 여성이므로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유스타스 콘웨이의 모순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녀의 지적은 대부분 무척 타당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진지한 얘기조차 재미있게 풀어쓰는 유머 감각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맹점은, 누구보다 자연과 가까운 이
숲사람이 가르치는 일이며 각종 활동과 집필 활동으로 숲을 떠나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사실이다.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티피 안에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 p. 122.
유스타스는 그녀와의 사이에 자녀 열셋을 낳고
싶어했고, 그 말은 그녀를 겁에 질리게 했다.
그래, 그랬다.
열셋이었다.
나는 유스타스에게 그 점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나의 정확한 질문은 "제발 사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해주세요"였다. 유스타스의 대답은 "100년 전이었다면 여성들이 그런
생각을 하며 겁에 질리지는 않았을 겁니다!"였다.
- p. 287.
<라스트 어메리칸맨>은 인간과 자연, 관계와 소통
등 꽤 묵직한 주제를 연상시키는 한 미국 남자에 대하여, 위트와 여유 그리고 무엇보다 영민함을 가지고 풀어쓴 글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긴 박연진 씨의 번역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그녀의 번역은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문체의 맛깔스러움과 어휘의 풍부함을 잃지
않고 있다. 작가와 번역가에게 반하게 했다는 점에서 이번 독서는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으며, 나는 앞으로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다른 작품들을 더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일단은 그 유명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