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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의 노래 -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
마틴 슐레스케 지음, 유영미 옮김, 도나타 벤더스 사진 / 니케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든, 책이든 은은한 향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유한 향기는 우리네 삶을 더 높은 곳으로 고취시키거나, 또는 우리네 마음을 더 낮은 곳에 임하게 하여 평화를 선사하지요. 이번에 읽은 <가문비나무의 노래>라는 책 역시 향기가 있는 책이랍니다. 책의 부제도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로 되어 있지요.
가문비나무? 고지대에 묵묵히 곧추선 채 자라는 가문비나무는 밑동에서부터 40~50미터까지는 가지 하나 없이 줄기만 쭉 뻗어 있고, 나이테가 촘촘하며, 잔가지가 없고, 섬유가 길어, 바이올린을 만드는 데 제격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가문비나무에 관한 책이 아닙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만들어온 마틴 슐레스케가 가문비나무로부터 비롯되는 다양한 비유와 함축을 가지고 삶의 귀중한 의미를 이끌어내는 책입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에는 마틴 슐레스케가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과정들을 담은 여러 사진들도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 사진들은 하나의 시선 즉,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빔 벤더스 감독의 아내인 도나타 벤더스가 그녀의 카메라로 포착한 것입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 속 그녀의 사진들은 세밀하며, 피사체와 카메라 렌즈 간 거리가 극단적으로 가까운 익스트림 클러즈업을 많이 사용하는 특징이 있는 듯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기독교적 색채가 짙기 때문에 신앙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소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뚜렷한 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인상깊게 <가문비나무의 노래>를 읽었지요.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형식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방식을 취합니다. 마치 수일에 걸쳐 잠언집을 읽어나가듯 이 책을 읽어주기를 원하는 듯, <가문비나무의 노래>에는 페이지의 가장자리에 week(주)-day(일)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어나가면, 총 52주 즉, 13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1년 하고도 1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걸리는 셈입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는 '사랑'과 '신',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신은 우리를 '조립' 아닌 '창조'하셨기에, 우리는 그 신과 협업하여 자신만의 타고난 고유함을 가지고 공명을 하여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없는 겸손이 필요하며, 마음의 가난함이 요구된다고 마틴 슐레스케는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는 불안, 방해, 고통, 의심 같은 요소들도 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에 보다 다가가게 하기 위한 좋은 장치라고 말하지요.
저는 <가문비나무의 노래>를 읽는 내내 굉장히 엄격하면서도 따뜻하고, 지혜로운 선지자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마틴 슐레스케가 어떻게 이런 지혜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였고, 또한 그의 성실함에 매우 감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한 동안 '인생'이라는 큰 주제에 대하여 지나치게 방관하며,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문비나무의 노래>가 뿜어내는 은은한 향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지만요.
지혜로움을 얻고자 하는 기독교인, 그리고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인생에 대한 통찰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으로 채워진 카이로스(특별한 의미가 담긴 시간)로 삶을 채워가기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