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의 사진사 -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의 카불 일기
정은진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아프가니스탄, 최악의 인질 사태로 하루에도 몇번씩 들어야만 했던 낯선 나라이다. 당시에 이미 저자 정은진은 아프간에서 몇 개월째 체류하며 아프간 곳곳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다. 그녀는 특히, 아프간 여성들의 높은 산모사망률에 초점을 맞추어 어린 산모 카마르의 안타까운 산후 죽음 스토리를 사진으로 담았다.  





 
 

이 포토 스토리로 그녀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보도사진전 '페르피냥Perpignan 포토 페스티벌'에서 2007 '케어 인터내셔널 르포르타주 그랑프리'를 수상했다고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아프게 하는 멋진 작품 사진을 감상하게 된 것 만으로도 이 책은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진을 찍기까지 사진기자로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엄청난 좌절과 고통의 순간들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며 충격적이었다. 아프간의 남자들이 동양 여성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행동하는지는 정말이지 상상 이상이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녀가 바라본 아프간의 여성 실태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프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그것은 밖에 나갈 때는 다른 남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할 염려가 있으므로 온통 가리고, 가급적 안 나가면 더 좋고, 그러다가 일찍 죽으면 그만인 것이다. 남편이 일찍 죽으면 다른 남자 형제가 남편이 되고, 남편이 첫째 부인한테 정이 식으면 둘째 부인을 맞아들이면 그만이다. 본래는 남편도 첫째 부인의 승인을 받아야 둘째 부인을 맞을 수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설사 남편이 마음대로 둘째, 셋째 부인을 맞아들여도 부인은 남편의 뜻을 거역하거나 불평할 수 없다. 이곳 여성들은 상당히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애를 낳고, 죽도록 가사노동만 하다가 47세 정도가 되면 죽는다. 평균수명이 그렇다.

- 본문 252~253쪽에서
 
아프간에서 오늘도 힘겹게 살아갈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의 주요 초점은 아프간, 그 곳의 여성들의 삶 만은 아니었다. 

저자는 세계 곳곳에 위험한 현장들만 찾아다니는 보도 사진 작가로서 동양 여성, 즉 대한 민국의 딸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솔직하게 토로한다. 그녀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과 같이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은 서글프게도 다가왔다. 


보도 사진작가의 삶에는 개인 생활이 없다. 아프간에 머물며 사진작업을 하는 1년 동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었다. 개인 생활이 없는 보도 사진작가 대신, 결혼하고 직장 다니는 안정적인 삶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성공한 사진작가와 그렇지 않은 사진작가의 차이점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성공한 사진작가는 질리도록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세계적인 보도 사진작가 스티브 맥컬리는 아직도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일한다. 편한 삶을 원한다면 성공을 버리고, 성공을 원한다면 현장을 취재하며 힘들게 살아야 한다.
 

오직 성공을 위해 편안함이나 사랑, 결혼을 모두 포기하고 세계 곳곳을 누비는 것이 최선인 것일까. 물론 그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올해는 아프리카에서 포토저널리스트로서 활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욱 아름다운 사진과 솔직한 이야기를 담을 저자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어찌 되었건, 이 책 한권만으로는 도저히 낯선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하기가 힘들다. 저자가 포토 저널리스트로서 아프간에 체류한 이야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보다 세세한 아프간의 실태에 대해 알고 싶다면, <카불의 책장수>를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노르웨이 출신의 종군기자 사이에르스타드가 쓴 것으로, 그녀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책장수로 살아가는 술탄 칸의 집에 3개월간 머물렀다고 한다.  

이 책은 그녀가 칸의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직접 체험한 아프간의 다양한 실태를 소설 형식으로 세세히 묘사하고 있다. 아프간의 정치적 격변과 국가 재건, 근본주의 이슬람 문화 밑에서 학대받는 여성 문제와 빈곤 문제 등 다양한 아프간의 실상까지.. 풍부한 이야기가 담겼다. 
 


나는 내가 보고 들은 대로 썼다. 카불의 봄에 대해, 겨울을 떨치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자 했던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레일라가 말했듯, 계속해서 "먼지를 먹도록" 저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 -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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