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리 그르넬가 7번지, 그러니까 한국의 강남구 청담동에 비견되는 부유한 동네에 위치한 고급 빌라 아파트에 사는 두 여자의 세대를 초월한 우정 그리고 사랑이야기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1층 어두컴컴하고 좁은 수위실에서 사는 54살 과부 아줌마 르네이다. 다른 한 명은 12살 어린 소녀 팔로마로, 6층을 통째로 쓰는 부유한 국회의원 집 막내 딸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수위 아줌마와 12살 어린 소녀, 두 주인공은 번갈아가며 일기를 쓰듯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엄청난 나이와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여자는 모두 고슴도치를 쏙 빼닮았다. 겉은 빽빽한 가시로 자신을 가리고 숨기지만, 엄청난 앎과 진실된 생각으로 가득찬 고슴도치 말이다. 12살 소녀와 수위 아줌마에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들이다.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소설의 설정이 신선하고, 통쾌했다. 

역시,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12살 소녀 팔로마의 눈에 비친 아파트 경비아줌마 르네 부인의 모습은 이렇다. 

"미셸 부인... 어떻게 말해야 될까? 그녀는 지성으로 번득인다. 그런데도 그녀는 노심초사, 그래, 그녀는 수위처럼 연기하려고, 그리고 멍청하게 보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훤히 보인다. 미셸 부인, 그녀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다. 겉으로 보면 그녀는 가시로 뒤덮여 있어 진짜 철옹성 같지만, 그러나 속은 그녀 역시 고슴도치들처럼 꾸밈없는 세렴됨을 지니고 있다고 난 직감했다."

르네 아줌마의 진실한 지성에 반한 팔로마는 곧 그녀와 우정을 나누게 되고 그 속에서 뜻밖의 깨달음을 얻으며,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된다. 유쾌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 끝날 것만 같던 소설은 겨우 몇 페이지를 남겨 놓고 급작스럽게 방향을 바꿨다. '돌연한 죽음', 올 것이 온 것이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소설의 마무리는 가슴을 울렸다. 

결국 소설은 르네 아줌마의 죽음을 맞이한 팔로마의 '애끊는 심정'과 깊은 깨달음으로 끝을 맺는다.

"걱정 마요, 르네. 나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무 것도 불태우지 않을 거예요. 당신을 위해 나는 이제부터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추적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건 바로 이 세상 속의 아름다움."

독특한 설정에 마음을 울리는 감동까지. 재미와 감동을 한꺼번에 전해주는 작품이었다. 프랑스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작가 '뮈리엘 바르베리'의 전작도 꼭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소설 곳곳에 향긋한 녹차, 홍차과 함께 곁들어지는 온갖 쿠키들이 입맛을 자극하며 유럽 여행을 기억을 떠올리게도 했다. 

 
터키 카페에서 찍은 사진.. 


메밀 소바, 스시 등의 일본 음식도 자주 등장하고 곳곳에 일본 문화에 대한 작가의 경탄과 찬미도 있어서 입맛이 조금 쓰기도 했다. 우리나라 문화가 일본 못지않게 꽃피어 서양인들의 정신을 사로잡을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뮈리엘 바르베르의 이후 작품에서는 메밀 소바와 스시 대신에, 김치와 불고기가 등장하게 되길 바래본다.  

또 하나 이 소설의 문제가 있으니, 바로 프랑스어 번역이다. 소설 곳곳에서 말의 묘한 뉘앙스로 사람의 교양 수준을 판단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 미묘한 말의 차이를 알아채기는 너무 힘들었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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