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권력다툼으로 혼란스러운 시대, 인간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던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바탕으로 정치적 행위의 본질을 들여다본다.한나 아렌트는 인간을 “본성적으로 정치적인, 정치적 인간”(31쪽)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공동체에 속하면서도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표출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드러냄과 동시에,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아렌트에게 소통은 곧 정치적 행위를 의미했다.그러나 다름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등장은 이러한 정치적 행위를 무력화했다. 전체주의의 폭력성은 인간을 기계처럼 획일화하고, 나아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을 빼앗는다.그렇다면 전체주의가 사라진 오늘날은 어떨까? 부의 획득을 최우선으로 두려는 사회 현상과 경제적 빈곤은 인간의 존재를 노동의 행위자로 축소한다. 전쟁과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논리를 강제하는 권력의 힘은 다양성을 파괴하고 자유를 제한하며 정치적 행위를 가로막는다. 이렇듯 ‘전체주의의 망령’은 한나 아렌트가 경고한 것처럼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아렌트가 강조했던 정치적 행위의 본질은 대화다.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은 생각함과 말함의 무능력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의 ‘생각함’과 ‘말함’은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사유와 독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의견을 주고받는 공론장에서의 소통 행위이다. 이는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편향되지 않게 듣는 태도를 전제로 한다.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정신의 확장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발휘된다. “정치적 행위 주체의 목적은 … 다양한 사람과의 공적 담론을 통해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다.”(95쪽) ‘너’와 ‘내’가 다르다는 사실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준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이 더욱 귀중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