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의 오리무중 트리플 23
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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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단편을 담은 박지영 작가의 소설집이다.


각각의 단편은 노동, 취향, 죽음에 깃들어 있는 자본의 원리와 그 안에서 끝없이 훼손되고 구분되고 퇴색하는 인간의 본원적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터에서 한 개인의 자아가 상실되는 과정을 담은 테레사의 오리무중, 취향에도 계급이라는 날카로운 이빨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올드 레이디 버드, 죽음을 상품화함으로써 흐려지는 애도의 본질을 표현한 장례 세일까지. 저자는 이처럼 자본과 인간이 혼재된 미로 속에서 집요하고 고요히 출구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우리의 세계는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가격이 책정되는 세상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계로 건너가지 못하는 올드 레이디 버드영우의 세상도 그러했다. 하지만 정작 고양이는 그런 식으로 모두에게 공평했다. 나쁜 동네 산책을 하는 길 위의 사람들 곁에서, 공평한 추위와 공평한 어둠을 나누며.”(132) 또한, 아버지의 죽음에까지 자본의 원리를 적용해야 했던 장례 세일현수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데 애써 하는, 어떤 가격을 매겨도 공정하지 않은 완벽히 불공정한 선의.”(203)가 존재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이처럼 자본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우리는 상대를 쉽게 왜곡하고 섣불리 판단하지만,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순간을 통해 도움을 나누고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테레사의 오리무중에서 테레사는 자아실현을 명목으로 외부와 단절하다가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한다. “혼자여야 고귀할 수 있는 자아라면, 그게 진정 고귀한 게 맞나. 그런 자아실현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57)

 

세 개의 단편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주경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언제든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인물이다. 저자가 주경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복잡한 요소에 힘없이 휘둘리는 인간의 불완전성,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연대의 가능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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