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섭섭한 젓가락 ㅣ 사계절 중학년문고 19
강정연 지음, 김선배 그림 / 사계절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른들이 쓴 시는 왠지 아이의 마음을 일부러 들추고 캐는 것 같다. 이 시들은 아이의 마음이 잘 담긴 시다. 그래서 하하하 웃으며 배꼽 잡고 '아 그렇구나' 공감가고 그런다. 세상이 이만큼 변했으면 느끼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의 마음은 항상 예쁘다.
1학년 내 동생
"학교도 안 다니는 꼬맹이!"
그렇게 놀렸던 내 동생이
어느새 1학년이 되었다.
커다란 가방 메고 씩씩거리며 다가와
"나도 이제 학교 다닌다, 뭐!"
팩 돌아서서 제 방으로 퉁퉁 걸어가는데
가방 혼자 걸어가는 것 같다
학교 갈 때 손 꼭 잡아 줘야지.
딱
불쌍한 낯으로
검지 바짝 세우며
내 동생 하는 말
딱 한 판만 더 할게
딱 한 바퀴만 더 탈게
딱 한 모금만 더 마실게
딱 한 입만 더 먹을게
딱 한 장만 더 볼게
딱 한개만 더 살게
딱 한 번만 더 믿어 줄까?
그러다가 또 그러면
딱 한 대만 때려 줘야지.
묻긴 왜 물어?
여름이니까 바람 숭숭 잘 통하는게 좋겠지?
때 타니까 진한 파랑색이 좋겠지?
계속 자라니까 조금 큰 게 좋겠지?
남자니까 씩씩한 그림이 좋겠지?
어때, 이 옷 마음에 들지?
아니
나는 저기 저 옷이 좋아
모자 달린 초록 줄무늬
바로 저 옷!
그건 안돼, 이거 사
아저씨 이 옷 포장해 주세요!
용기
높은 담장 위에서
창수도 뛰고,
윤호도 뛰고,
우진이도 뛰었다
나도 따라 뛰는 게 용기일까,
겁나서 뛰기 싫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용기일까?
미리 쓴 일기
내일은 설날이라
큰 집에 간다
큰집 형들과 노느라
일기를 못 쓸까 봐
미리 써 두었다.
형들과 신나게 뛰어 놀았다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고
세뱃돈도 많이 받았다고.
미리 쓴 일기대로
됐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이럴 땐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 길을 물어보면 말이야
무거운 짐을 들어 달라는 할머니를 보면 말이야
동네 어른이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면 말이야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나쁜 사람일 수도 있으니
대답도 말고, 돕지도 말고, 인사도 말고 얼른 도망
가야지!
아이고,
우린 이제 착한 어린이 되기는 다 글렀다.
모기가 윙윙
불 껐다 윙윙
눈 감았다 윙윙
요놈은 꼭!
귓바퀴 따라 윙윙
아무래도 윙윙
할 말이 있지 윙윙
잠자코 윙윙
들어보자 윙윙
앗! 따거!
다시는 안 속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