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딸기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가 말하는 빈곤과의 싸움
빈곤의 종말
제프리 삭스 지음, 김현구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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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인물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학교 최우등 졸업, 하버드대학교 최연소 정교수, 현재 프린스턴대학교 지구연구소 소장. 볼리비아 정부 자문위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자문위원을 지냈지만 미국과 IMF와 세계은행을 누구보다 비판하는 사람. “절대 빈곤은 없앨 수 있다, 그것이 부국의 책무이며 우리 시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라고 외치는 사람.


책 표지 앞날개에 제프리 삭스의 프로필과 흑백 사진이 나와 있다. 책의 편집이 깔끔한 것에 비해 사진의 질은 좋지 않지만 너무나 마음에 드는 얼굴. 곧 있으면 할아버지 급이 될 제프리 삭스의 얼굴은 참 좋다. 잘생겨서가 아니다. ‘진심’과 ‘진지함’이 얼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조지 소로스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진심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었다. 그래서 ‘진심은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소로스는 내 마음을 움직였으니까.

삭스의 글은, 움직이던 내 마음을 한 곳으로 향하게 한다. 절대빈곤은 끝내야 한다고, 그것은 21세기 첨단의 시대, 번영의 시대, 세계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의무라고. 잊지 않으려 마음먹었지만 자꾸만 마음에서 지워져가는 시에라리온과 가나의 그 아이들을 생각해야만 한다고, 절대빈곤을 벗어나 선진국을 향해 일로매진하는 동아시아 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적어도 한때는 우리도 타인의 원조를 받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금 내가 먹고 마시고 쓰는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일 수 있음을 늘 깨닫고 있어야 한다고.


얇진 않은데 너무 술술 읽혔다. 이 책은 제프리 삭스라는 상아탑의 경제학자가 어떻게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에 눈 뜨게 되고 상아탑에서 뛰쳐 나와 빈곤과의 싸움에 나서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볼리비아 인플레이션 잡기, 폴란드와 러시아의 경제 시스템 바꾸기, 방글라데시와 말라위와 케냐 같은 가난한 나라들의 고통과 싸움 등등 삭스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공부하고 실천했던 것들이 이 책 안에 들어있다. 어찌 보면 자서전 같기도 한 이 책은, 지구촌을 돌아다니며 빈곤과 싸워온 한 학자/운동가/행정가의 인생이 그대로 들어있어 재미가 있고 감동도 있다. 경제적인 측면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것은 학자로서 선생으로서 그가 갖고 있는 재주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경험을 살려 구체적인 시간, 장소, 사람들, 프로그램들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제프리 삭스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틀 안에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그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계획이고 이뤄야만 할 임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비현실적인 몽상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일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덜 좌파적이라고, 자본주의를 용납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어떤 논리를 내세우든, 살 수 있는데 단돈 몇 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살려야 한다. 에이즈 환자를 벌레 보듯 하는 사람들에겐 “그 병은 이제는 약만 있으면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만성 간염 같은 질병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어야만 한다. “아프리카가 가난한 것은 사람들이 게으르고 유전적으로 모자라서가 아니라 기후가 혹독하고 환경 지리조건이 다른 지역보다 안 좋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나라들의 정부가 끔찍할 만큼 썩어서 원조 받은 돈을 뒷주머니로 챙기는 것이 아니라 부자 나라들이 기부한다 말만 해놓고 돈을 안 줘서 원조자금이 모자라는 겁니다”라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내 주머니에서 단돈 만원 꺼내지 않으면서 “미국이 나빠” “원조같은 것으로 빈곤을 구제할 수 있겠어” 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다소는 양심 없는 짓이라고 본다. 돕지 않으면서 "굶는 이들을 구하긴 힘들어"라고 말하는 것, 해보지도 않고 패배주의를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당장 우리는 50, 60년 전 어느 나라 착한 사람들의 원조 덕분에 이 정도 살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는가. 미국의 흑인들은 버스 좌석에도 마음대로 못 앉게 만들었던 인종차별의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삭스는 경제학 책을 벗어나 발로 뛰며 얻은 통찰력으로 기부원조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편견을 깬다. 오늘날 빈곤의 원인은 부국들에 의한 착취, 빈곤국 정부들의 부패, 국제기구의 비효율성, 빈곤한 사람들의 게으름과 문화적 한계 같은 것들 중 어느 하나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그리고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지리·환경·생태적 요인들이 합쳐져서 일어난 것이다.

삭스는 사례별로 빈곤의 원인을 의사처럼 ‘감별진단’한 뒤, 빈곤 국가와 지역에 대한 감별진단의 테크닉을 일반화시킨 이론으로 정리해낸다. 그리고 절대 빈곤과 싸우기 위한 스케줄, 프로그램, 할 일들을 구분해서 조목조목 정리해 읽는 이들을 설득한다. 원조가 펌프의 마중물이 되어 빈국들을 ‘빈곤의 함정(원시적인 수준의 자본축적조차도 가로막아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함정)’에서 끌어내 ‘번영의 사다리’에 한 계단이라도 올라설 힘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발전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인류는 진보해왔다고, 계몽주의자의 신념을 다해 인간의 이성과 모럴에 호소한다.

진심은 항상 마음을 움직인다. 인류는 그런 진심의 승리를 과거에도 여러 차례 보아 왔다. 언젠가는 삭스와 같은 이들의 진심이 세상을 움직여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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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ceptic > 왼쪽의 심장은 오늘도 쿵쾅거린다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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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심장은 왼쪽에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적이 없다. 정운영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느낌은 당연이 두근거림이었다. 그 두근거림에 어딘가에 존재하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내 몸 어딘가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있음을 생각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선대칭 동물이다. 반으로 접으면 포개질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역할이 다르다는 사실부터 확인하자. 오른쪽 뇌는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정보를 인지하고 왼쪽 뇌는 자세한 부분들을 인식한다. 오른손잡이의 경우 뇌의 구획 정리가 확연하게 때문에 더욱 분명하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즉, 왼쪽 눈으로는 숲을 인식하고 오른쪽 눈으로는 나무를 본다. 사람을 쳐다볼 때도 타인의 오른쪽 얼굴이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확정하는 것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볼 때는 왼쪽 얼굴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들 신체는 비대칭적 구조와 인식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심장이 왼쪽에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자연과학적 지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인문학적 관점으로 보면 우리들 마음이 왼쪽을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민의회 의장석에 볼 때 왼쪽에 급진파가 앉았던 데서 유래한 좌파의 개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심장이 왼쪽에 있는 이유가 모든 사람의 심장은 좌파를 지향하기 때문일까?

2005년 9월 24일에 사망한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심장한 제목만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신문에 연재되는 칼럼의 경우 제한된 분량에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야하기 때문에 훨씬 더 긴장감 넘치는 문장을 유지해야 한다.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수필과는 달라야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현실과 유리된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정운영의 칼럼들은 특별한가? 남들과 다른 개인의 글쓰기 방식은 당연히 주목받아 마땅하다. 형식의 새로움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눈의 신선함이나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시각에서 문제들을 짚어낼 때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을 표현하게 된다. 그렇게 표현된 공감들은 생각을 바꾸고 바뀐 생각들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직접적인 힘이 된다.

누군가의 글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 평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정운영이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러하고 내가 정운영의 글을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전제로 정운영의 글들은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챕터chpter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에 ‘정운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은 주로 책을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특한 방식의 리뷰에 해당한다. 책의 내용을 통해 현실을 짚어내는 안목이나 지독한 책벌레였으며 애서가였던 고인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 이어지는 ‘다른 세계는 가능한가’, ‘성장이냐 분배냐를 넘어서서’, ‘보수든 진보든 진짜이기를’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경제와 현실 정치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문제를 제기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힘이 들어 가 있지 않다. 어깨에 힘을 빼고 억지를 부리지 않으며 시류에 영합한 흔적이 없다.

그러나 비판적 지식인으로 좌우익을 아울렀다는 평가는 인정할 수가 없다. 한 권의 칼럼집을 통해 그 전 생애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적어도 말년에 그가 쓴 칼럼들에는 분명한 목적과 뚜렷한 소신이 2% 부족하다. 김규항이나 손석춘, 하종강의 글들이 보여주는 울림과 다르다. 개인적인 성향 탓이겠지만 우리나라의 노조와 재벌, 현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몸담았던 중앙일보의 그것도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특히 마지막 챕터 ‘요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에서 보여주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어쨌든 필자의 생각과 세상을 대하는 차분하고 날카로운 시선은 배울 점이 많다. 생각과 태도는 왼쪽이면서 현실과 생활은 오른쪽인 사람들에 대한 비판에는 가슴이 서늘하다. 극으로 치닫는 것은 좋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던 논객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평균대 위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평균대 위의 10점 만점 연기를 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게 중심을 잃지 않고 제대로 된 비판과 양쪽 모두에게 적당한 변명이나 항변을 생각해 내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이 있다는 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필자의 진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따스함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사리사욕과 무관하게 올곧은 정신을 벼리며 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정운영의 글에 보내는 갈채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을 통해 정운영의 삶과 세상에 대한 지극히 우호적이고 정갈한 감정을 해칠 생각은 없지만 제목에서 보여준 감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래도 나는 기억하며 살 것이다. 심장이 왼쪽에 있다는 사실을.

0610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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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ceptic > 왼쪽의 심장은 오늘도 쿵쾅거린다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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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은 왼쪽에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적이 없다. 정운영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느낌은 당연이 두근거림이었다. 그 두근거림에 어딘가에 존재하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내 몸 어딘가에 쿵쾅거리는 심장이 있음을 생각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선대칭 동물이다. 반으로 접으면 포개질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역할이 다르다는 사실부터 확인하자. 오른쪽 뇌는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정보를 인지하고 왼쪽 뇌는 자세한 부분들을 인식한다. 오른손잡이의 경우 뇌의 구획 정리가 확연하게 때문에 더욱 분명하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즉, 왼쪽 눈으로는 숲을 인식하고 오른쪽 눈으로는 나무를 본다. 사람을 쳐다볼 때도 타인의 오른쪽 얼굴이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확정하는 것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볼 때는 왼쪽 얼굴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들 신체는 비대칭적 구조와 인식들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심장이 왼쪽에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자연과학적 지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인문학적 관점으로 보면 우리들 마음이 왼쪽을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국민의회 의장석에 볼 때 왼쪽에 급진파가 앉았던 데서 유래한 좌파의 개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심장이 왼쪽에 있는 이유가 모든 사람의 심장은 좌파를 지향하기 때문일까?

2005년 9월 24일에 사망한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심장한 제목만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신문에 연재되는 칼럼의 경우 제한된 분량에 분명한 메시지를 담아야하기 때문에 훨씬 더 긴장감 넘치는 문장을 유지해야 한다.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수필과는 달라야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현실과 유리된 이야기는 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정운영의 칼럼들은 특별한가? 남들과 다른 개인의 글쓰기 방식은 당연히 주목받아 마땅하다. 형식의 새로움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눈의 신선함이나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시각에서 문제들을 짚어낼 때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을 표현하게 된다. 그렇게 표현된 공감들은 생각을 바꾸고 바뀐 생각들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직접적인 힘이 된다.

누군가의 글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관이 개입되지 않는 평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정운영이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도 그러하고 내가 정운영의 글을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전제로 정운영의 글들은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챕터chpter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앞에 ‘정운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은 주로 책을 통해 현실을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특한 방식의 리뷰에 해당한다. 책의 내용을 통해 현실을 짚어내는 안목이나 지독한 책벌레였으며 애서가였던 고인의 체취가 그대로 묻어나는 가장 인간적인 부분이다. 이어지는 ‘다른 세계는 가능한가’, ‘성장이냐 분배냐를 넘어서서’, ‘보수든 진보든 진짜이기를’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경제와 현실 정치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문제를 제기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힘이 들어 가 있지 않다. 어깨에 힘을 빼고 억지를 부리지 않으며 시류에 영합한 흔적이 없다.

그러나 비판적 지식인으로 좌우익을 아울렀다는 평가는 인정할 수가 없다. 한 권의 칼럼집을 통해 그 전 생애를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적어도 말년에 그가 쓴 칼럼들에는 분명한 목적과 뚜렷한 소신이 2% 부족하다. 김규항이나 손석춘, 하종강의 글들이 보여주는 울림과 다르다. 개인적인 성향 탓이겠지만 우리나라의 노조와 재벌, 현실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몸담았던 중앙일보의 그것도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특히 마지막 챕터 ‘요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에서 보여주는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어쨌든 필자의 생각과 세상을 대하는 차분하고 날카로운 시선은 배울 점이 많다. 생각과 태도는 왼쪽이면서 현실과 생활은 오른쪽인 사람들에 대한 비판에는 가슴이 서늘하다. 극으로 치닫는 것은 좋지 않다는 평범한 진리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던 논객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평균대 위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필자가 평균대 위의 10점 만점 연기를 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게 중심을 잃지 않고 제대로 된 비판과 양쪽 모두에게 적당한 변명이나 항변을 생각해 내지 못하도록 하는 무엇이 있다는 데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필자의 진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따스함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사리사욕과 무관하게 올곧은 정신을 벼리며 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정운영의 글에 보내는 갈채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을 통해 정운영의 삶과 세상에 대한 지극히 우호적이고 정갈한 감정을 해칠 생각은 없지만 제목에서 보여준 감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래도 나는 기억하며 살 것이다. 심장이 왼쪽에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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