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가지 슬픔
엘리자베스 김 지음, 노진선 옮김 / 대산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난감했다. 평소 책을 읽을땐 분류에 따라 한가지만이라도 깨닫음이나 지식을 얻으려 노력하는데 이 책은 저자가 불우한 환경속에서 자신을 자학하고 주위에 반항하는 당황스럴만큼 처참한 일들의 연속이였기 때문이다.

강철같은 의지와 피나는 노력으로 방해물을 싹둑싹둑 자르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인간승리사도 아니고 결국 한국인 혼혈아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한국인들 그 특유의 흥미에 편승해 낸 그렇고 그런 책이란 말인가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차라리 그시간에 다른 책이나 읽을걸이라는 후회도 들었다. (재미야 있었지만)

끝에 가서야 주인공은 불교를 통해 어느정도의 자기성찰에 이르는데 이는 그때까지 그녀가 받은 고통과 거기에 수반하는 ‘자기학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면서 문득 깨닫은건 사람은 본질과 감수성이 달라서 같은 일을 당해도 다 다르게 반응하는구나였는데 어떤 사람은 부럽게도 강인하게 일어나 꾿꾿히 앞으로 나아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타고난 무감각함으로 별다른 타격도 안받고 금새 또 다른 현실을 따라나서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엄청난 휴유증에 시달리며 절망의 늪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킴은 이중 제일 후자에 속하는데 오랜 시간 괴로워하며 자신을 좀먹는다는 점에서 첫번째 유형보다 효율성은 떨어져도 깊은 고통을 못느끼길래 자기성찰 또한 불가능한 두번째 유형보단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을수 있는 ‘선택받은’ 사람이라 하겠다.

비록 상처를 받아들이고 치료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라 해도 아픔의 기억과 흉터는 모두에게 남는데 어린시절의 상처는 더더욱 평생을 따라다니는 트라우마를 남기는것 같다. 열악한 환경속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안에는 어떤 이해할수 없는 결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접할수 있는데 이 들은 빌 클린턴과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김처럼 부도덕적인 성관계에 집착하든지 해서 자신들의 욕구불만을 표출시키는것 같다. 안타까운건 어릴적 환경은 말그대로 타고나는것이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는데 여기서 운명론이 나오는 것일 테지.

허면 최상의 방책은? 최상인지는 모르지만 남들보다 몇갑절 더 불우했고 극심한 자기학대 과정을 거쳤던 작가가 고맙게도 우리들에게 제시한 해결책은 설사 자기가 그런사람이라 해도 미워하고 외면하는 대신 스스로를 자애롭게 대하고 현실을 직면하라는 거다. 병이 무섭다고 병원에 안가면 치료조차 할수 없는것처럼 괴롭다고 자신의 치부를 감추면 영영 진정으로 성숙할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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